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학술행사 2014-05-21   1221

[토론회 후기] 세월호와 고장난 나라, 시민사회도 새로운 진화가 필요

 

‘고장난 나라와 세월호, 다시 국가를 묻는다’

 

5월 19일 참여연대 · 참여사회연구소 공동개최 긴급토론회 후기

 

2014년 5월 19일(월) 오후2시 참여연대와 참여사회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의 성격과 향후의 근본적 대안을 논의하는 긴급토론회 <고장난 나라와 세월호, 다시 국가를 묻는다>를 개최하였다.

 

사고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큰 상처와 충격을 안겼고 안산과 각지의 합동 분향소에는 조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이토록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고 원인은 물론 구조 및 수습과정과 정부의 대응 등 모든 방면에서 한국 사회의 누적된 비리와 무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이번 긴급토론회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성격을 규명하고 ‘고장난 나라’를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참여연대와 참여사회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긴급토론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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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화된 국가주의 패러다임을 극복해야

 

조대엽 고려대학교 교수는 이번 참사를 국가와 정부가 지향하는 방향성, 그 왜곡된 패러다임 혹은 프레임의 문제가 응축되어 폭발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혹자들이 말하듯이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달라져 그 이전과 이후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그간 한국 사회와 정치를 규정해왔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번 참사의 원인이 오랫동안 응고되어왔던 구시대적 국가주의, 시민의 실질적 삶이 완전히 분리된, 그래서 시대착오적이고 화석화된 국가주의와 해체되고 개인화된 사회와 기형적으로 결합한 것이 세월호의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이후’의 사회는 시민의 삶이 국가와 정치의 중심에 위치하고, 시민의 안전과 참여를 담보하는 거대한 국가공공성으로 재편된 공적질서가 시민들의 실질적 삶속에 실존해야 한다고 보았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번 참사의 충격은 국가 지배층은 물론이고 시민들조차 무관심하고 책임지지 않았던 여러 병폐들이 누적되었을 때 어떤 참혹한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제도화된 무관심과 무책임이 책임 실종의 정치로 귀결되며, 책임 실종의 정치는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가 했어야 할 일은 사고 이후 검찰 수사의 왜곡된 방향, 즉 구원파나 선장 등 사고의 책임을 계속 개인이나 특정 이익집단의 문제로만 치환해나가는 것에 대한 통제였다.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안전

 

이대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은 김윤철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에서 책임이 완전히 실종된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게 국가냐?”라면서 국가 존재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매우 정당하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원인을 단순히 국가의 무능이나 부재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였다.

 

국가는 세종대왕상에 올라간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를 10분 만에 진압하고, 유가족과 시민들의 시위는 순식간에 막거나 연행하는 등 다른 면으로는 너무나도 유능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을 들어, 이대훈 위원은 이러한 현상을 ‘두개의 국가’로 명명하며, 어느 한쪽의 ‘안전 과잉’이 다른 한쪽의 ‘안전 부재’를 유발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개의 안전의 차이는 ‘국가안보시스템’과 그것이 지향하는 ‘안보국가’로 인해 정당화된다고 보았다. 또한 향후 한국사회는 시민이 아닌 지배세력의 안전만을 보장하는 ‘안보국가’의 일상성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교수는 구체적인 개혁과제로 세월호-감독기구-정부(해양수산부)로 이어지는 유착관계 해소를 지적하였다. 주무부처인 해수부 공직자가 퇴직 후에 감독기구나 산하기관,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기업 등에 재취업하는 오래된 관행으로 인해 정상적인 관리감독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는 흔히 이야기 하듯이 ‘관피아, 모피아, 해피아’ 등으로 고착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직자 이해충돌 문제로서, 참여연대 등이 수년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요구해왔지만 정부가 무시해왔던 고질적 문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와 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윤리관리체계에 대한 정부의 제대로 된 문제인식에 기반하여 공직자윤리법을 개선하고 공공성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방향으로 공직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정태석 전북대 교수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한두 가지의 문제가 아닌 여러 단계, 여러 차원의 총제적 부실로 보고 공동체 전체의 차원에서 자성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이는 단순하게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가속화되는 신자유주의사회에서 팽배한 황금만능주의 구조, 일상적인 삶에서부터 만연한 눈감아주기 등, 기성세대의 전반에 책임이 함께 있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국가차원을 넘어서 한국 사회 전체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적 접근이 필요하며, 구체적으로는 관료주의 혁파와 재난관리시스템 정상화, 신자유주의 저지, 비례대표제 도입, 시민사회 중심의 패러다임 조성 등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사회연대의식에 기반한 사회재건의 주체로서 시민사회가 그 외연을 더욱 확장하여 연대를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정현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정태석 교수가 강조한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제기했다. 범사회적으로 사용되는 “미안합니다” 구호와 같이 정서적인 연대는 광범위하지만, 그 연대가 세력화로 이어지는 데에는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원인에는 87년 체제 이후 각각 공적 대의를 강조하는 ‘민주파 프로젝트’와 사적 행복을 강조하는 ‘보수파 프로젝트’가 서로 복잡하게 혼재되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조차도 양측의 가치가 복잡하게 혼재된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청년층의 경우, 취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젊은 층이 자신감 상실과 자기모멸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당당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양산이 중단되고 있다고 보았다. 정현곤 위원장은 결국 시민사회가 이를 해소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민주적 감성이 풍부하게 발현되는 공간을 활성화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담화는 예상되었던 수준… 공감능력 부재 아쉽다

 

이날(5/19) 오전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한 참석자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김윤철 교수는 대부분 대통령의 발언이 예상되었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청와대 개각에 있어서 정파를 뛰어넘는 초당적 대안 및 인적 역량의 비전 부재가 아쉽다고 평했다.

 

윤태범 교수 역시 박근혜대통령 담화에 새로운 내용이 없었으며, 해경 해체라는 조직 해체가 과연 근본적인 변화를 담보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표했다. 이대훈 실행위원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눈물이 피해자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슬픔의 눈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대통령의 눈물은 ‘영웅적인 희생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흘린 ‘치켜세우기의 눈물’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공감능력 부재를 지적하였다.

 

정태석 교수는 해경 해체 등 단순한 조직개편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며, 관료사회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이석태 대표도 대통령의 눈물이 세월호 피해자들을 단순한 피해자와 ‘헌신적 영웅’으로 나누는 특유의 ‘국민 나누기’ 사고방식의 발현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우리는 뭔가를 바꿀 수 없는 국민인가”

 

 

▲  화석화된 국가주의의 극복을 주장한 고려대학교 조대엽 교수

 

 

이 날 토론회는 앙상한 국가주의만이 횡행하는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 국민을 돌보지 않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앞으로 어떠한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대엽 교수는 7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주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인 면은 같을지 몰라도 실행되는 방식은 다르다고 보았다.

 

국가주의 패러다임이 비단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일반에서도 공유하고 있었는데, 일례로 조대엽 교수는 참여연대가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90년대의 여러 문제들이 “민주화된 국가주의” 내에서 제기된 문제들이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은 국가주의 자체를 벗어난 보다 광범위한 수준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들에게도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486세대가 오늘날의 청년들과 분리되어있다는 지적이나, 80년대 민주화투쟁 이후 한국사회가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민주화투쟁 세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그에 맞춰 변화되지 못한 것 같다는 지적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현곤 위원장은 정치권에서의 변혁이 아닌, 시민참여를 보다 확장하여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는 방식으로 근래 서울 등에서 부각되고 있는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운동, 즉 풀뿌리민주주의를 보다 확장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시민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접하고 민주주의적 감수성을 키워가야 하는 것이 어렵지만 앞으로의 과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참사를 지켜보면서 여전히 고장난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토론되어야 한다. 한 참석자의 말대로, 1970년도의 남영호 사고, 1993년도 훼리호 사건 뿐만 아니라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등 끊임없는 투쟁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왜 고쳐지지 않는지, 우리 국민은 뭔가를 바꿀 수 없는 국민인가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대엽 교수 말처럼 바뀌는 것이 없다고 해서 정말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영영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현재 할 수 있는 역할들을 그 자리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세력이 주체로 나서야 하며, 이 사회세력의 형성에 시민사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도 새로운 진화가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는 민주화운동세대나 시민사회진영 등,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성과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여야 한다. 새로운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과제들을 모아내고, 이를 수행할 대안세력으로서 시민사회가 광범위한 사회세력을 추동하는 촉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도 과거의 실패나 변화된 환경 등을 고려하여 새로운 진화가 필수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석태 대표의 “시민사회도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는 발언은 시민사회진영 전체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오마이뉴스 기사 바로가기 : http://omn.kr/874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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