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50] 절체절명의 시기 발표된 ‘헌딜’

절체절명의 시기 발표된 ‘헌딜’

철학 부재한 문재인표 한국판 뉴딜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 전염병의 확산으로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노동시장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국제기구들의 발표와 함께 세계 각국들은 유래 없는 규모의 정책 패키지를 내놓고 있다, 물론, 한국 노동시장도 그 타격을 그대로 맞고 있다. 다만, 노동자들의 비명이 잘 들리지 않을 뿐이다. 다차원적인 불안정노동이 이미 일상화되어 실직여부만으로는 불안정성이 증명되기 어려운 이곳에서는, 비경제활인구의 증가로, 성과급 감소로, 자발적 퇴사로, 장시간 근로의 확대로, 무급의 사적 돌봄시간의 증가로, 나쁜 일자리에서의 전전으로, 민간부채의 증가로, 그리고 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닌’ 형태로 일하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뿐이다. 최선을 다해 구직을 해도 일을 구하지 못해야 ‘실직’으로 확인되고, 가난한지의 여부도 명명백백 밝혀내 취약계층인 것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복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 강조되는 나라에서는, 끊임없이 시장에 의존해 생존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아직 복지욕구가 증명되지 않은 먹고 살만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도 너도나도 위기라니 정부도 대응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온 국민이 일상의 변화를 경험하며 새로운 사회를 희망해보는, 위기를 기회로 그려볼 수 있는 절체절명의 소중한 순간에 문재인 정부는 낡아빠진, 너무나 낡아빠진 헌딜을 내놓았다.

 

참담한 지점은 두 가지이다. 복지정책 확대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가난이 증명된 사람만 하나하나 잘 가려내어 우선순위 대상자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지 받는 사이, 정부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라며 통 크게 160조 원짜리 일자리창출 정책을 발표했다. 그간의 정부들이 발표한 뉴딜계획에서 나온 숱한 일자리창출 정책이 한 번도 화려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여전히 복지정책은 안되고 일자리 정책은 된단다. 한줄기의 창의력도 없이 앞에 이름만 바뀌어 계속 튀어나오는 일자리창출 정책은, 예산 씀씀이에 대해 그렇게나 우선순위 외치던 학자와 관료들도 어찌 이토록 관대하나 싶다. 고용과 사회안전망 확대 계획을 들여다보니 지난 수년간 주장되어 이미 한참이나 늦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범위를 조금, 그것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고, 이미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언급되거나 상병수당 시범사업해보겠다는 계획 정도뿐이다. 실업불안 및 소득격차를 완화하겠다는 대대적 계획에서 도대체 어느 부분이 ‘뉴(new)’한 것인가.

 

두 번째가 더 참담하다. 계획은 디지털 경제로 전환인데, 디지털자본주의에 대한 조금의 이해도, 무엇보다 사람중심의 철학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상품화된 노동력이 가치창출과 자본 축적의 핵심이었다. 디지털자본주의에서의 큰 차이는, 이제 데이터에 의해 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 산업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 투입과 노동과정의 통제가 생산성 향상에 밀접한 영향을 주었지만, 디지털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의 중요성은 감소하고 데이터가 중요한 원재료가 되어 자본과 기업들은 바로 이 데이터라는 원재료를 추출하고 활용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데이터를 추출해 사용하는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여, 이 데이터를 통해 생산과정을 최적화하고, 노동을 통제하며,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반을 제공하며 판매하게 되면서 데이터는 점점 더 핵심 자원이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본과 기업들은 노동과 협상할 동기도 숙련과 직업교육으로 노동자에게 투자할 동기도 점점 없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빅데이터를 통해 생산된 이윤은 빅데이터 형성에 기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되기보다는 소수의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고, 데이터추출과 활용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자본주의에서의 나타나고 있는 불평등은 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데이터를 획득한 기업들의 가치창출과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는 사이, 노동자의 필요성은 점점도 쉽게 지워지고, 우리 모두의 다중활동이 기록된 데이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기업의 부의 축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 일상화되고 있는 정규직 고용관계의 비정규직화, 비용과 위험의 외부화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과 직무의 시공간적 배치를 변화시킴으로써 노동의 탈공간화, 노동자의 탈노동자화, 위험의 개인화를 더 가속화 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의 패러다임 전환적 확대 없이는 노동과 자본의 운동장은 계속해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

 

빈약한 사회안전망 대책에 더해 내놓은 일자리창출 정책이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비즈니스 구축 및 지원’ 등이다. 게다가 ‘공공데이터 청년인턴십’의 이름으로 운영되는 데이터 댐 구축을 위한 일자리정책은 4개월짜리 단순 아르바이트로, 데이터댐 구축이 완료되어 이제 더욱 완성된 알고리즘은 노동력을 얼마나 더 필요로 하게 될까 싶다. 교육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 온라인 교육 강화, 스마트 병원 및 디지털 돌봄, 온라인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비대면 인프라 확대 시, 궁극적으로 이것이 노동자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올지, 온갖 것을 디지털화해서 창출되는 이익은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게 될지에 대한 철학과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노동력보다는 데이터 추출이 중요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시대에 어떻게 실업격차를 해소할지, 질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축적되는 부가가치와 자본이 확대시킬 불평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디지털자본주의에서 지워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인간적인 삶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지 그 어떤 고민의 흔적도 없는 낡아빠진 헌딜이다. 정부가 허둥대는 사이 ‘국민안전’이란 탈을 쓰고 자본은 이제 날개를 달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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