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63] 가덕 신공항, ‘선거용’ 되지 않으려면 서울 중심주의를 깨야 한다

가덕 신공항, ‘선거용’ 되지 않으려면 서울 중심주의를 깨야 한다

지방을 살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4.7 보궐선거가 민주당에게 크게 유리하지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점은 진작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애초 보궐선거의 계기를 민주당 출신 단체장들이 제공한 데다, 부산의 경우 민주당이 압승했던 작년 총선에서도 탈민주당 바람이 거센 지역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했던 서울에서조차 민주당이 고전하는 건 다른 모든 사정을 고려해도 이례적인데, 이번 보궐선거가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관전이 많은 상황에서 혹시라도 국정농단 세력이 역사적으로 부활하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서울의 많은 시민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는 듯하지만, 그 결정적 계기가 부동산 문제라는 건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듯하다. 비록 이 부동산 문제가 단지 정부의 정책 잘못 때문에만 심각해진 것은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잡는 데 실패했고 그 실패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수도 이전’이라는 설익은 카드를 내놓았다가 오히려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만든 모양이다.

 

부산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한데, 여기는 애초부터 국민의 힘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던 데다 시민들은 성범죄 문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오거돈 전 시장의 그간의 시정에 대해서 아주 박한 평가를 내리고 있던 터였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시정이 크게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는 데다, 특히 인사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니 시민들의 반응이 좋을 리 없었다. 핵심적인 ‘MB맨’이었던 박형준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건 단지 그의 대중적 인지도가 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민주당은 어떤 정당인가?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서울의 경우 야권의 분열과 인물난에 기대고 부산의 경우 ‘가덕도 신공항’이라는 지역 숙원 사업을 성사시켜 선거를 이겨보겠다는 계산을 하는 모양이다. 그 계산이 맞아떨어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어딘가 좀 가련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분석해 온 대로, ‘촛불혁명’ 이후 민주당이 모든 주요 선거에서 승승장구해 왔던 건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권이 지리멸렬해서였다. 지금 야권이 어느 정도 재정비를 한 상태에서 잘해 온 게 별로 없는 민주당으로선 유권자들의 이른바 정권 심판 의지를 에둘러 갈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민주당은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발본적 성찰을 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새삼 민주당은 어떤 정당인지를 묻게 된다. 민주당은 진보 정당인가? 논란이야 많지만, 미국식으로 보면 민주당은 (우리나라에서는 정의당이 해당될 수도 있는) ‘급진 진보(radical)’는 아니더라도 ‘자유주의적/개혁주의적 진보'(liberal)라고는 해야 된다. 민주당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고비 고비마다 많은 시민 대중의 민주주의와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을 정치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이었고, 그런 점에서 성취도 없지 않았다. 지금은 소강상태에 있지만, 분단체제를 흔들어 한반도평화체제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킨 것도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유권자는 늘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임을 표방해 왔던 민주당의 개혁성과 진보성을 의심한다. 꼭 무슨 이념적 차원에서는 아니더라도, 많은 시민은 왜 민주당이 부동산 보유세 강화 같은 정책을 그토록 꺼려왔는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리 같은 데서는 왜 또 그토록 미온적이었는지, 코로나 위기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골을 극단적으로 키우고 있어도 다른 나라들은 다 한다는 중소자영업자에 대한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왜 그저 ‘립서비스’만 반복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한국의 민주당도 결국 미국 민주당이나 유럽의 중도좌파 정당들처럼, 토마 피케티가 말한바, ‘브라만 좌파’의 정당이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전통적인 기득권 세력의 ‘상인 우파’ 정당과는 다르지만,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자유주의 너머에서 사회경제적으로는 성공한 고학력의 부유한 엘리트들을 위한 정당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 귀결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하층 노동자층이 전통적으로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여기던 민주당이나 사회민주당 등에 배신감과 모욕감을 느끼면서 트럼피즘과 극우 포퓰리즘이 발흥하게 되었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일치된 분석인데, 우리나라라고 얼마나 다를지 모르겠다. 지켜볼 일이다. 이번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수많은 하층 노동자들과 중소상공인들이 정부의 정책적 무관심 때문에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는데, 이게 나중에 정치적으로 어떻게 귀결될지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당에 대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우려도 있다. 그건 바로 민주당의 ‘(수도권을 포함한) 서울 중심주의’다. 비록 민주당이 역사적으로 호남이라는 텃밭에서 기본적인 정치적 자양분을 얻어 성장해 왔지만, 수도권 시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큰 지지가 없었다면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주류 정당으로 성장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민주당의 서울 중심주의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 같고, 한때 노무현 대통령이 온 힘을 다해 실현하려 했던 지역균형발전의 기치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 서울 중심주의 문제는 결코 사소하거나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쉽게 말해 한국의 브라만들은 전부 서울에 산다. 이른바 명문대들도 전부 서울에 있고, 주요 기업들도 전부 서울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산다. 당연히 교통 문제나 공해 문제 등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당 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부동산 문제도, 초저금리 환경 등을 고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이 서울의 과밀과 관련이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우리 사회의 병든 입시 중심의 교육 문제도 결국 ‘인 서울’ 대학을 위한 경쟁에서 비롯한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공동선의 정치’

 

그동안 민주당은 수도권 시민들의 큰 지지에 취해만 있었지 그게 어쩌면 ‘독이 든 성배’를 들이키는 일일 수 있음을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은 지금 ‘교통 지옥’이고 ‘공해 지옥’이며, ‘부동산 지옥’이고 ‘사교육 지옥’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서울과 수도권의 부유한 고학력 시민들의 지지로 정치적 힘을 키워 왔다. 그래서 민주당은 서울과 수도권 유권자들의 요구에 조금이라도 더 부응하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화되는 서울 중심주의는 서울을 더욱더 사람이 살기 힘든 도시로 만들 뿐이다. 끊임없이 신도시를 만들고 도심을 재개발하며 도로를 새로 만들고 GTX 같은 광역교통망을 확충하려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수도권에 사람이 더 많이 몰리게 해서 더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낼 뿐이다. 고육지책으로 ‘수도 이전’ 카드를 불쑥 꺼내 봤지만, 돌아온 건 거대한 역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배반감도 커져 왔다. 몇 년 전 호남에서조차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적이 있었다는 건 그저 지나간 일이라고 해 두자. 민주당이 정권을 유지하고 제대로 된 전국 정당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PK 지역이 중요한데, 이 지역민들은 좀처럼 민주당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서울 중심주의는 집권 후에도 이 지역에 대해 한 두 가지 선심성 정책 말고는 특별한 정치적 배려나 전망을 마련해서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 보궐선거를 맞아 허둥지둥 ‘가덕 신공항 특별법’ 같은 걸 통해 전세를 뒤엎으려 하는데, 결과까지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이 특별법 방식의 접근이 제대로 된 절차적 정당성을 갖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 정치적 매표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은 옳고 그름을 떠나 큰 울림을 준다. 게다가 애초 TK 지역의 반발 때문에 우왕좌왕하던 국민의 힘도 특별법에 찬성하고 나온 터에 그 정치적 효과가 얼마나 클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면 좋겠다. 지역균형발전은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중시했던 민주당의 핵심 정치적 가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재집권 후 이 가치의 실현에 대해서는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하더니, 아직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변창흠식 도심 공공개발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애초 문제의 진앙인 서울 집중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외려 그 문제를 더 강화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그런 방식으로 서울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정책은 결국 서울을 더 지옥 같은 곳으로 만들 악순환의 출발점이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밀어붙여 부울경 지역민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건 선거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동학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공항이 결국 일부 토건족들만 배부르게 하지 않게 할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평화로운 어촌을 뭉개고 아름다운 섬을 다 깎아서 만들겠다는 신공항이 정말 결정적인 지역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할 어떤 비전이 있는지 묻고 싶다.

 

서울 시민들에게도 서울을 더 쾌적하고 덜 복잡하게 만드는 게 궁극적으로는 더 낫다. 그러나 서울의 지속가능성은 지역균형발전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세종 행정수도를 완성하겠다고 한마디 했다가 외려 부동산투기가 지역으로까지 번지게 하는 결과만 낳았던 그런 접근법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인 지역균형발전의 전망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천해 가는 모습을 보여 왔더라면 서울 시민들도 크게 환영했을 터다. 여러 번 변죽만 울리다가 패색 짙은 선거판을 뒤집어보겠다고 거대 여당의 힘을 과시하며 서두른 특별법 방식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의 전망과 그에 따라 실천되어 온 다른 많은 구체적 정책들이 있었더라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도 그 당연한 일부로 인식되고 다른 정책들과 결합하여 정치적 효과도 더 크게 거두었을 거다.

 

지역균형발전은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선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다. 지금 지방이 죽어가고 있다. 지방이 죽으면 서울과 수도권은 더 지독한 지옥이 된다. 반대로 지방이 살아야 서울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지방의 죽음이 지방만의 죽음이 아닌 이유다. 한국의 경우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지역 불균형 문제와 중첩되어 있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공공기관을 더 많이 지방으로 보내야 하고 행정수도도 완성해야 한다. 의사들의 어처구니없는 직업이기주의 때문에 일단 좌초하긴 했지만, 지역의 공공의대 설립이나 최소한 유사한 방향의 계획도 관철시켜야 한다. 또 지역의 대학들을 획기적으로 지원해서 살려내야 한다(교육부는 지금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 인구 절벽 시대에 충원율을 대학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수많은 지방대의 소멸은 이제 가시권에 들어섰다). 농어촌을 살리고 지역의 품위 있는 일자리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이런 정책들과 어우러질 때에야 변창흠식 공공개발도 가덕도 신공항 건설도 단지 ‘선거용’이 아니게 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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