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57] 새정치민주연합, 언제까지 국민의 탄식에만 기댈 건가?

 

[시민정치시평 257]

 

새정치민주연합, 언제까지 국민의 탄식에만 기댈 건가?

: 새정치가 꿈꾸는 복지국가를 실현하라

 

윤홍식 인하대교수, 참여사회연구소 편집위원

 

새정치민주연합! 만약 지방선거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당장 그 결과를 잊어라! 그 승리는 새정치연합의 승리가 아니다. 그 승리는 세월호 영령들의 슬픔에 대한 국민들의 탄식이지, 당신들이 보여준 ‘새정치’의 승리가 아니다. 패배했다면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라. 세월호의 슬픔에 기대려고 했던 자신을 질책하라. 새정치연합이 국민에게 새 정치의 희망을, 새 세상의 희망을 보여주었는지 자문해 보라!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실현하겠다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하고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새정치연합이 어떤 복지국가를 꿈꾸는지 나는 도대체 알 수 없다. 지방선거의 공약을 통해 새정치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투표 당일인 오늘까지 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분명한 것은 있다. 새정치가 꿈꾸는 복지국가는 과거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승패를 떠나 지난 총선과 대선은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국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패배였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으로 촉발된 복지국가 논쟁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총선과 대선의 프레임이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진보의 핵심 이슈였던 복지국가는 어느새 보수의 의제가 되어버렸다. 복지국가가 보수와 진보의 경쟁적 이슈가 되자마자, 복지국가는 더 이상 보수를 공격할 수 없는 무딘 칼처럼 보였다. 야당은 복지국가라는 무뎌진 칼 대신, 유신이라는, 국정원 선거 개입이라는,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정수장학회라는 칼을 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야당이 복지국가라는 칼을 내려놓자, 복지 논쟁은 사라지고, NLL로 대표되는 종북 몰이와 안보 이슈만이 선거판을 지배했다. 결국 국민들은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 대신 강요된 안보 불안에 표를 던져야 했다.

 

이것이 당신들이 꿈꾸었던, 아니 지금도 꿈꾸고 있을 복지국가인지 모른다. 복지국가는 당신들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집권하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상황의 변화와 이해득실에 따라 언제든지 내려놓을 수 있는 카드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정치가 복지국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지 집권을 위한 수많은 선택지들 중 하나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눈앞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새누리당과 기초연금법에 합의했을 때, 당신들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당신들이 복지국가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때, 당신들은 노인의 절반이 빈곤하고, 청년의 태반이 백수이고, 경쟁에 지치고, 고용 불안에 움츠려 있고, 성, 지역, 학벌 차별로 고통 받는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것임을 당신들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복지국가는 당신들의 집권을 위한 쓰고 버릴 수 있는 도구들 중 하나가 아니다. 복지국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친구가 되고, 국가가 국민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는 시민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인 동시에, 새정치연합이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라는 사실을 당신들은 단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이 당신들의 새정치에 기대를 건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새정치가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새정치가 성 때문에, 출신 지역 때문에, 학벌과 학력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자신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기를 염원한다. 모든 아이들은 어떤 부모를 만나든지 동등한 기회를 갖고,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복지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일용직 노동자의 자녀이건, 재벌, 변호사, 의사의 자녀이건 모두가 부모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에 따라 평가 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류역사는 국민이 염원하는 그런 사회는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러기에 당신들이 꿈꾸는 복지국가는 ‘아무개’ 복지국가가 아닌 ‘보편적 복지국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신들이 원한다고 보편적 복지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어갈 강력하고 조직된 정치적 주체를 필요로 한다. 언제까지 우리 모두가 함께 타고 가야 할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배를 2010년 무상급식과 같은 바람에만 의지 할 것인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의 탄식이라는 바람에 의존할 것인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갈 주체를 만들어야 한다.

 

새정치의 정치적 기반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중소상공인, 중소농어민, 여성, 양심적 지식인, 합리적 시민들의 강력한 정치적 연대에 두어야 하고, 이들을 새정치의 조직된 주체로 우뚝 세워야 한다. 더불어 새정치는 시민들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승자독식 구조로 되어 있는 현재의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민주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비례대표제의 강화 여부는 새정치가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들은 복지국가의 길에 놓여 있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커다란 역사의 장벽을 시민들과 함께 넘어야 한다. 시민들과 함께 복지국가를 향한 시민의 열망을 종북이라는 낙인으로 짓누르는 수구 보수에 당당히 맞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매우 우려스러운 일은 올 초부터 시작된 집권 여당의 통일 공세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전통적인 진보의 담론인 복지국가를 도구화하고, 무력화시켰듯이,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또다시 경쟁적 담론으로 가져가 도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꿈꾸는 복지국가는 종북이라는 덫에 희생되고, 복지국가를 열망하는 국민은 또 분단의 가여운 희생자가 될 것이다.

 

당신들이 꿈꾸는 복지국가는 한반도 분단을 넘어 민족의 평화통일을 담아내는 담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구정치’의 복지국가와 다른 당신들의 ‘새정치’가 꿈꾸어야 할 복지국가이고,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가야 할 길이다. 당신들이 이 길을 갈 때 당신들의 새정치는 국민의 새정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시민정치시평은 5월부터 주 1회 수요일에 발행됩니다.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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