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49] 홍콩의 자유에는 유효기한이 있나

홍콩의 자유에는 유효기한이 있나

홍콩 보안법에 관한 소고

 

송경호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다. 1842년과 1860년의 조약으로 홍콩 섬과 가우룽(九龍)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영국이 1898년에 추가로 신제(新界)를 조차(租借)하면서 약속했던 기한이 99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신계에만 해당되는 기한이었지만, 80년대 초 영국과 중국은 협상 끝에 홍콩 지역 전체를 반환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1984년 ‘중영공동성명(Sino-British Joint Declaration)’은 이 약속을 구체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성명의 2조에는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과 중앙 인민 정부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있을 것”이지만, 동시에 “외교와 국방 문제를 제외하고는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장한 일국양제(一國兩制)의 맥락에서, 이는 곧 ‘일국'(하나의 중국)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양제'(고도자치)를 허용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했다. 홍콩에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의 기한은 50년, 즉 2047년이었다.

 

현재 홍콩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이 약속의 이행에 관련된 것이다. 물론 시위의 이면에 사회경제적 문제와 정체성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홍콩 시위는 ‘일국’을 강조하는 중국 정부에 대항해 ‘양제’를 지키려는 투쟁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이는 곧 1984년의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보자. 1984년의 약속과 1997년의 반환 사이에서, 홍콩인은 기대와 불안을 함께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중국은 과연 약속을 지킬까?’ 어떤 식이든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웡카와이(王家衛) 감독의 1994년작 <중경삼림(重慶森林)>은 예정된 미래를 기다리는 홍콩인들의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가네시로 다케시(金城武)는 4월 1일 만우절에 농담처럼 헤어진 연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도 연인이 돌아올 것이라 믿지 않는 사람 같아 보인다. 사실상 연인의 마음을 돌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한 달 뒤 자신의 생일을 기한으로 정해둔 채, 그 날이 유효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하나씩 사 모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독백한다. “통조림을 사다 보니 정어리도 기한이 있고, 간장도 기한이 있고, 랩조차 기한이 있다. 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유효기한이 없는 것은 없는 걸까?” 이는 반환이라는 유효기간을 눈앞에 둔 홍콩인의 불안을 상징한다. 세상에 유효기한이 없는 것이 없다면, 자치와 자유에도 기한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 홍콩에 새겨진 기한은 1997년 7월 1일이었다. <중경삼림>의 가네시로는 기한이 되자 모아둔 파인애플 통조림을 억지로 삼키다 이내 게워낸다. 불안한 미래는 불행한 현실이 되었고, 불행한 현실은 막연한 기대로 이어졌다. 그는 이후 술집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겠다 결심했는데, 그 때 들어온 사람이 하필 금발의 마약밀매상이었다. 물론, 하룻밤의 짧은 만남으로 두 사람이 바로 연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깃발을 바꿔 달았지만, 1997년 7월 1일과 2일의 홍콩인이 같은 홍콩인인 것처럼.

 

그는 이제 자신을 찾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옛 연인과의 소통 수단이었던 삐삐를 버리려 한다. 그 순간 삐삐에 금발 여인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도착했고, 이에 감동받은 가네시로는 이렇게 독백한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유효기한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만일 기한을 적는다면 만년 후로 해야겠다.” 그러나 오늘날 홍콩의 현실은 가네시로가 꿈꿨던 기한 없는 사랑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비극은 예고된 것이며,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경험한 중국 당국은 일찍이 홍콩에서 친중 정치단체와 정당을 육성하려고 노력해왔다. 최근의 국가안전수호법, 약칭 ‘홍콩 보안법’ 역시 1990년 제정된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 예고되어 있었다. 홍콩 기본법 23조는 “홍콩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반동을 선동하고 중앙 인민정부를 전복하며 국가기밀을 절취하는 행위를 금지하여야 하며 외국의 정치 조직 또는 단체가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정치 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홍콩특별행정구의 정치 조직 또는 단체가 외국의 정치 조직 또는 단체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홍콩특별행정구가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부분에 따라, 중국 정부는 2003년에 국가보안법 제정을 시도했다. 당시 50만 명의 홍콩인이 거리로 나와 저항하면서 결국 법안은 폐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승리의 경험은 보통선거와 같은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자유에의 요구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노력은 2010년 선거법 수정안에 대한 타협으로 결실을 맺는다. 홍콩인의 참여를 미약하게 확대한 것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중국 공산당이 중국 영토 안에서 다른 정당에게 정치적 양보를 한 첫 번째 사례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의 지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범민주파는 제도권 정치에 실망했고, 중국 정부의 약속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홍콩에서 대중시위와 ‘광장의 정치’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이러한 맥락이 깔려있다. 알다시피, 이후 중국 정부는 ‘양제’의 약속을 지키라는 홍콩인의 요구를 ‘일국’의 논리로 억눌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홍콩 시위대가 외치는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의 구호는 그들이 더 이상 ‘일국양제’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기보다, ‘일국양제’의 원칙 그 자체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홍콩 보안법’은 ‘일국’의 가치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양분되어 있다. 영국 등 27개국은 “홍콩인들과 홍콩의 입법·사법부의 참여 없이 홍콩 보안법을 만드는 것은 ‘일국양제’를 훼손하는 것으로, 중국과 홍콩 정부가 이 법의 시행을 재고해 홍콩인들이 수년간 누려온 권리와 자유의 침식을 막길 촉구한다”며 이를 규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홍콩 보안법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 국가도 53개국이나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중국이 ‘일국양제’의 원칙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원칙 자체가 아니라 그 작동 방식에 문제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어찌되었건 중국 정부가 50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1984년의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17년 홍콩 주권 반환 20주년에 중국 루캉(陸慷) 외교부 대변인이 1984년의 선언에 대해 “더는 아무런 현실적인 의미가 없는” “역사적 문서”라고 언급한 것은 중국 정부가 애초에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었다는 의심을 뒷받침한다.

 

유효기한이 끝난 것은 홍콩의 자유일까, 아니면 일국양제일까? 1997년의 홍콩과 달리, 2047년의 홍콩이 예고된 파국을 피해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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