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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정치시평
  • 2019.05.27
  • 376

'乙들의 전쟁' 최저임금, 사회적 대화 포기인가?

최저임금 인상 결정구조 이원화 강행하나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19년 계륵으로 전락한 최저임금의 현실

 

올해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을 5년째 맡아 해오면서 소회가 많다. 촛불항쟁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소득주도성장의 마중물로 주목받았던 최저임금 인상이 2017년 16.4%, 2018년 10.9%로 연속 두 자리 수 인상율로 올랐으나, 그 와중에 수구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확산된 비판 여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용악화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는 걸 보면서 어이없었다. 

 

최저임금 시급 1만 원 달성 공약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2017년에 치러진 19대 대선에 출마한 유력 후보 모두의 공동 공약이었다. 달성 시점만 달랐을 뿐 2020년에서 2022년까지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실현하겠다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맞는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한 느낌은 정반대로 달라졌다.

 

필자는 정책 시행의 후속 효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섣불리 예단하기보다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분명한 것은 이의 없이 각광받았던 최저임금 인상의 사회적, 경제적 선순환 효과가 실종된 채 생존의 최전선에서 고투하고 있는 을들끼리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야 그것대로 벌이더라도 을들끼리 다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이게 가장 심각한 현실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왜 ILO 최저임금 협약도 위반하는 무리수를 두나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 효과보다 부정 효과 여론이 압도하면서 어느새 최저임금은 고용악화와 경기둔화의 죄인이 돼버렸다. 특히 작년 산입범위 논란 속 입법 개악으로 합리적 대안 마련에 실패하며 소모적 노정갈등이 격화됐고, 소상공인 단체의 최저임금 불복종운동으로 번지면서 을들 간 대립이 심화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주휴수당 논란으로 이어지더니 종국에는 올해 초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저기서 "불이야!" 적색경보가 요란하지만 정부가 불을 꺼야 할 소방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강행은 작년에 이은 또 한 번의 최저임금 제도 개악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구조를 노사당사자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심도 있게 토론해 볼 기회도 없이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을 밀어붙인 것이다. 결국 공익위원들이 모두 사퇴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정부가 제시한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방안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인상 범위를 결정하고 설정된 인상구간 안에서 결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전문가들이 정한 상하한선 안에서 노사가 결정하게 하는 것으로 최저임금을 직접 당사자가 아닌 전문가들이 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노사자율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며 노동자와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책임을 면피하는 선에서 최저임금을 정하겠다고 한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은 정부가 2000년에 비준한 '노사대표가 최저임금제도 및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할 것'을 권고한 ILO 최저임금 협약에도 위반되는 것이다. 비준된 ILO 협약도 간단히 위배하는 정권이 어떻게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공약을 지킬 수 있을지도 의구심이 든다.

 

공익위원 구성에서도 국회 또는 노사추천권이라는 단서를 달아 국회가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둠으로써 최저임금이 정략적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는 우려가 커졌다. 만일 국회가 공익위원을 추천하게 된다면 어느 정당이 다수당이 되느냐에 따라서 최저임금의 인상률은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정부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해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바꾸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대표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

 

대통령과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0여년 거의 유일한 사회적 대화기구로 작동했던 최저임금위원회를 이렇게 무력화시켜 놓고 무슨 사회적 대화를 하잔 말인가. 최저임금 결정구조는 이미 최저임금위에서 전문가TF를 통해 다룬 6대 제도개선 과제의 하나였지만 산입범위 논란에 휩싸여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묻혀 버렸다. 그런데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과 사전 협의조차 없이 기재부 장관 마음대로 결정구조 개편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니 최저임금이 그리 우스운가.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가 맞서는 을들의 대립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2020년 시급 1만 원 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문제도 생긴 만큼, 합리적인 인상 수준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며 다루면 될 일을 정부가 나서 결정구조 변경이란 꼼수로 강행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은 500여만 저임금 노동자들이 즉각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부의 독단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이러다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노정관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돼온 최저임금위원회 결정구조와 운영 구조에 여러 문제점이 있고 개선되어야 할 점도 많다. 하지만 사용자 이해를 대변해온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하는 이런 일방과 독단으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은 최대 다수 노동자의 생존권에 영향을 미치는 국민임금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당사자 중심으로 교섭해온 대표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로 시대 과제인 사회적 대화의 시금석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일방적인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을 철회해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대화의 틀 안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 대안을 심사숙고하여 논의하고 매듭지어야 마땅하다. 다른 길은 없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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