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8-28   2242

[칼럼] 인터넷실명제 강행 5년이 남긴 교훈

인터넷실명제 강행 5년이 남긴 교훈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른바 ‘악플’을 줄이겠다는 발상으로 2007년 7월에 도입된 ‘게시판 이용자 본인확인 제도’는 한국 인터넷 역사의 부끄러운 한 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애초에 이 제도는 법적·기술적·사업적으로 도저히 유지되기 어려운 무리한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떳떳하면 이름 까고 말하라”는 입장은 역사나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낼 뿐이다. 진정으로 떳떳하다면 익명으로 표현되는 소수자의 견해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반론을 제기하면 될 것이다. 익명으로는 견해가 아예 표현되지도 못하게 틀어막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비겁하고 난폭하며 떳떳하지 못하다.

기술적으로도 이 제도는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인터넷상의 교신은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기술적 흔적을 당연히 남기게 된다. 일반인들의 오해와 달리 인터넷은 기술적으로 익명성 확보가 용이한 매체가 아니다. 해커 수준의 기술지식이 있다면 자신의 흔적을 어느 정도 감출 수는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애초에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정직하게 입력할 이유도 없다. 본인확인 의무를 지는 웹사이트들은 이런 실명확인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매달 적지 않은 수수료를 바쳐야 했었다.

사업적으로 이 제도는 지난 5년간 한국 정보통신(IT)산업을 골병들게 하고, 세계 시장 진출을 가로막아 왔으며, 한국의 인터넷을 세계로부터 고립시킨 ‘갈라파고스 현상’을 더욱 조장하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만일 한국에서와 같은 본인확인 의무에 시달렸다면 과연 전세계 유저들이 이용할 수 있었을까?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도록 강요하는 이 제도를 고안하고 추진한 분들이 생각하는 ‘인터넷’이란 것은 철저히 고립된 한국 국내용 ‘인트라넷’이었다.

 

이 제도가 존재하던 마지막 얼마간의 상황에선 글로 적기가 민망할 정도의 부조리함과 황당함이 연출되었다. 전국민의 주민번호는 거듭 유출되었을 뿐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외국 사이트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댓글을 작성하면 국내의 언론사 웹페이지에 그 내용이 표시될 수 있게 되어 실명제는 집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급기야 행정안전부도 인터넷상에서 주민번호의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을 하였고, 실명확인 서비스를 이용한 본인확인은 제도적으로도 불가능한 시점에 와서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의 사망을 전원일치로 선고한 것이다.

 

세계 초유의 제도를 5년간이나 밀어붙이다 결국에는 사망선고를 받은 인터넷 실명제의 교훈은 무엇인가? 인터넷 악플의 문제나 성인물의 무분별한 접근, 게임 과몰입 등은 기술적 조처로 일거에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화의 문제이고 가정교육 및 학교교육의 문제다. 기술만능의 맹신에 사로잡힌 관료들이, 부모와 학교와 사회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문제를 마치 한두 가지 기술 조처로 일거에 해결할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번 헌재 결정에는 ‘이름+주민번호’를 입력하게 하여 본인확인을 시도하려는 발상은 위헌적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게임이나 성인물에 대한 접근 통제도 똑같은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안이한 발상에 기초하여 사업자들에게 이런 조처를 강요하는 여타의 현행 제도들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차제에 주민등록번호 자체에 대하여도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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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2년 8월 28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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