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11-03-04   5653

[칼럼] 장하준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④

장하준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④
강한 개발국가 복원 ?- 장하준의 새로움과 구태의연함


1. <23가지>의 제도론적 성장론: 정부/기업 협력론


장하준의 <23가지>는 자유시장주의의 맹점과 허구성을 비판한 책이다. 그렇지만 비판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앞선 글에서 복지국가론을 중심으로  <23가지>의 더 나은 자본주의 대안에 대해 살펴 본 바 있다. 여기서는 성장론 자체로  좁혀 장하준의 더 나은 자본주의 대안이 무엇을 말했고 또 무엇이 빠졌는지 보려고 한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23가지> 성장론의 핵심이 “제도가 중요하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고, 그 요점은 성장 요소와 성장 요인을 구별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그렇지만 제도라는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어떤 제도가 어떻게 중요한지, 제도들간의 상호관계는 어떤지, 개별 제도들을 하나의 페키지로 전부 묶어놓았을 때 어떤 모양이 나오는지, 제도와 정치, 제도와 권력, 제도와 문화의 관계는 어떤지, 그리고 제도는 어떻게 생겨나고 역사적으로 진화하는지 등을 따져 보아야 한다. <23가지>에서 장하준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여러 제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컨대 기업의 중장기 투자와 리스크감수를 장려하는 제도, 유치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교역정책, 장기적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내 자본”을 제공하는 금융시스템, 자본가에게 기회를 주는 파산법과 함께 노동자에게도 동등한 의미를 갖는 복지제도, 연구 개발과 노동자 훈련에 관한 공공보조금 제도 및 규제정책 등이 그런 것이다(p.250). 이 이야기를 들으면 <23가지>가 제시하는 성장론의 기본틀이 어떤 것인지 독자들의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성장론의 틀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은 아무래도 기업 그리고 정부다. 그래서 필자 더러 저자의 제도론적 성장론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라고 한다면 “정부⦁ 기업의 협력”론이라 말하겠다. 이에 대해 장하준이 말하고 있는 중요 대목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Thing17: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 개인의 교육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 개인을 잘 아울러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할 수 있냐에 달려 있다. 이런 조직화의 결과는 거대기업일수도 있고 중소기업일 수도 있다”(250)
Thing 15: ” 부자나라에서는 기업간의 협력이 가난한 나라보다 더 잘 이루어진다. 심지어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기업간에도 그러하다“(220)

Thing12 : “ (유망산업을 선별하는) 가장 성공적인 경우는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서 선택했을 때이다. 민간, 정부, 민-정협력 등 모든 형태의 유망주 선별에는 성공과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 정도도 다양해서 가끔은 엄청난 성공을 부르기도 하고, 처첨한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민간기업의 유망주 선택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묻혀 그 너머를 보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정부가 주도하는, 혹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경제발전의 거대한 가능성을 모두 놓치고 말 것이다”( 183).


위의 구절들에서 저자는 나라가 번영하는 데는 기업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영웅적 개인-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창안한 무함마드 유누스같은 사람이라해도-이나 엄청난 교육투자같은 개별 ‘성장요소‘들도 기업 조직이 제대로 세워져야만 지속적인 성장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도록 정부가 각종 지원을 잘 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이야기의 반쪽에 불과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번영에서 사기업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의 지원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많지 않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좀 의외로 보일수 있다. 오히려 < 23가지>의 정부 ⦁기업 협력론은 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기업의 자유에 대한 규제를 더 강조하고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런 위에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23가지> 성장론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 아닐수 없다. 구체적으로 적어도 다음 두 가지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장하준은 기업의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기업에 좋은 것은 나라경제에도 좋다, 따라서 기업에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장하준은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ing18: “ 기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경제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규제가 기업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천연자원이나 노동력과 같이 기업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공동의 자원이 파괴되지 않도록 개별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기업 부문 전체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기도 한다. 또 개별 기업에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끼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도 있을 수 있다. 노동자 교육규정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252-3).
둘째, 뿐만 아니라 저자는 민간기업보다 오히려 국영기업이 잘 운영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다. 대기업 및 재벌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GM을 빼고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심지어 한국의 경우조차도 현대나 삼성보다 주로 포스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thing12,”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2. 장하준의 용기


장하준의 제도론적 성장론의 열쇳말은 정부주도와 공기업, “민-정 협력”, 그리고 규제다. 이는 세계화 시대- 적어도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이전까지-  열쇳말인 민영화, 무한 경쟁, 규제 완화와는 정반대로 가는 노선이다. 세계화의 시대는 무한경쟁의 시대이고 각국은 저마다 해외자본,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또 자국 자본의 경쟁력을 높힌다고 규제 완화 경쟁에 나섰다. 이른바 서로 “바닥을 향한 경주”( race to the bottom)를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규제완화가 선(good)이고 규제는 악( bad)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게 되었다. 물론  <23가지>의 생각은 한국에서 규제완화 일변도로 나가는 “자유기업”론과 대립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을 비롯하여 보수시장주의자들이 이전에는 줄곧 장하준을 반기다가- 장하준도 때로 그들과 말을 섞기도 했지만- 이제는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송원근 강성원, <계획을 넘어 시장으로-’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견해>를 보라).

자유시장주의자에 의해 “죽은 개“로 취급당한 국가를 복원시켜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히 국가의 산업정책적 기능이 매우 중요하고 민영화가 능사가 아니며 공기업도 잘 운영될수 있다는 것, 국가와 기업의 협력이 발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좋은 기업은 분명히 나라번영과 공동의 부 창조의 제도적 기초이지만 사기업에 좋은 것이 곧 나라경제에 좋은 것은 아니고 따라서 국가의 기업에 대한 규제가 필수적이라는 것, 세계화 시대에 이런 식의 주장이란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니다. 철없는, 물정모르는 바보로 취급당하기 일 쑤다. 따라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또 마르크스의 <자본론>같은 걸 가져와서 주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자로서 전문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장하준교수 정도의 명성이 있고, 바야흐로 2008년 위기이후의 전환시대라서 <23가지>가 호응을 받고 자유시장주의자들도 만만하게 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일반 ”경제 시민”을 염두에 둘 때, 장하준의 견해가 얼마나 시류를 거슬러 가는 논변인지는 예컨대 경제학 원론 시장을 거의 제국주의적으로 휩쓸고 있는 <맨큐의 경제학>과 비교해 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맨큐의 경제학>은 전부 36 개장으로 분량도 무려 1000 페이지가 넘지만, 이 책에서  산업정책과 공기업, 정부와 사기업간의 협력,  정부의 사기업에 대한 규제 등의 문제에 대해 비중있게, 긍정적으로 다룬 부분을 찾기란 마치 산에서 고기를 잡는 격이 될 것이다. 맨큐는 신케인즈주의 경제학 계열의 학자라고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맨큐의 경제학>의 내용은 대부분 자유시장 경제학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맨큐가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직을 맡은 경력의 소유자며, 부자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지지한 인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와 또 다른 예로서 이준구 교수가 쓴 <시장과 정부-경쟁과 협력의 관계>(다산출판사, 2004)를 들어 보자. 이교수는 자유시장주의자는 아니며 합리적인 “중도시장주의”적 견해를 펴는 학자로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사업” 등 한국경제 여러 현안에 대해 지혜로운 발언을 많이 했다. 그는 시장과 정부는 경쟁과 협력의 관계에 있다고 보면서 특히 분배의 공평성과 경제의 안정성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힘주어 강조한다. 이는 확실히 <멘큐의 경제학>과는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가지>에 비한다면 <시장과 정부>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임을 부정할 수 없다. <23가지>가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의 전통에 줄을 대고 있다면, <시장과 정부>는 여전히 주류 시장경제학의 전통에 줄을 대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비교를 통해서도 우리는 <23가지>의 제도론적 성장론이 얼마나 주류와 이질적인 ”용기있는 선택“인지 알 수 있다.


3.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것


이제부터 <23가지>에 빠진 것, 불만스런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우선, 저자가 말하는 “유능한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23가지>는 여러 역사적 경험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 그동안 자유시장주의자들이 “국가 죽이기“로 일로매진했기 때문에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굽혀 ”국가 살리기“ 논의를 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국가든 저자가 말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유능한 국가가 될수 있는 것이 아니고,중립적인 ”공익“을 수행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냥 ”국가도 성공할 수 있다“가 아니라 유능한 국가를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정치사회적 조건이 뭔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있어야 할 것이다. 유능한 지도자를 만나면 되는가? 유능한 관료가 있으면 되는가? 관료와 사기업이 잘 맞추어 나가면 되는가? 혹은 잘못된 비유일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재벌총수들을 불러 엄포를 놓으면 되는가 ? 아니면 아래로부터 노동 세력의 강제나 시민사회의 감시 규율력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닌가? 즉 국가가 자체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가져야 하는지, 또 어떤 사회적 기반, 세력적 기반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23가지>가 제시하는 국가와 사기업의 협력(‘민-정협력’)론 및 국가의 기업 규제론에서 열쇠말은 “협력”과 “규제”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협력-규제론에 빠진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규율”의 문제다.  정확히 말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미시적으로 기업조직, 거시적으로 자본계급을 규율하는 문제가 있다. 기업도 잘되고 나라경제도 잘되기 위해, 사기업에 좋은 것이 나라경제에도 좋는 것이 될수 있도록 이러저러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렵다. 좋은 규제는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에는 통상 정보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 실패“ 수준의 문제를 넘어, 권력구조의 문제, 강제력의 문제가 개제되어 있다. 국가도, 자본도 구조화된 권력체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사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수단(예컨대 금융통제)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성과가 미달하거나 기업이 스트라이크할 때 지원을 철수하고 자원을 재배분하는 정치적 강제력을 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조절 능력은 필수적으로 강제능력을 포함해야 하며, 성공적인 산업정책의 정치경제는 기업과 자본계급을 “규율”할 수 있는 ‘제도적 강제체제’(  Institutional systems of compulsion)를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다.(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M.H.Kahn & S.Blankenburg, ” The Political Economy of Industrial Policy in Asian and Latin America” ,in M.Cimoli,G.Dosi, J.E.Stiglitz ( eds.)  Industrial Policy and Development,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그리고 발전의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우리는 개발국가가 권위주의 국가이기도 한 사실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이 권력-규율 수준의 문제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할지 모른다. 잘 아다시피 권위주의 개발국가는 노동에 대한 통제국가인 동시에 자본에 대한 통제국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통제하는 개발국가가 권위주의국가가 아니고 어떻게 가능할지, 권위주의 국가가 아니고서 어떻게 자본권력에 대한 규율을 강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적 사회기반이 약한 조건에 있을 때는 어떻게 될까? 해당 사회구성에서 국가와 시장, 기업의 관계와 함께,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나는 <23가지>의 제도론적 성장론에는 이와 같은 권력과 규율 지점의 까다로운 논의가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단지 장하준에만 빠진 것이 아니다. 국제학계 전반의 개발국가론의 경우도 사정은 별 다를 바가 없는 것같다.

셋째, 위와 관련되는데 나는 <23가지>가 국가의 능력에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는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의 정치적 민주화이후 경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치적 민주화이후 자본세력에 대한 규율력 그리고 갈등 조절의 능력은  어디서 나오나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국가에 조절 부담과 규율 부담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노동과 시민사회를 통제,억압해 왔다면, 민주화이후 자본세력을 통제,규율할 역사적 힘이 형성되기  어렵게 된다. 노동세력이나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할 때, 그래서 민주화이행이후 약한 국가, 약한 노동-시민사회, 강한 자본세력의 구도가 될때 재벌권력은 고삐풀린 자본의 자유를 주장하고 나설 수 있다. 민주화가 오히려 국가의 조절-규율 능력의 후퇴를 가져오고 그래서 대자본을 통제할수 있는 새로운 민주적 규율체제,제도적 강제체제를 수립하지 못하면,  나라경제와 국민대중의 삶이 대자본의 볼모로 붙들릴 위험이 있다. 한국의 경우, 바로 여기에 정치적 민주화이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어렵고 경제적 자유화와 양극화가 진행되는 이른바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난 조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소급한다면 그런 역사적 함정을 파놓은 “개발국가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노동세력이 미약한 한국 및 동아시아 “개발주의”와 다른 한편으로 노동세력이 정치적 주체로서 진출하고 노사정 합의가 제도화된 유럽의 “사회적 합의주의”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구도가 다르고, 복지국가로 가는 길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23가지>에는 이 질적 차이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성장,분배, 복지의 선순환에 대한 저자의 논의는 정치경제적 구도가 크게 다른 유럽과 아시아를 미국과 대비하여 대체로 같이 묶고 있을 뿐이다. 저자의 복지국가 선순환 논의가 우리에게 “리얼”하게 와 닿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넷째, <23가지>는 국가와 사기업간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 그 건설적 효과를 말하고 있지만, 그 협력이 권력동맹이라는 것, 그래서 협력의 다른 이면에서 국가-대기업의 지배블록 안에 있는 인사이더와 그 바깥쪽으로 배제된 아웃 사이더간에 장벽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23가지>에서 기업과 기업간의 협력, 대기업-중소기업간의 협력에 대한 언급은 매우 미약하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중소기업의 활기찬 창업과 발전, 기업과 기업간의 개방적인 네트워크 협력, 풀뿌리 사회적 기업의 발전, 그리고 이에 활력을 불어 넣는 국가의 능동적 “지원과 규율”이 양극화를 극복하는 역동적인 선진혁신-학습경제의 길을 위해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얼마나 사활적으로 중요한지에 대해 <23가지>는 잘 말하지 않는다. 요컨대 <23가지>는 폐쇄적 협력과 개방적 협력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또 이와 직결되는데 수직적 협력과 수평적 협력도 잘 구분하지 않는다. 성숙한,역동적인 선진 혁신-학습경제란 폐쇄- 수직적 협력에 비해 한층 더 개방-수평적 협력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 발전한 경제이며, 아래로부터 다채로운 자율적 활동과 풀뿌리 창의가 피어 나는 경제이다. 따라서 국가가 개방-수평적 협력과 공정 경쟁질서를 키우도록 “제도증진적”( Institution augumenting) 방식의 개입을 해야 하는데 <23가지>는 이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제도증진 능력을 도외시하는 저자의 국가능력론이 일면적으로 치우져 있다고 생각한다.


4. 장하준과 로드릭


마지막으로, 장하준의 제도론적 성장론을 필자가 이전 글에서 잠깐 소개한 바 있는 대니 로드릭(D.Rodrick)의 논의와 비교해 보자.  로드릭 또한 장하준과 비슷하게 자유시장 경제학 및 워싱턴 컨센서스와 싸우면서 제도론적 성장론을 전개하고 있는 세계적인 학자여서 경제 시민의 공부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로드릭은 “고품질 성장을 위한 제도론”에서 “어떤 제도가 중요한가“라는 묻고,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 D.Rodrick, One Economics Many Recipes, 2007, pp.153-183):
– 소유권,
– 규제 제도,
– 거시경제 안정화를 위한 제도,
– 사회적 보험(-보장)을 위한 제도,
– 갈등 관리를 위한 제도.


이상 다섯가지 제도와 별도로, 또 로드릭은 개별 제도를 넘어서는 “메타제도”로서 “참여 정치”를 빼놓지 않는다. 로드릭은 장하준처럼 <23가지>나 되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의 제도론은 경제시민에게는 별로  친절하지 못하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읽기로는 로드릭의 5가지 제도론에는 장하준의 23가지 제도론에 빠져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특히 소유권, 갈등 ”관리“, 참여 정치에 대해 잘 짚고 있다. ”관리”라는 말이 여전히 거슬리지만, 이 점에 대비라도 한 듯이 로드릭은 참여 정치를 제시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소유권문제에 대해서만 간단히 추가 설명을 해 보자. 이에 대해 로드릭은 세가지 정도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고품질 성장을 위해서는 단지 형식적, 법률적 소유권(“ownership”)이 아니라 실질적 통제권(“control”)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 개혁의 경험에서 보듯이 이 통제권은 반드시 사적일 필요는 없고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더 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하준이 정부의 산업정책과 공기업, 정부의 기업에 대한 규제를 말할 때 사실상 그도 소유권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를 주로 주주가치 문제와 관련해서만 제한적으로 다루었고 본격적으로, 충분히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소유권-통제권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 사기업에 어느 정도로 통제권을 용인할지,  어느 정도로 규제하고 규율할지,  통제권과 규제간의 타협은 어디가 적정 지점이 될지, 역사적으로 특정사회에서 그 타협지점은 어떻게 설정되어 왔는지, 또 도래할 “접속의 시대”(제레미 리프킨)에는 소유-통제권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그리고 사적 자본과 공적 자본을 어떻게 배합하는 “공사 혼합경제”를 구성해야 할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자와 히로후미저,이병천역, <사회적 공통자본>을 참고)등등 매우 중요한 논점이 제기된다. 이 문제들을 논의하기에는 로드릭의 논의조차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그의 제도론조차 여전히 거시적 권력구조, 자본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과 논의가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로드릭의 제도주의 정치경제학도 “정치”가 약한 것같다. 아무튼 나는 이로써 장하준의 <23가지>가 본격적으로 말하지 않는 또 한가지, 그래서 우리들이 대한민국 경제시민과 소통하며 공부해 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또 한가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병천|강원대 교수·경제학/<시민과 세계>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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