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00] 유명무실 국회윤리특위, 법규 정비 필요하다

 

[시민정치시평 200] 

 

유명무실 국회윤리특위, 법규 정비 필요하다

: 개인윤리보다 ‘제도윤리’ 강화가 더 시급

 

정하윤 고려대학교 지속발전연구소 연구교수

 

 

국회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과제의 응집물이자 동시에 사회적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그동안 국회는 조직구조, 운영절차, 인적요소 등의 제도 개혁을 통해 국회 본연의 기능인 대표성, 전문성을 향상시켜 왔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은 국회를 불신의 대상으로 비난하고, 국회의 ‘권위와 품격’에는 의구심을 표명한다. 이러한 불신에는 국회의 무질서, 파행, 정쟁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개개인의 폭력사태, 부정부패, 특권남용, 사생활 문제와 같은 윤리적 타락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회의 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국회의원 개개인의 윤리문제가 집단적 국회에 대한 평가와 연결되어 전체 신뢰도를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선진화, 운영 정상화 노력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개혁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국회의원의 개인적, 집합적 차원의 윤리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우선 국회의원 개개인의 행태를 보면 윤리의식의 수준이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다. 18대 국회에서는 전기톱, 해머, 최루탄이 등장하는 등 폭력사태가 발생하였고, 성희롱 발언, 여성비하 발언, 막말 파문도 이어졌다. 19대 국회에서도 인격모독, 폭력, 흑백논리가 문제시되면서 다수의 징계안이 제출되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쟁보다는 정당 간 감정적인 정쟁이 깊어졌다.

 

그러나 그동안 국회의원의 비윤리적 행태에 대한 징계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국회에는 국회의원의 국회법 위반, 의회주의 정신 위배, 품위 손상 등의 윤리문제를 견책하고 시정하기 위한 장치로 윤리특별위원회를 두고 있다.

 

1991년 설치된 윤리특위는 국회의원의 ‘윤리심사’,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및 사과,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제명을 포함하는 ‘징계’, 그리고 ‘자격심사’ 등 국회 자율권에 속하는 준사법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16대 국회까지 국회 윤리특위서의 징계 결정은 전무하였고, 17대 국회에서는 45건의 윤리심사안이 발의되었지만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것은 7건에 불과하였고, 37건의 징계안에 대해서도 27건이 폐기되거나 부결, 철회되었다. 18대 국회에서도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이 본회의에서 실제 가결된 사례(출석정지 30일)가 존재하지만, 54건의 징계안 중 1건을 제외한 나머지 30건은 폐기, 7건은 부결, 16건은 철회되었다. 국회 내에서 윤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정치적 타협을 통해 징계를 받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서, 제도 자체의 실효성 문제뿐만 아니라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이 가중되었다.

 

의원 윤리 관련 법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점 역시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못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91년 제정된 5개의 원칙적 사항인 <국회의원 윤리강령>과 15개의 세부실천규칙인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에서는 윤리강령 준수, 품위 유지, 청렴 의무, 직권남용 금지, 직무 관련 금품취득 금지, 국가기밀 누설 금지, 사례금, 겸직금지, 회피 의무, 재산신고, 기부행위 금지, 국외 활동, 회의 출석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윤리강령과 윤리실천규범 모두 내용이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일 뿐만 아니라 구체성과 엄격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하원의 경우, 의원 스스로가 윤리기준에 저촉되는 일을 손쉽게 알 수 있어 일탈의 범위가 축소되는 효과를 지닌 400페이지 이상의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윤리실천 규범이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의원 윤리위반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2008년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윤리위반 사실에 대한 사전조사 및 보고를 담당하는 하원 내 독립기구인 의회윤리실(Office of Congressional Ethics)이 설치되었다. 영국 의회의 경우, 윤리규범은 자율규제와 자기통제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2009년 다수 의원들의 공개사과, 지출금 반납과 사임과 해임, 은퇴선언을 일으켰던 ‘의회지출 스캔들’ 이후 의회, 정부,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법적 규정력을 지닌 ‘독립의회윤리기관(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 Authority)’이 창설되었다. 주요 국가의 의회윤리는 구체적이고 엄격한 윤리규범을 기반으로 의원에 대한 윤리 의무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 국회의 윤리는 국회의원 개개인의 준법정신이 높지 않아 질서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고, 윤리 위반 행위에 따른 징계요구안이 제출되어도 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유명무실한 윤리특위의 심사제도와 징계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비현실적이고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윤리 관련 규정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이와 같은 국회의원의 비윤리적 행태, 실효성 약한 윤리특위, 국회 윤리의 제도 미비 등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불합리한 특권을 제한하고, 윤리 관련 법령을 구체화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하며, 징계기준을 다양화하고 제도를 내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국회 개혁이 국회의원 개인의 특권이라든지, 구속력 있는 제한과 같은 개인 윤리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 윤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은 입법 활동을 전개하는 국회의원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고, 이미 극심한 국회 내 정당 간 감정적 대립을 더욱 극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회의 순기능을 해칠 수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인이자 독립적 신념을 가지고 판단을 할 수 있는 수탁자(trustee)이며, 국회는 주장의 교환과 토론 등 심의를 통해 합의를 모색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윤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윤리’를 강화시키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제도윤리는 개별 의원의 행동에만 관련된 것이 아닌 의회라는 기관, 의회제도, 더 나아가 정치체제 전반의 공적 운영에 필요한 것이다.

 

특히 윤리특위 기능의 정상화 차원에서 자문기구인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내실화하고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조사권한을 통해 의원들에 대한 징계심사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의 국회 내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윤리특위에 중립성 있는 민간인사의 참여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국회 윤리의 제도적 개선은 의원들의 윤리의식을 향상시킴으로써 결국 국민들의 의회에 대한 신뢰도를 상승시켜 국회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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