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43] “독도 폭파시키고 싶다”던 박정희…박근혜는?

 

[시민정치시평 143] 

 

“독도 폭파시키고 싶다”던 박정희…박근혜는? 

: 박근혜 정부, 제2의 역사전쟁 벌일까?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교수 

 

이명박 정부는 가고 박근혜 정부가 온다. 지금 역사학계 초미의 관심사는 박근혜 정부, 아니 박근혜 당선자가 직접 제2의 역사전쟁을 도발할지의 여부에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을 떠올려 보자. 참으로 나라 안팎에서 역사 전쟁이 빈번했다. 그 양상 또한 전에 없던 모양새를 띠었다. 국가 권력이 직접 역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며 역사 전쟁의 도발자로 나선 것이다. 그 선봉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취임 직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 시위에 직면해야 했다. 교복 입은 소녀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에 놀란 그와 보수·우파세력은 그 원인을 역사교육, 특히 한국근현대사 교육에서 찾았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당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금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이 다소 좌향좌되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할 것임을 천명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역사 교과서 수정 문제는 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도 우도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훈수를 두며 교과부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어 주었다.

 

2008년의 역사내전은 10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내용과 관련한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격렬해졌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물론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까지 가담한 역사 전쟁 속에 금성출판사가 교과부의 수정안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집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교과서 내용이 수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집필자들은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직권을 남용한 교과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교과부는 지난 1월 장관에게 교과서의 수정 명령 권한 및 감수권을 부여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놓는 등 정권 말기까지 쉼 없이 역사전쟁을 도발했다. 허나,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를 훼손한 이명박 정부의 도발은 일단 좌절된 듯하다. 2월 15일 대법원은 교과부 장관 임의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는 것에 제동을 걸며 집필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역사 전쟁에서도 유례없는 도발을 자행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빼앗긴 우리 땅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 10일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졸지에 독도를 세계적으로 격렬한 영토 분쟁지의 하나로 각인시키게 만드는, 즉 ‘낙인 효과’를 초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밝힌 이유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기에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몇 년 간의 고려 끝에 전격 방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후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는가. 불행히도 한일 간 외교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졌을 뿐이다. 지금 일본 정부는 총리 직속의 독도 전담 부서를 설치하려 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미친 파장도 적지 않다. 일본인 중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2011년 7월 현재 일본 고등학생 10명 중 9명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일본 언론의 표현) 이래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 10명 중 7명은 독도를 일본 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일본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 김미경 교수의 2012년 조사).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 인식도 급감하고 있다. 2012년 11월 일본 내각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을 친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2011년의 62%에서 39%로 급격히 줄었다. 지난 달 요미우리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 일본인의 37%, 그러니까 3명 중 1명은 한국이 일본에 군사적으로 위험한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전 해의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23%였다. 일본 언론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서 찾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인에게 역사전쟁의 도발자라는 강한 인식을 남기고 독도를 영토분쟁화 할 수 있는 빌미를 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의 파장이 지금도 계속되면서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 성공하며 승리를 거머쥔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과거사 관련 언행은 제2의 역사전쟁의 예고편이 될 것인가.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몇 번의 고비를 만났다. 곰곰이 따져보면, 박근혜 당선인이 매번 그 위기를 자초한 주체였고, 위기의 테마는 모두 과거사였다!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에 대한 옹호, 인혁당 사건에 대한 ‘두 개의 판결’ 발언, 그리고 정수장학회 논란 등이 그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그 때마다 사과했고,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자신의 역사관을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과와 해명에는 늘상 진정성 시비가 붙었다. 대선이라는 상황을 고려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므로 언젠가 번복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강했다.

 

1979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후, 박근혜 당선인은 10여 년간 대외활동을 삼갔다. 주목할 것은 1988년에 시작된 대외 활동의 첫 행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회복이었다는 사실이다. 먼저, 그녀는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이후 박정희 사망 10주기 추도 행사를 성대히 치렀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영화 <조국의 등불>와 책 <겨레의 지도자>를 내놓았다. 육영수를 추모하는 근화봉사단이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이러한 박근혜 당선인의 과거 궤적이 그녀의 대통령으로서의 첫 행보도 박정희 대통령의 복권에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박근혜 당선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제2의 역사전쟁을 도발한다면, 그 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폭발적일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아버지의 복권을 꾀한다는 발상 자체가 왕조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복고적이고 퇴행적인 정치 행위다. 작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33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 시대에 이룩한 성취는 국민들께 돌려드리고 그 시대의 아픔과 상처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독도에 대한 이중적 행보도 쟁점이 된 바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한일협정이 타결될 무렵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미국이 독도 문제가 한일수교 협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며 한국과 일본 공동의 독도 등대 설치, 독도 문제를 다룰 한일 외교장관회담 등을 제안할 때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독도 주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딘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에게는 한일 수교 협상의 진전을 방해하는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일 수교 협상에서 ‘비록 작은 것이지만 화나게 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독도문제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버리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독도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모호한 행보는 그의 친일 전력, 그와 만주국 경험을 공유했던 전범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외손자로서 이번에 총리에 오른 아베의 독도에 관한 강경한 태도 등과 맞물리면서 나라 안팎에서 언제든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2년 뒤인 2015년은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일 간에 독도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과연 박근혜 당선인은 한일협정이 경제 개발 자금을 대가로 식민 지배 문제와 독도 문제를 ‘작은 것’으로 치부하며 굴욕적으로 체결한 조약이라는 상식적 역사관을 전복하고자 역사 내전을 도발할 것인가. 또한, 일본 정부와 일본 언론이 박정희 대통령의 독도 인식의 진의를 따지며 한일협정과 맞물려 시비를 걸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외신기자들을 향해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이며 일본과의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녀가 이러한 독도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를 추구하는 한일 관계의 재정립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박근혜 당선인과 정부는 1980년대의 미국과 영국, 1990년대의 일본, 2000년대의 한국에서 레이건과 대처, 자민당, 이명박 등 권력자들이 근현대사를 자학사관이 아닌 영광의 승리사관으로 재조명하자며 역사 전쟁을 도발했지만,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던 전철을 그대로 밟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력이 원하는 바의 역사관을 일시적으로 강요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민주와 평화라는 상식적 가치에 기반하여 형성된 대중의 역사 인식과 역사 정서를 조작적으로 개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과거사는 그녀의 언행 모두에 따라 붙는 꼬리표로 말 그대로 업보다. 그것은 그녀의 과거사 관련 행보가 곧 정권적 차원의 파괴력을 갖는 중대 사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친일과 독재의 과거사로 인해 훼손된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복원하는 데 일조하는 역사 정책이 수반되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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