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53] 2차 지원금은 ‘긴급재난지원금’이 아니다

2차 지원금은 ‘긴급재난지원금’이 아니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앞두고 우리가 품어야 할 질문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한동안 잦아들던 코로나19가 지난달 중순부터 다시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는 ‘거리두기’를 강화하면서 재난지원금 ‘카드’를 다시 꺼냈다. 지난 1차의 학습효과일까? 아니면 그 성공에 따른 자신감일까? 이번엔 논의 진척이 무척 빨랐다. 그러나 그만큼 진통도 컸다. 무엇보다 ‘선별이냐 보편이냐’ 논란이 쉬이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일찌감치 ‘선별 지급’ 입장을 굳혔는데도,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을 중심으로 반발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2차 재난지원금’, 이대로 괜찮은가? 이게 최선인가?

 

결론부터 말하자. 이번에 추진되는 ‘재난지원금’은 지난 상반기에 우리가 경험했던 ‘긴급재난지원금’이 아니다. 그러니 ‘2차’라고 할 수도 없다. 11일 정부가 발표한 7조8천억 원 규모의 ‘재난지원금’의 내역을 보면 이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지원(3조8천억 원), 긴급고용안정 패지키(1조4천억 원), 이동통신비·아동돌봄비 지원(2조2천억 원), 저소득층 생계지원(4천억 원) 등이다. 이러한 지원책이 상반기에도 시행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꼭 재난 상황이 아니어도 정부가 통상적으로 행하는 ‘맞춤형’ 지원책의 연장이다. 이것은 그 성격상 선별적일 수밖에 없으니, 이를 두고 ‘선별이냐 보편이냐’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긴급재난지원금이라 부르는 것은 위와 같은 지원책과는 구별되는 전혀 다른 정책,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현금성 지원이었다. 규모도 컸고(14조원) 우리 역사상 시행된 적도 없었으니 큰 논란이 인 것도 당연하다. 겉으론 강경해 보였지만, 정부도 망설였다.

 

‘선별-보편’ 논쟁은, 위와 같은 현금 지원을 국민 모두에게 할 거냐, 아니면 일정한 기준으로 대상자를 가려낼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그러니 설령 지난 긴급재난지원금이 애초 정부의 안대로 국민 70%에게만 지급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선별’이라는 이유로 어제 발표된 맞춤형 지원책들—’2차 재난지원금’이라고 불리는—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차별적 현금성 지원이 아니므로 이번 ‘재난지원금’이 잘못된 정책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둘은 그냥 목적과 성격이 다른 정책일 뿐이다. 문제는 지난달부터 코로나19 재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지난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무차별적 현금지원에 대한 요구가 국민들로부터 나왔는데, 그것이 ‘선별-보편’이라는 프레임을 타고 이번 추경에서와 같은 통상적인 맞춤형 정책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어제 발표된 정부의 4차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우리가 ‘2차 긴급재난지원금’이라고 여기는 것은 거의 완전히 제외되어 있다. 요컨대, 이번 추경의 진짜 목적은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과 별도로 시행하던 ‘맞춤형’ 지원책에 필요한 예산 확보인 셈이다.

 

이것을 불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것으로 충분한가다. 말하자면 우리는 긴급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을 논하던 지난 3월 초와 같은 상황에 있는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 즉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현금성 지원이 지금 필요한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그렇다면 3월과 9월 사이에,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그대로인지를 따져볼 수 있겠다. 상반기에 통상적인 맞춤형 지원책 이외에 무차별적 현금지원이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코로나19의 경제적 피해가 너무 갑작스럽고 극심했으며 광범위했던 반면,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제도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가려내는 것도, 피해의 정도를 재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 소득지원이 필요했다.

 

지금도 그러한가? 6개월이라는 시간이 뚜렷하고 결정적인 변화가 발생하기엔 부족한 기간이다. 하지만 차이점이 없지는 않은데, 이를 두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다. 첫째, 3월에 비해 지금 우리 정부의 상황 통제력이 훨씬 크다. 당시엔 순전한 공포심에 사람들이 외출을 꺼렸고 그 결과 골목상권이 텅텅 비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다. 지금은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정부의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통제된’ 위축이다. 돌이켜보면, 반년 전 정부가 시장에 내보낸 신호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다르다. 명령하고 통제한다. 이게 완벽하지도 않고 좋게만 볼 수도 없지만, 어쨌든 그 반대급부로 정부는 지원도 한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두 번째로, 제도적 미비점도 불충분하게나마 개선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고용유지지원금이 그 예다. 이는 경기나 산업구조 변화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해진 사업주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할 경우 임금 일부를 지원해주는 통상적인 정부정책이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정책이지만, 여기엔 ‘구멍’이 많다. 이 제도의 지원을 받으려면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나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특고)는 사실상 거기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평상시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이런 이슈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도 지난 5월에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설, 특고·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 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추경엔 이를 위한 재원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바람직한 것이다.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도 서유럽 ‘복지 선진국’ 부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지난 6개월의 변화는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필요성을 불식시킬 정도로 충분한가? ‘선별-보편’과 같은 소모적으로 흐르기 쉬운 프레임 대신, 이 질문을 중심으로 앞으로 논의를 진행해보면 어떨까?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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