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25] “국민이 비극적 짝사랑 멈추게 하려면…”

[시민정치시평 125]

“국민이 비극적 짝사랑 멈추게 하려면…”
: 안철수와 데마고그, 그리고 정당개혁

박주민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실행위원

막스 베버(1864~1920)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을 통해 현재의 보통선거에 의한 민주주의체제와 유사한 ‘지도자적 민주주의’가 확립되면서 직업 정치인과 정당시스템이 등장하고 발전하게 되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베버에 의하면 선거를 통해 정치적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집단은 소극적인 대중으로부터 보다 많은 표를 얻을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상시적이며 전국적으로 작동하는 머신(machine)인 정당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머신의 작동을 위해서 직업적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이것이 바로 직업 정치인의 시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중의 지지를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 정당과 직업 정치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당들이 거대해져서 소수의 정당이 정치역역을 장악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기 어렵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는 것이 어렵게 될 것이다. 또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기업들이 소비자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영역을 장악하게 된 소수의 정당들은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이렇게 거대해진 정당이 일부 사회의 소수 특권층과 철저히 결탁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러한 소수 특권층과의 결합은 눈에 보이는 부패의 사슬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금융위기 시 미국에서 ‘대형 금융기관과 규제없는 금융시장이 미국경제에 진정으로 유리하다’고 민주·공화할 것 없이 굳게 믿었던 것처럼 스스로도 결탁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결탁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소수 특권층과 결탁된 거대하고 지배적인 정당들은 어떤 문제가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있는지 여부나 그 정치적 의제가 어떤 방향으로 다루어질지 등에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소수 거대정당의 정치영역 독점, 더 나아가 특권층과 결탁된 소수 거대정당의 정치영역 독점은 정당의 탄생배경과 달리 정치영역을 완전히 왜곡하고 국민을 소외시키게 될 것이다. 만화 ‘호머 심슨’의 에피소드 중 외계인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각 대통령후보를 납치한 후 외계인들이 둘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미국을 지배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있다. 미국 국민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외계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이렇게 한탄한다. “누구를 찍더라도 똑 같잖아!”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어떨까?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군사독재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 대의기능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2003), 평택미군기지이전(2006), 한미자유무역협정체결(2007), 미국산 쇠고기수입문제(2008), 한진중공업 희망버스(2011)와 같은 사건들이나 비정규직을 늘리고 산업과 금융에 대한 규제를 푸는 정책 등 2000년 이후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모두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사안이었으나 그 합의안에 대해 대중들이 극심한 불만을 표출하는 사안들이 즐비하다. 이에 대중들은 정치적 영역에서 자신들이 제대로 대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외감(그로 인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느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여야 정치인 모두가 대중들에 의해 집회참석 및 발언이 거부되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소외감의 표현이었다. 최근 안철수 현상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와 같이 정당보다는 정당 외부에 있었던 신선한 인물들에 대해 국민들이 성원을 보내는 것 역시 이러한 소외감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87년 운동의 대표적인 구호였던 ‘직선제 쟁취’는 성취되었으나 2000년대 대중들이 정당을 통한 대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이유는 소수의 정당들이 정치영역을 장악하고 있고, 이 소수의 정당이 국민의 열망 보다는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나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여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국민들은 폐쇄적 정당으로 인한 소외감을 해결하기 위하여 특정한 인물에 대해 강력한 성원을 보내는 방법을 많이 써왔다. 정주영, 박찬종, 정몽준, 문국현 그리고 최근의 안철수 등 그 정치적 성향은 다를지라도 국민들이 보내는 성원을 등에 업고 기존 정당을 넘어서 혹은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 정치지형에 균열을 내려 했다. 이것은 강력한 데마고그(demagogue)가 등장해서 국민을 동원하는 통상적인 모습과 달리 국민들이 오히려 폐쇄적 정당에 대한 대항마로서 데마고그를 만들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가 ‘국민의 부름을 받고 나왔다’고 한 것은 그런 면에서 과장된 것은 아니다. 한편, 막스 베버는 위 책에서 데마고그와 정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데마고그라 하면 통상 자극적인 변설과 글을 바탕으로 하여 대중을 기만하여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선동가를 말한다. 막스 베버는 정당이 지도자적 민주주의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나, 강력한 데마고그를 만나면 그에 복종하게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당은 표로 상징되는 정치적 지지를 먹고 사는데 데마고그가 그러한 정당의 요구를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데마고그와 정당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때로는 견제하는 과정에서 정당이 오히려 민주적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이 언제나 성공적으로 정당에 대항할 수 있는 데마고그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성공적인 데마고그 만들기’는 예외적인 현상일 것이다. 또 만들어진 데마고그가 자신을 만들어준 국민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기존의 정당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민들의 정치적 소외감을 종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당구조에 대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최소한 정당이 선거에 내보낼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에 당원들 외에 지지를 얻고자 하는 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책이나 정강에 대한 부분도 당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토론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이 정당의 의사결정에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구조의 개혁이 하나의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잊혀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정당구조의 개혁을 통한 국민의 정치적 참여보장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국민들이 매번 실패하지만 데마고그 만드는 비극적 짝사랑을 그만둘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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