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61] 왜 자유경제원은 ‘김수영’을 쐈나?

왜 자유경제원은 ‘김수영’을 쐈나?

자유경제원의 ‘김수영 세미나’에 잠이 오는 이유

 

좌세준 변호사

 

지난 3월 개최된 자유경제원의 ‘이승만 시공모전’은 조용히 지나갈 뻔했다. ‘우남찬가’라는 입선작이 상장과 상금 10만 원을, ‘To the Promised Land’라는 빼어난 제목의 영시 응모작이 최우수상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시는 항상 ‘가로로 읽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심사위원이 깨닫는 데는 꽤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입선작을 세로로 읽으면 ‘한반도 분열, 친일인사고용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국민버린도망자, 망명정부건국, 보도연맹학살’이고, 최우수상 수상작을 세로로 읽었더니 ‘NIGA GARA HAWAII(니가가라하와이)’였다.

자유경제원이 두 사람을 업무 방해, 명예 훼손,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6000만 원 가까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우남찬가’로 입선한 대학생 장민호 씨는 상금 10만 원의 60배만큼 손해 배상 청구를 당한 셈이다. 이번 사건은 자유경제원이 어크로스틱(Acrostic), 일명 ‘세로드립’을 몰라서 생긴 사건인데, 이런 ‘기법’은 이미 알프레드 드 뮈세라는 연애 박사가 한 200년 전에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써먹었다 한다. 상드도 뮈세에게 역시 같은 수법으로 답장을 했다는데, 두 연애 박사의 편지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진중권이 쓴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211쪽을 보시면 된다.

이번 고소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의 결과가 어느 정도 예측되긴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사건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시’와 관련된 이야기니까.

지난 토요일 아침, 욕실에서 느긋하게 펴든 <경향신문> 커버스토리 제목에 눈길이 갔다.

“왜 자유경제원은 시인 김수영을 불러냈나. 시인 김수영에 좌편향 덧칠, 진짜 타깃은? 문학 교과서 국정화 겨냥하나”

자유경제원이 시인 김수영을 불러내다니, 그리고 김수영이, 다른 사람도 아닌 김수영 시인이 ‘좌편향’이라니? 한국 전쟁 당시 2년 남짓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있었던 전력을 문제 삼은 것일까? 의문은 <경향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풀렸다. 기사를 다 읽고 나서는 흐흐 웃었다. ‘세로 드립’ 사건을 읽고는 킬킬대며 웃었지만, 이번 기사에는 헛웃음이 났다. 내친김에 주말을 이용해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김수영 비판 세미나’ 자료를 모두 읽어보았다. 지난 4월부터 6월 13일 종합 토론까지, 총 다섯 번의 세미나가 있었다 한다. 의아한 것은 다섯 번의 모임 참가자가 4명으로 모두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말 그대로 의기투합한 것인지 돌아가며 한 발제와 토론에서 한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문학평론가나 시인이 아니다. 다만 시를 ‘본격적으로’ 읽어온 햇수가 한 35년 남짓 되어서, 판소리에 ‘귀 명창’ 있듯이 시 읽기에도 그와 비슷한 게 있다면 되어보려 노력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마추어인 내가 보기에도 어찌 된 것인지 세미나에 참석한 네 분의 시 ‘읽기’ 내지는 시를 ‘논하는’ 실력, 아니 실력 여하를 떠나 그 ‘방법’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세미나의 모토는 ‘사회를 흔드는 사회 참여시, 누가 김수영을 이용하나’이다. 발제와 토론은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진다. 아주 단순 명쾌하기까지 하다. 세미나의 논지를 발제, 토론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해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김수영을 ‘자유’와 ‘분노’, ‘양심’의 시인으로 부풀리고 신화화한 것은 ‘민중 문학 패거리의 솜씨’다. 김수영 신화 만들기를 쌍끌이했던 장본인은 한국 문학의 오너 격인 백낙청과, 그의 옛 파트너 염무웅이다.”

“좌파 문학 진영은 근현대 시사의 큰 봉우리인 미당 서정주를 표적 살해했고, 미당을 끌어내린 자리에 자기들의 문학 이념을 대변할 시인으로 시인 김수영을 간택했다. 당초에 좌파 문학 진영은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을 함께 띄웠으나, 신동엽은 좀 ‘촌티’가 나고 선동성이 떨어져 김수영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김수영의 시는 언제부터인가 대중의 분노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김수영 시인이 가지는 불온과 저항의 아이콘은 좌편향 언론에 의해 증폭되고 있고, 최근에는 ‘패션 좌파’ 강신주에 의해 패션처럼 소비되면서 그에 대한 대척점으로 시장경제를 악으로 압박하고 있다.”

세미나의 좌장격인 조우석은 세미나 첫 발제에서 김수영 신화 만들기의 ‘주역’으로 백낙청-염무웅을 끌어들이고 있다. 조우석은 “둘의 협력은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조 관계를 연상케 한다”고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김수영 사후 김수영 재평가의 기초를 놓은 것은 백낙청-염무웅이 아니라 자유주의 성향 문인들이 모였던 민음사”였다. 조우석은 2011년에 <나는 보수다>를 내면서 당당히 보수임을 선언한 사람인데, 한국 문단을 좌우로 갈라치다 보니 ‘민음사’는 보지 못하고 ‘창비’만 본 것일까? 세미나 참석자들이 “민음사에서 <파블로 네루다 시집>을 냈으니 민음사도 ‘좌편향’아니냐”라고 되받아친다면, 할 말 없다.

조우석 식의 한국 문단 좌우 갈라치기가 오류이고, 과잉 해석이라는 것은 ‘서정주 표적 살해’론에 이르면 보다 명백해진다. 조우석은 백낙청, 염무웅이 ‘좌파 문학 족보’ 만들기 카드로 내세운 것이 김수영이라 주장한다. “저들이 선호하는 작가를 전진 배치해 문학사의 주류로 끌어올리고, 선호하지 않는 작가를 뒤로 밀쳐내는 작업”이 ‘민중 문학 패거리’에 의해 수행되었는데, 그와 같은 과정에서 “시인 중의 시인, 천품을 타고난 사람인 미당 서정주를 표적 살해하고”, “김소월, 한용운, 이상, 서정주, 유치환, 이육사, 윤동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김춘수 등 자유주의 문학 진영”은 평가 절하되었다는 것인데, 참으로 ‘탁월한’ 음모론이 아닐 수 없다.

김수영 시인의 삶이 간단하지 않았던 것처럼, 김수영 시인의 시도 간단하지 않다. 1957년 한국시인협회가 창립되고 나서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은 사람이 김수영이다. 당시 한국시인협회 대표간사는 유치환, 사무간사는 조지훈이었다. 1960년 4.19 이후 김수영의 시가 달라졌다고 해서, ‘김일성 만세’라는 시에서 김수영이 조지훈을 호명했다고 해서 한국 문단이 좌우로 갈라지는 것은 아니다. 평론가 한둘이 김수영을 ‘띄운’ 것 때문에 조우석이 말하는 자유문학 진영, ‘순수 문학’ 진영의 시인들이 ‘뒤로 밀렸다’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조지훈과 유치환을 모독하는 일이다.

자유경제원 덕에 오랜만에 김수영의 시를 다시 읽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기우에서 자유경제원에 한 마디 덧붙인다면, 김수영 시인을 내세워 “초중고 학교 교실에서 이뤄지는 문학 교육의 왜곡”을 운운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초중고 학생들은 어른들이 골라주는 시만을 읽어야 할 정도로 우둔하지 않으니까, 문학 교과서마저 국정화한다면 학생들은 ‘잠이 올 수밖에’ 없으니까.

2016년, 시인 김수영이 살아온다면 자유경제원 세미나에 대해 일갈할 것이다.

“시여, 다시 침을 뱉어라!”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