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59] 차별은 소수자를 ‘침묵’하게 만든다

차별은 소수자를 ‘침묵’하게 만든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차별금지법

 

한상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지난 6월 29일 21대 국회에서 의원 10인(장혜영 의원 대표발의)에 의해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표류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발표가 있었음에도, 정치권은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반대파의 거센 압박에 후퇴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정한 종교적 신념에 의한 반대를 제외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 주된 논거로 내세운다. 아무리 차별이나 혐오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훼손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기본권이며, 국가가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게 되면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끄러운 경사면’ 논변을 이용해, 국가가 어떤 발언이나 행위가 차별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게 되면, 국가는 계속해서 사생활에 대한 ‘검열’에 나서게 될 것이고, 비대해진 국가권력 속에 시민적 자유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우려는 경청할만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쉽게 포기해선 안 되는 소중한 기본권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에는 맹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논쟁이 특정한 사람들, 즉 차별이나 혐오의 ‘가해자’를 위한 표현의 자유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 즉 반복적인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는 ‘피해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우리는 얼마만큼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캐서린 겔버의 책 <말대꾸>(유민석 옮김, 에디투스)는 바로 이러한 물음을 다룬다. 그녀는 “혐오 표현의 공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은 사적이고 은밀한 해결 메커니즘에 의해서는 충분히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국가가 “역량 지향적인 혐오 표현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겔버에 따르면, 인종차별과 같이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차별과 편견의 유포행위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권리로 보호하는 것은, 거꾸로 “주변화되고 무력화되거나 억압된 사회 영역이 그러한 보호의 부담들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란 혐오표현에 한정된 쟁점이 아니다. 거꾸로, 차별받고 혐오에 노출된 소수자들의 발화역량을 강화해줄 수 있는 정책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겔버에 따르면, “표현은 꽤나 많은 인간 역량들에 핵심적인 것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훌륭한 인간적인 삶에 기여하거나 손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녀는 인간의 내적 역량과 외적 역량을 구분하는데, 내적 역량이란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표출할 수 있는 지능, 성격과 육체의 특징들을 말하며, 외적 역량이란 이러한 내적 역량이 행동으로 옮겨지도록 해주는 기회와 조건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녀는 누군가의 표현의 자유가 저해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적 역량과 외적 역량의 발전 모두에 역효과를 낳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차별받는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차별행위와 혐오표현에 대항할 수 있는 피해자들의 역량을 강화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 개입의 목적은 ‘형사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소수자의 역량을 증진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겔버는 이러한 역량 중심의 정책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려는 목적과 혐오 표현의 해악을 개선하려는 목적”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이들에 의해 방해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논의 중인 차별금지법은 바로 그러한 피해자들의 대항역량을 강화해주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혐오와 차별은 소수자를 ‘침묵’하게 한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금지조항들은 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로 인해 그들에게 강요되는 ‘침묵’으로부터 벗어나, 대항발화를 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공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즉 여러 가지 면에서 위해와 손상을 입기 쉬운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법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법’이 필요한 것은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를 성문화하기 위한 것이다. 성문화된 법의 조항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이중적인 결과를 낳을 때도 있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상처받고 억압받는 사람들, 고통의 피해자들이 기대어 스스로를 주체로 선언하게 해줄 수 있는 시금석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발리바르와 랑시에르가 각각 ‘인권의 정치’ 또는 ‘인권의 주체’라는 개념을 통해 주장하듯, 성문화된 권리의 선언은 배제된 자들이 그러한 권리를 ‘증명’함으로써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우리 사회와 법률이 단호히 반대한다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보편적 인권으로서 평등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별에 대항하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공적 선언을 통해, 소수자를 그러한 권리를 실현해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과정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혐오발언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이고 직접적인 처벌을 중심으로 한 규제보다는 차벌금지법 제정을 통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사회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이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혐오와 편견에 대항하는 소수자들의 대항역량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국가 개입은 그 자체가 해결책인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집단의 새로운 주체화와 정치화 과정으로 이어지는 ‘인권의 정치’를 위한 보조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들을 침묵에서 벗어나게 하는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배제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생성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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