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49] 협동조합, 진짜 어려운 사람들의 희망일까?

 

[시민정치시평 149] 

 

협동조합, 진짜 어려운 사람들의 희망일까? 

: ‘헛힘’ 쓰는 일을 줄이기 위한 네 가지 조언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협동조합이 벌써 650여개나 만들어졌다는 소식이다. 한 달에 200개꼴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올 연말쯤 2000개는 가볍게 넘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초보국가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만장일치로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 나를 한번 놀라게 했고 이토록 빠른 속도로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이 나를 두 번 놀라게 한다.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저성장 국면이, 아니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0여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양극화국면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1%의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 좀 나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도 어렵고 좀 못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도 어렵다. 좀 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모두 힘들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때, 많은 분들이 협동조합을 이 어려움의 탈출구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협동조합이 탈출구가 될 수 있는가? 아니, 탈출구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다른 분들보다 약간 앞서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약간 두렵기조차 하다.

 

1840년대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본격적인 협동조합은 로치데일 소비조합이었다. 악덕 공급자들과 상인들 때문에 가정생필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영국의 가난한 노동자주부들이 이 조합을 만들었다.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뜯기며 살던 프로이센의 가난한 자영농민들이 모여 처음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피땀흘려 농사지어 수확한 농산물들을 중간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기며 살던 가난한 덴마크 농민들이 모여 농협을 만들었고 전기가 필요하지만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미국의 40여개 주 서민들이 전기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넓은 국토 전체에 전화선을 연결할 돈이 부족했던 아르헨티나 정부를 대신해 주민들이 전화협동조합을 만들어 전화를 쓰게 되었다. 모두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이다. 이것이 협동조합선진국에서 협동조합이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의 정황이다.

 

협동조합의 원래 취지로만 보면 확실히 협동조합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누가 도와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궁하면 통했고 절실할수록 더 잘 해결되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협동조합이 가진 원래의 기능에 비추어 확실히 대한민국에서 협동조합은 할 일이 참 많을 것이다. 살기 어려운 시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갈게 있다.

 

첫째, 아무리 절실한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협동조합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경우 개점휴업상태의 협동조합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 이것은 협동조합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을 절망케 할지도 모른다. 다라서 협동조합은 보다 신중하게 준비해서 만들어야 한다.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협동조합만이 조합원들의 편익을 증진시킬 수 있고 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별 준비 없이 만들었다가 망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가 돌아간다.

 

둘째, 비슷한 업종이나 유형의 협동조합들끼리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수 있는 체계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이 사업적 측면에서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협동조합 간 협동이다. 그런데, 지금 새로 협동조합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협동조합들이 얼마나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한마디로 깜깜이다. 이러면 연대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협동조합 설립준비를 하려는 이들에게 그들보다 먼저 생겨난 조합들이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소상하게 알리거나 아니면 최소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출자금이나 운영자금이 부족할 경우 누군가와 상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제1금융권 은행이든, 아니면 무슨 창업투자 회사들이든 할 것 없이 이들과 연계하여 이 부분의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협동조합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것은 다른 회사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교육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주식회사를 만들 때는 주식회사가 무엇인지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 빤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다르다.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모르면 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경영을 할 수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이 부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책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역동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공립대학교 안에 협동조합과정을 신설해야 한다. 학부든 대학원이든 상관없다.

 

협동조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러한 내용들을 차분히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 또한 힘쓸 곳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헛힘 쓰는 일을 줄여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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