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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정치시평
  • 2018.12.10
  • 516

'크런치 모드'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과로사 조장하면서 생명수당 빼앗는 탄력근로제 확대

 

양문영 의사

 

생명수당 빼앗는 탄력근로제 확대?

 

탄력근로제는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데다 1년 주기로 확대하면 연 156만 원의 임금이 삭감될 수 있다고 한다. 탄력근로제 적용 시 임금이 보전되도록 하는 법조항은 선언적 조항에 불구하고, 다른 수당으로 임금을 보전하더라도 기본급과 연동되지 않아 추후 인상 효과가 미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심지어 이 삭감분이 장시간 노동에 대한 '생명수당'임을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50% 연장가산수당은 노동자 생명수당

 

연장수당이 왜 위험수당-생명수당일까? 과로사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야근하고 철야하면 몸이 축난다. 이는 멕시코와 함께 OECD 최장시간 노동 국가인 대한민국 노동자라면 누구나 체감하는 현실이다. 관련된 학계의 논문과 통계들은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쌓여 왔다. 연장근무를 하면 하루 8시간만 일할 때보다 심근경색 위험은 3배, 뇌졸중 위험은 33% 증가한다. 야간근무를 하면 수명은 13년 줄어든다. 오죽하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질병 산재 승인 과정에서 야간노동은 30%를 더 일한 것으로 시간을 가산하고, 노동시간이 길수록 업무와 질병 관련성이 높다고 판정할 정도다.

 

상상해보자. 장시간노동, 야간노동을 하면 평균수명을 대략 80세로 잡을 때 거기에서 13년이 깎이고, 젊은 나이에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심장마비)도 올 수 있다. 다행히 심장마비가 오기 전에 혈관 상태를 미리 알게 되었다면, 협심증 등을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며 관리해야 한다. 게다가 뇌심혈관질환 외에도 정신건강 위험으로 인한 과로자살, 사고위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위험부담은 더욱 무거워진다. 게임‧IT 업계에서 일정 기간 철야를 반복하는 크런치 모드로 인한 과로자살이 이슈가 된 바 있다. 지금껏 받아온 1.5배 연장 가산은 이러한 위험부담에 대한 생명 수당인 셈이다. 탄력근로제로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면서 생명수당도 주지 않는 꼼수라니, 정말 상도덕도 없다.

 

다른 때 몇 시간 덜 일하는 것으로 '휴식권' 보장되지 않는다

 

평균 40시간을 맞추니 된 거 아닌가? 일감이 많을 때 일을 더 하고, 일이 적을 땐 쉴 수 있도록 스케쥴표가 짜이니 합리적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업무 환경에서 실제로 일을 덜 하도록 보장받기 어렵다. 게다가 일정 기간 압축적으로 장시간, 고강도로 일하고 다른 때에 '덜 바쁜' 것을 충분한 휴식권 보장으로 볼 수 없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2~4주 이상의 장기 연속 휴가를 보장하고 있다. 국제 노동기구(ILO)의 연차 협약도 한 번에 적어도 2주 이상의 연속휴가를 명시하고 있다. 주 5~6일 일하고 주말에 쉬는 것이나 저녁에 쉬는 것은 노동 사이의 '휴게'이고,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휴식' 개념의 '휴가'는 장기 휴가로 구분하여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업무 효율을 목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장시간 일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면, 우리 몸을 그만큼 회복시킬 수 있는 휴식도 보장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같은 개악안은 장기 휴가가 보장되거나, 탄력근로제가 보편화된 유럽의 노동시간만큼 우리 노동시간이 짧아졌을 때에나 가능한 논의다(우리나라는 탄력근로제를 실시하는 독일보다 1년에 4달이나 더 일하고 있다). 지금은 OECD 최장시간 노동군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막 노동시간을 줄이는 법안이 단계적으로 적용되려는 와중이다. 노동자의 몸에 부담만 가는 탄력근로제 확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축나는 내 몸 '우리'가 지킨다

 

이렇게 몸은 더 축내고, 생명수당 혹은 병원에 꼬박꼬박 내게 될 몫의 돈도 빼앗아가는 탄력근로제 적용 및 확대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로서 답은 유일하다. 나와 내 동료가 함께 반대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3개월 이내 탄력근로제 적용요건인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를 거부하면 된다. 필자가 있는 민주노총 인천공항지역지부에서도 사측은 탄력근로제를 긍정적인 법안으로 포장해 적용하려고 시도한 바 있고, 지부에서는 이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족들과 친구가 다니는 직장엔 노동조합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직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도록 격려한다. 이번 기회에 손잡고 노동조합 상담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둘째, 내가 속한 노동조합에서 개악안 확대를 막아내는 투쟁에 함께한다. 사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선생님의 직장에도 노동조합이 없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가까운 노동조합 문을 두드리시라. 노동조합은 대기업 정규직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인천공항지역지부도 인천공항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조합이다), 빨간 띠 두르고 매일매일 회사 잡아먹는 구호만 외치는 무섭기만 한 곳도 아니다. 돈이든 건강이든, 내 손으로는 윗분들 하시는 일에 상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보일수록, 오히려 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현실적이고 유일한 대안은 노동조합뿐이다.

 

양문영 의사는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직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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