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454] 헌법에 ‘갑질 폭력 금지’를 넣는다면?

헌법에 ‘갑질 폭력 금지’를 넣는다면?

갑질 기업, 범죄집단 안 되려면

 

안진걸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최근 벌어진 일련의 재벌 폭력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 곳곳의 갑질을 봤을 때 노동자·국민들은 민주공화국을 염원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작금 삼성공화국·재벌공화국·갑질공화국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쓰여 있다. 곧 개헌도 해야겠지만, 사실 지금의 헌법에도 아름다운 조항이 참 많다. 그러나 부당한 현실은 헌법을 수시로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고, 그래서 많은 권력들이 재벌과 특권층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역시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쓴 촛불시민혁명을 일으키고 지금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최근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삼성그룹·한진그룹의 범죄적 행태에 경악하고 있다. 단언컨대, 삼성은 노조 파괴 기조를 그룹 차원에서 폐기하고, 산재피해자 문제인 반올림 이슈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대기업으로 거듭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한진그룹 조 씨 일가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고 평판과 신뢰가 핵심인 항공사업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야 할 것이다. 

 

최근 한진그룹 조 씨 일가의 갑질 폭력을 비롯한 탈세·밀수·횡령·배임 등을 포함한 온갖 만행과 범죄 행위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국민들의 공분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조 씨 일가를 한진그룹의 모든 사업에서도 다 퇴출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지만 그것까지 강제로 시행하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안전이 생명이고 공공성이 큰 항공교통 사업에서만큼은 퇴출시켜야 한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매우 높다. 조 씨 일가가 그동안 항공기 안팎에서 저지른 안전 저해 행위, 승무원들에 대한 갑질 폭력 행위, 그리고 수시로 저지르고 있는 보안·검역 규정 위반 행위 등을 감안하면 국민들이 불안해서, 부끄러워서, 화가 나서 더 이상은 대한항공을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것이다.

 

지난 2014년 땅콩회항 사태 때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조현아 씨를 갑질 폭력 피해자들의 피맺힌 마음으로 고발한 바 있다. 당시 조현아 씨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를 되돌려 승무원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폭력적으로 내리게 한,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를 일으켰는데, 이에 대해서 참여연대가 조현아 씨를 항공법과 항공보안법 위반,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강요죄 등으로 고발한 것이었다. 그때 고발인으로 참여했던 필자는 실제로는 조현아 씨를 우리 헌법이나 형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인간존엄 말살죄”, “직원영혼 파괴죄”, “노동천대 갑질죄”로 고발하는 심정이었다. 갑질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인간 일반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해당 노동자들의 영혼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범죄행위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재벌들은 반사회적 범죄 행위를 수십 년간 아무렇지도 않게 수시로 저질러왔고, 그럼에도 제대로 된 처벌이나 퇴출 조치를 당한 적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이토록 비참한 상황까지 다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재벌의 탐욕, 독식, 갑질 폭력 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이들을 비호하는 관료 및 정치세력·언론계·학계·법조계 등에 의해서 이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악질적 범죄행위를 반복적으로 저질러 온 것이다.

 

2014년 조현아 씨의 잘못이 큰 사회 문제가 되었을 때, 그는 대한항공 고위 임원들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 문제가 된 것이냐,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합니다. 수십 년, 수년 간 아무런 문제없이 그런 짓을 해왔고 그동안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땅콩회항 때만 이렇게 문제가 된 것이냐고 의아해 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개선을 촉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황당한 인식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땅콩회항 사태 시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했던 대한항공의 최악의 사과 문과, 조현아 씨 동생 조현민 씨의 ‘언니를 위해 복수하겠다’는 취지의 문자, 당시 국토부의 대한항공 비호 행위 등은 그들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에 재벌 총수 일가들이나 사회경제적 권력자들의 갑질 폭력 행위가 발생했던 초기부터 이들이 엄정하게 처벌받고, 그로 인해 회사의 명예·평판을 실추시키고 손해를 발생시킨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 경영일선에서 퇴진시키고, 나아가 회사에 대해 손해를 제대로 배상하게 만들고, 역사와 사회의 기초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파괴한 죄에 대해서 피해자들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집단소송을 치르게 만들었다면, 아마도 이들은 엄벌과 무거운 배상이 무서워서라도 그 잘못된 갑질 폭력을 ‘실용적인’이유에서라도 근절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그런 반사회적 범죄를 일삼고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것을 넘어 오히려 총수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버젓이 또다시 회사의 최고위층을 독차지하면서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를 반복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곳곳에서 삼성에 맞선 노동자·국민들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고, 대한한공과 한진그룹에서도 역시 ‘을들의 반란’으로 많은 국민들이 적극 연대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매한가지 일 것이다. 일해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또 정직하고 성실하게 땀 흘려 노동하는 것이 보람인 대다수 국민들은 더 이상의 어떠한 갑질이나 폭력도 당하지 않는 평등하고 존엄한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있다. 그래야 자기 자신, 우리 식구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도 이 황당한 갑질 폭력 체제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들의 투쟁과 연대가 멈춘다면,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재벌들과 사회경제적 권력자들의 갑질과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고귀한 실존이자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당하고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가야 될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대한항공 및 한진그룹 노동자들과, 또 삼성재벌과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과 끝까지 연대해 기필코 민중과 민주의 승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벌 총수 일가들에게 다른 나라의 헌법 1조 몇 개를 보여주겠다. 부디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지켜주길, 제발 반사회적 범죄집단이 되지 말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빌어본다. 그리고 우리도 곧 개헌을 하게 될 때 인간의 존엄성, 노동의 신성함을 대폭 강조하고 이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한 치도 침범할 수 없게 강력히 규정하면 좋겠다. 그래서 이렇게 개헌해보자고 ‘시민 안진걸 개헌안’을 제출해 본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노동존중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종류의 갑질 폭력이 금지되고, 대한민국의 기초는 일하는 국민들과 신성한 노동이다. 이에 국가와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전면적·절대적으로 보장·보호하여야 한다.” 

 

 

– 독일헌법 1조 :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이에 독일 국민은 세상의 모든 인간공동체와 평화 및 정의의 기초로서의 불가침이고 불가양인 인권에 대해 확신하는 바이다.

– 이탈리아 헌법 제1조 : 이탈리아 공화국은 노동에 기초를 두는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헌법으로 정하는 형식과 제한 내에서 주권을 행사한다.

– 네덜란드 헌법 제1조 : 네덜란드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평등한 상황에서 평등하게 대우된다. 종교,신념,믿음,정치적 의견,인종,성별 혹은 기타 그 어떤 사유에 기초해서도 차별대우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칠레 헌법 제1조 :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하고 권리를 보장받는 존재로 태어났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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