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논쟁1_"나라 우습게 아는 지식인, 대중이 우습게 본다"
주대환_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영화 <<워낭소리>>의 조연들은 왜 그리 당당할까?
영화 <<워낭소리>>의 주연 배우는 소, 늙은 소, 늙어서 죽는 소다. 사람들은 소를 동정하여 눈물까지 흘린다. 그렇다고 슬프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사람을 웃기는 대사는 주로 할머니의 몫인데, 그 소박한 대사들이 좋다. 관객들은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웃으면서 공감한다. 사람들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안타까워 하고, 고향을 닮은 경상북도 봉화 산골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한다. 그런데 나는 조연, 최원균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았다. 그의 아내 이삼순 할머니도 물론 함께. 그러니까 이 특별한 영화를 보통 영화처럼 남녀 두 조연을 중심으로 보았다. 그랬더니 이 영화를 찍은 분들이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농지개혁의 빛나는 성공을, 농지개혁으로 탄생한 한국 자영농의 지난 60년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아니면 대한민국 60년 역사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 이라 부를 수도 있는 그 무엇을 나는 보았다. 최원균 할아버지의 나이가 80세, 그러니까 1950년 농지개혁 당시 그는 21살이었다. 당시에 그는 이미 남의 집 머슴살이를 8년이나 한 농사꾼이었다. 보통학교 졸업한 이후에는 바로 머슴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아니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를 중퇴했을지도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배고픈 10대 초반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농지개혁으로 당당한 독립 자영농이 되었다. 77세인 할머니는 열여섯에 결혼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할머니가 결혼한 시기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쯤 된다. 그러니까 농지개혁 당시에 두 분은 이미 독립 세대를 이루고 있었고, 당연히 자신의 몫으로 농지를, 작지만 소중한 땅뙈기를 분배 받았다. 그리고 부지런히, 정말 부지런히 일해서 9남매를 키워냈다. 오직 자기의 땅에서 일해서, 자기의 힘으로 자식을 키워냈고, 그들은 지금 모두 도시로 나가고 시골에는 아무도 없다.
대부분 수도권에 살고, 서너명은 부산이나 대구, 울산 쯤에 살지도 모른다. (농사지은 쌀을 자루자루 담아서 자식들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서울 방배동 주소가 적힌 자루가 보인다.) 두 분은 9남매나 키우고 교육을 시켜내어 모두들 도시로 내보냈고, 자식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현대적 직업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두 사람의 인생은 자기들이 결혼할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크게 성공한 것이다.
그러한 성공은 두 분이 결혼할 당시에 때마침 이루어진 위대한 역사적 사건, 농지개혁으로 그 조건이 만들어지고, 잠시도 쉬지 않은 자신의 노동으로 이루어졌다. 명절날 다양한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우루루 몰려온 아들, 딸과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이 빛나는 전리품이다. 증손자녀도 두엇 될지 모르고 전체 인원은 40명이 넘을런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침을 잘못 맞아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남자의 인생으로선 대성공이다. 최원균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승자의 만족감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러니 누구 말을 듣겠는가? 아무도 그를 가르칠 수 없다.두 사람은 자식들이 부양을 해야 마땅한 나이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독립 생활을 영위한다. 의사가 아무리 말려도, 자식들이 말려도 할아버지는 일하기를 멈출 수 없다. 오직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온 그의 신조를 누구도 꺾을 수 없다. 그 근검절약과 독립불굴의 정신은 오직 자영농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그 독립불굴의 정신은 한국인의 정신이 되었다. 그래서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한국 독립 자영농의 인생의 장엄한 황혼을 찍은 영화라고 할 수 있고,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 60년 역사의 밑바닥에 흐르는 정신을 찍은 영화이자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을 찍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당당한 조연들의 생각과 정서와 희망을 알아야 진보든 보수든 할 수 있고,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이야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본다.
물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요즘 들어 사물이란 보는 관점과 입장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새삼 실감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거듭 실감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남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반박하고 싶지 않다. 진지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자기 머리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이야기든 다 나름대로 "옳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내나 자식들과도 다툴 일이 크게 줄어들어 좋다. "물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는 칸트의 불가지론(?)도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하다. 36년 전에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납득할 수 없었고 반발하고 싶었지만, 그건 단순히 독일 유학하고 온 지 얼마되지 않는 철학 교수의 강의가 재미 없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인간의 능력과 이성에 대한 젊은이다운 과신이 있었던 듯하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국가는 무엇일까? 그것이 나에게 나라가 가진 의미와 같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다를 것 같다. 조금은 더 무거운 존재로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또 이른바 "대한민국 1%"에 해당하는 잘난 사람들이나 재산이나 소득이 많아서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가진 의미와도 다를 것이다. 결국 숱한 사람들 모두에게 국가라는 사물은 달리 보일 것이며 그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의 인식만이 특별히 더 중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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