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02] 안전 사고는 국민 탓? : 가해자가 사라진 ‘안전혁신 대책’

 

[시민정치시평 302]

 

안전 사고는 국민 탓?

: 가해자가 사라진 ‘안전혁신 대책’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안전한 대한민국’과 ‘규제완화’라는 모순된 정책기조를 갖고 사기극을 벌여왔다. 세월호 참사는 오로지 이윤만을 앞세워 왔던 한국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고, 지난 1년은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자괴감을 온 국민에게 던졌다.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적폐’와 국가개조를 운운하며 국민안전처를 출범시켰고, 참사 1주년을 앞둔 지난 3월 말 안전혁신 대책을 발표했고, 정부 부처별·지자체별로 ‘안전 대진단’, ‘○○분야 안전대책’이라며 각종 보도가 이어졌다. 참사의 진상규명조차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지만, “안전사회 건설” 또한 여전히 사기극이 진행 중이다. 

 

<한국일보>에 의하면, 참사 1년 이후 정부의 재난 및 안전 관리 대책에 대한 평가에서 67%는 ‘이전과 별 차이가 없다’, ‘더 위험하다’는 18.5%, ‘이전보다 안전하게 느낀다’는 11.2%로 나타났다. 85% 이상이 안전대책에 변화가 없거나 더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1년 사이에 피부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3월 말 발표한 ‘안전혁신 대책’ 이나, 4월 16일 ‘국민안전다짐대회’라는 명목으로 30분짜리 관변행사를 하는 행보는 자괴감을 넘어 전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다짐을 강요하는 모멸감마저 느끼게 한다.  

 

지난 3월 발표된 ‘안전혁신 대책’에는 위험을 생산하고, 사고를 유발한 가해자가 사라지고, 사고의 책임이 온 국민으로 전가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책임 구조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재해를 원인으로 하는 사고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고는 이윤 추구를 위한 위험의 생산과 동반된다. 이윤 추구를 위해 위험을 생산하는 자와 위험에 대한 정보를 알 수도 없고, 위험 관리의 주체도 아닌 노동자·시민이 사고 발생에 대해 동등한 책임을 지는 것은 왜곡이며 언어도단이다. 매년 2400여 명이 일터에서 죽어가는 OECD 산재 사망 1위 국가. 철도·지하철 사고, 건물 붕괴 화재, 선박 사고 등 똑같은 원인으로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한국 사회.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대두되었던 것은 ‘왜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는가?’였다. 

 

거기에는 500조가 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으면서도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이 있었다. 기업은 무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으로 채워나갔다. 안전 투자는 외면하고, 안전 관리는 대행 기관으로 넘기면서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할 사업장 안전이 붕괴되었다. 실행할 인력도 투자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장 안전 관리는 대행 기관이 만들어준 두꺼운 책자로 기록되어 서류함 깊숙한 곳에 처박혔다.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의 안전 관리 붕괴는 화학물질 폭발 가스 누출로 지역 주민을 위협했다. 매년 650명의 건설 노동자 산재 사망이 방치되는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도급은 부실시공으로 이어져 다리, 도로, 환풍구, 체육관 등에서 각종 붕괴, 화재, 폭발사고가 나 시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자본의 탐욕으로 노동자·시민이 죽고 다치는 현실에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안전 혁신 대책은 사고를 유발하는 기업에 대한 엄정한 처벌 강화이다. 

 

반복적인 산재 사망과 재난 사고의 또 다른 가해자는 안전 철학이 없는 정부 기관이다. 반복적인 철도, 지하철, 항공, 버스 등 공공 교통 영역 대형 사고의 원인은 내구연한의 완화로 인한 노후화, 설비 보수, 승무직 등 외주화, 1인 승무제 도입으로 대표되는 인력 문제, 장시간 노동에 있다. 공공 교통이 공기업 구조 내에 있는 한국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와 동일한 원인의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수익성, 효율성을 앞세우는 공사의 경영 목표에 있고, 근본적으로는 안전 철학이 없이 공기업 평가를 강제하는 정부 부처에 있다.

 

세월호 참사 1년 

 

1년 동안 쏟아져 나왔던 각종 안전 관련 법 제도 정비는 단 한 치의 진전도 없다. 사망 사고에 대한 기업의 조직적 책임을 묻는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 철도, 지하철의 내구연한을 강화하고, 1인 승무제를 없애는 철도 안전법 개정, 도로 위의 세월호인 화물 과적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도로법 개정, 위험 업무 외주화 금지, 비정규직 고용 제한 등, 근본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은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 완화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새누리당 전원 의원의 발의로 ‘행정 규제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안전처는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원상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중복된 안전기준을 대폭 조절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안전기준 중복이라며 검사 주기를 완화하는 규제완화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안전 대책의 핵심 사업으로 지목하고 있는 안전 대진단은 이미 졸속 형식 점검으로 문제제기되고 있고, 국민 참여형이라는 안전 대진단은 안전 진단과 점검에 기업과 유착, 부패비리의 전력이 있는 기관들의 참여로 신뢰를 기대할 수 없다. 사업장 위험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은 구경도 못 하는 형식적 졸속적 점검과 진단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쏟아져 나오는 안전 대책을 집행할 예산과 인력에 대해서는 정부 부처 어디도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못 하는 대형 사기극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규제 완화, 외주화, 비정규직 고용, 솜방망이 처벌, 노동자, 시민 참여 배제를 그대로 둔 또 한 번의 “안전한 대한민국” 사기극은 중단되어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