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54] 박한철은 ‘긴급조치 위헌결정’ 앞에 무슨 생각하나?

 

 

[시민정치시평 154] 

박한철은 ‘긴급조치 위헌결정’ 앞에 무슨 생각하나? 

: 박한철 청문회에서 확인되어야 할 3가지

 

이국운 한동대학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 4월 8~9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 1월 개인 신상 문제로 온 나라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이동흡 전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기억하면서, 국민들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헌법재판소장 감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도 바뀌었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도 바뀌었으니, 국민들이 큰 기대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번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간단히 말해 “헌법재판소장은 인격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실정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은 소소한 탈법행위일지라도 이를 통해 가까운 사람들의 신망을 잃어버린 법률가는 이제 더 이상 헌법재판소장 감으로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25년의 경험을 통해서 국민들은 현란한 법 논리를 앞세우는 법률가보다는 절제와 용기를 가진 인격자가 헌법재판소장에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일차적으로 후보자의 인격을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병역, 납세, 재산 형성 과정, 퇴직 후 이력, 주변 인물 등에 관한 세밀한 검증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검증이 어디까지나 헌법재판소장으로서의 결격 사유를 찾는 소극적 검증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박한철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 감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적극적 검증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이 점에 관하여 야권은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한철 후보자는 대검 공안부장으로서 촛불집회 참여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기소하고, 결국 무죄가 확정된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수사한 실질적 책임자였다. 또한 그는 헌법재판관이 된 뒤에도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서울 광장 차벽사건’이나 ‘SNS 선거운동 금지사건’ 등에서 줄곧 합헌 의견을 견지했다. 이와 같은 나름의 일관성은 박한철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이 될 경우 소위 ‘공안 헌재’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한국 사회 일각의 우려를 충분히 뒷받침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번 인사청문회는 무엇보다 박한철 후보자가 자신에 대한 합리적 우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 볼 만한 생각거리 하나를 제기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지명한 다음 날 헌법재판소는 유신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발령했던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제2호, 제9호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관여한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이루어졌으며, 그 가운데는 현직 재판관인 박한철 후보자도 당연히 포함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따르면 위 대통령 긴급조치들은 “입법목적의 정당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헌법개정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학문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므로,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고 명시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결정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한철 후보자에게 제기되어야 할 무수한 쟁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하에서 나는 그 가운데 중요한 것 세 가지만을 간략하게 제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긴급조치 위헌결정’에서 박 후보자가 따른 판단기준을 ‘서울 광장 차벽사건’이나 ‘SNS 선거운동 금지사건’ 등에서 그가 따른 판단기준과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만약 이 사건들에서 박 후보자가 적용한 판단기준이 서로 다르다면, 과연 달라진 것이 맞는지,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인사청문위원들은 꼼꼼히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가장 중요한 존재의의가 국민의 기본권보장이라 할 때,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따르는 기본권침해의 판단기준을 확인하는 것은 인사청문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긴급조치 위헌결정’에서 대통령 긴급조치의 근거조항인 유신 헌법 제53조를 판단의 대상에서 제외한 까닭과 함께 그 헌법 조항 자체에 대한 박한철 후보자의 규범적 평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의 위헌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준거규범이 원칙적으로 현행 헌법임을 선언하면서, 이미 폐기된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 긴급조치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유신헌법 일부 조항과 긴급조치 등이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다는 반성에 기초하여 헌법 개정을 결단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와 기본권 강화와 확대라는 헌법의 역사성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는 사실상 유신 헌법 제53조가 1987년의 헌법개정에 의해 이미 위헌으로 선언되었음을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인사청문위원들은 박한철 후보자가 긴급조치 위헌결정에 동참한 헌법재판관이기 이전에 헌법개정에 참여한 대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유신 헌법 제53조에 대하여 어떠한 규범적 평가를 가지고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확인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긴급조치 위헌결정’에서 2010년 12월 16일 대법원이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가 위헌이라는 이유로 무죄로 판결한 부분을 굳이 포함시킨 이유가 무엇인지를 짚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서 검증의 초점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해묵은 관할권 다툼에 관해 박한철 후보자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초점은 그 관할권 다툼이 ‘긴급조치 위헌결정’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대법원의 위 무죄판결보다 10개월여 전에 이 사건 헌법소원이 제기되었음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이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를 위헌으로 선언하기 이전에도 최종 결정을 내릴 기회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수방관 하다가 대법원의 판결 이후 2년이 훨씬 지나서야 위헌결정을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혹시 대통령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선언하는 영광을 대법원에 빼앗긴 뒤, 자존심 상해 하다가, 뒤늦게 이를 회복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강조하건대, 이 세 가지 쟁점은 모두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첫째는 기본권침해의 판단기준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정통성에 관한 것이며, 셋째는 헌법정치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중 어느 하나도 소홀하게 검증해서는 안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특히 셋째 문제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왜 그럴까?

 

법률가의 관점에서 한 걸음 물러나 ‘긴급조치 위헌결정’을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이 사건에서 위헌으로 판단된 대통령 긴급조치들은 1974년 1월 8일 이후 제정된 것이다. 따라서 피해 당사자들로서는 거의 40년 만에 자신들에게 옥살이를 강요했던 대통령 긴급조치가 위헌이었다는 점을 확인받은 셈이다. 4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해 놓고 이제 와서 그 법적 조치가 위헌이었다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인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읽어 보면, 더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입법목적의 정당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헌법개정권력의 행사와 관련한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학문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하므로,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 과연 그때는, 그 40년 전에는, 이처럼 기초적이고 단순한 헌법논리를 대한민국의 법률가들이 몰랐더란 말인가?


박한철 후보자도 동참한 ‘긴급조치 위헌결정’의 논리처럼 유신 헌법의 독소 조항들이 1987년의 헌법개정에 의해 이미 위헌으로 선언되었다는 입장에 서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헌법재판소가 서둘러 헌정사의 정통성을 밝히지 않고, 설립 25년이 되도록 시간을 끈 이유를 쉽사리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소송이 청구되어야 재판할 수 있다는 소위 ‘사법의 소극성’을 이유로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만으로는 적어도 2010년 이후 대법원보다 먼저 위헌선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하다가 기회를 놓친 뒤, 2년이 지나 뒤늦게 올라탔다는 식의 비판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자신이 최근에 내린 ‘긴급조치 위헌결정’에 어떠한 느낌을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만약 그가 일종의 긍지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국민들이 원하는 헌법재판소장이 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0년이 지나서야, 이미 26년 전에 국민들에 의해 위헌으로 선언된 문제들을, 대법원이 앞서 나간 뒤 2년 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서야, 이제 겨우 위헌으로 결정한 것이라면, 가장 먼저 역사와 국민들 앞에 죄송하고도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부디 긴급조치 위헌결정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법률가가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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