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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정치시평
  • 2020.04.27
  • 508

지역구 선거, 이대로 유지해야 할까?

비례대표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上

 

정태석 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총선이 끝났다. 이미 많은 곳에서 다양한 평가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서 이러한 평가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지역주의가 부활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지역구 선거가 보여주는 허상일 뿐임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 시민들의 선택은 확인되었고, 각 정당과 정치세력들이자신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선의의 정책경쟁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20대 국회에서 개정한 준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이다. 이 제도는 선거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조롱하고 반목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이념, 정책, 가치의 경쟁이 아닌 규칙과 절차의 문제로 말이다. 비례위성정당의 등장으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준연동형비례대표제도의 허점과 원칙/꼼수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헌법소원까지 이루어졌다. 하지만 헌법소원으로 많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무효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제도를 악용할 여지를 만들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대의제의 절차적 원칙인 표의 비례성(등가성)을 보장하는 데에도 매우 미흡함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지역구 선거제도의 폐해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지역구 선거를 유지하는 한 이른바 ‘연동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비례위성장당’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그런데 지역구를 없애자고 주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역구가 정치인과 지역주민들이 서로 접촉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현장 밀착형 정치인을 키울 수 있는 제도라고 옹호한다. 물론 일리가 있다. 그나마 선거 때만이라도 후보들이 시민들, 지역주민들에게 굽신거리는 것은 지역구 선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지역을 살피는 것은 늘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역구의 장점을 보전하면서도 이를 대신할 선거제도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먼저 지역구 선거의 문제점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지역구 선거는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위해 지지를 확대하는 데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도록 만든다. 이 때 동원되는 것이 바로 연줄과 돈, 그리고 지역개발공약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들은 대부분 공정성과 공익성에 위배되는 쪽으로 이용된다.

 

우선 연줄은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보다 출신학교, 출신동네, 친인척 관계, 친구관계 등 사적, 인간적 감정에 끌려 선택하도록 만든다. 또 지금은 직접 돈을 뿌리는 것이 위법이어서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돈이 넉넉한 사람들이 선거운동에 유리할 수밖에 없어 경쟁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지역개발 공약을 보면, 국가적 수준의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할 국회의원이 마치 지역이익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한다. 물론 지역의 목소리를 반영할 필요는 있지만, 이것은 국가적 수준에서 이익의 공정한 지역배분의 관점으로 접근할 문제이지 특정 지역의 개발이익 증대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지역개발 공약이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지역갈등을 낳아 공익성을 해치도록 둬서는 안 된다.

 

이처럼 지역구 선거제도는 그동안 국회의원 후보들이 지지확대를 위해 연줄과 돈을 동원하고 또 지역민원이나 지역이익에 매달리도록 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심각하게 훼손해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강남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려고 종합부동산세 공약을 후퇴시키는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이처럼 지역구 선거가 동네 민원들의 경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지역구 선거제도의 폐해를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적, 인간적 관계에 호소하는 후보들과 만나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며, 역으로 많은 후보들도 각종 지역민원이나 사적 요구를 앞세우는 유권자들을 만나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더 이상 국회의원이 사적인 민원창구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정당의 정치인(후보자)들과 시민(유권자)들이 만나 국가정책이나 공적 가치에 관해 소통하는 선거는 불가능할까? 이것은 아마도 선거가 인물에 집중하거나 특정 지역구의 경계에 제한되지 않을 경우에 가능할 것이다. 정당들이 지역구의 경계를 넘어 광역이나 전국 수준에서 이념, 정책, 가치을 두고 서로 경쟁하도록 한다면, 더 이상 특정 인물에 집중할 필요가 없어져 연줄, 돈, 지역개발공약의 개입 여지는 크게 줄어들 것이며, 정당의 특정 후보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활동가들이 정책홍보에 적극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정당들이 정책홍보를 하며 공적인 정책 경쟁을 하는 선거를 만들려면, 지역구 선거를 버리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제격이다.

 

물론 지역구를 없애려고 하면 당장 지역구에 의존해 활동해온 정치인들이 반발할 것이다. 그동안 지역구 수를 쉽게 줄이지 못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물론 중대선거구를 대안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역구 선거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표의 등가성 문제나 사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으며, 특히 소수정당이 대표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구가 사라지더라도 지역출신의 후보들이 좀 더 넓은 권역을 두고 서로 경쟁하도록 함으로써 지역 정치활동을 이어가도록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표의 등가성 훼손, 사표 발생, 소수정당 기회박탈 등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이제 지역구를 버리고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적, 정치적 이득이 있는지를 정리해보자. 첫째는 지역 대표성을 더 잘 확보할 수 있다. 지역구 선거가 좁은 지역에서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더 넓은 권역에서 지역 대표성을 확보하도록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돈, 연줄(연고), 지역개발공약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당들이 광역이나 국가 수준의 정책 경쟁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사실 지방자치제가 정착되어 있는 현실에서, 국회의원들은 좀 더 광역수준에서 지역을 대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소지역 단위의 집단이기주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비례대표 후보들이나 정당활동가들은 소지역 단위에서 동네 민원 해결을 두고 경쟁하는 데서 벗어나, 광역 수준에서 지역의 공익을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소지역 간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적 수준의 문제로서 우선 지방자치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고, 만약 이것이 어렵다면 지방의원과 국회의원이 함께 참여하는 소통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한편 이렇게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가면,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은 각 정당에서 자신의 가치와 정책을 잘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을 뽑는 합리적 과정이 될 수 있으며, 지역구 선거의 경쟁보다 훨씬 공정한 경쟁이 될 것이다.

 

둘째는 대표되지 못하는 사표의 발생을 최소화하여,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총선 지역구 선거에서는 51% 대 49%로 당락이 갈리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것은 짜릿하기는 하지만 공정하지는 못하다. 승자가 독식하는 지역구 선거에서는 49% 유권자들의 선택이 사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도는 사표를 최소화하면서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최대화하여, 대의제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다.

 

셋째는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한 권역에서 다양한 정당 후보들이 당선되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싹쓸이를 하는 현상은 더 이상 나타나기 어렵다. 오히려 지역유권자들의 다양한 의사가 공정하게 대표될 수 있어서 정당들 간의 정책 경쟁을 활성화하여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지역구가 사라지면 더 이상 지역구에서 후보단일화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차선이니 차악이니 하는 논리가 더 이상 필요가 없으며, 연대를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정당들이 서로 비난하고 조롱하고 반목할 일도 없어진다.

 

다섯째, 지역구가 사라지면 선거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고, 인물 경쟁에서 나타나는 흑색선전이나 사생활 공격 등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지역구 선거는 후보자 개인 인물을 알리는 데 엄청난 돈을 쓰도록 만든다. 또 이 과정에서 후보자들 간의 비열한 흑색선전이나 사생활 공격이 나타나게 된다. 게다가 후보자 개인을 표적으로 삼는 검찰이나 권력기관의 선거개입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더 이상 이런 문제들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니는 장점들을 생각한다면, 익숙한 제도라고 해서 지역구 선거제도를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정과 열망을 생각한다면, 선거제도에 대한 열린 상상을 통해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데 더 이상 주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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