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03] 취업률로 지방대 버리고, 경쟁률로 인문대 죽이고…

 

[시민정치시평 303] 

 

취업률로 지방대 버리고, 경쟁률로 인문대 죽이고…

: 퇴행적 정부 대학 정책 전면 재검토해야

 

신입생들의 재잘거림과 화사한 봄꽃으로 노란 테니스공처럼 역동적이어야 할 대학가의 봄 풍경이 어느 해보다 을씨년스럽다. 어느 과는 없어지고, 어느 과는 이웃 과와 합해지고, 또 어느 과는 대폭 정원을 줄이겠다는 결정과 소문이 무성하다. 몇 해 전부터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대학 사회에서 인기 검색어가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교육부의 졸속과 무원칙으로 일관한 대학 정책이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 교육부는 2014년 1월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여 2023년까지 무려 16만 명에 달하는 대학 입학 정원을 감축할 계획임을 밝혔다. 물론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로 해마다 고교 졸업자 수가 줄어 2018년에는 고교 졸업자 수가 대학의 입학 정원에 미달할 전망이다. 또한 극심한 취업률 저하로 고교 졸업 후 조기 취업에 대한 선호가 늘어나 대학 진학률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사실 교육부는 90년대 이후 최소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정해주는 준칙주의로 바꿔 부실 대학을 양산하였던 정책 실패의 당사자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어떤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다. 게다가 출산율 저하라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인구학적 변수를 방치하고 있다가 갑자기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갑질’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문제의 시작과 끝은 늘 그렇듯이 정책의 원칙과 민주주의적 이해를 저버린 ‘나쁜 정부’에 있다. 대학 정원의 4분의 1을 감축하는,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의 대학구조정책을 시행하면서 교육부는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을 열지 않았다. 물론 교육부는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과의 권역별 토론회, 대학 총장들과의 권역별 간담회 등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수렴하였다고 변명하겠지만 그것들은 이미 기본 방향과 주요 지표가 결정된 후 벌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더구나 핵심 이해관계자라 할 대학생들의 의견은 아예 경청할 제도적 수단조차 강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대학과 대학생 수가 너무 많다는 여론몰이를 하면서 취업률과 경쟁률이라는 마법의 쌍절곤을 휘둘러 왔다. 이 과정에서 기본 절차와 과정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정부에 의한 사립대학 퇴출을 전제로 한 교육부의 계획은 국회에서의 ‘대학구조개혁법’의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평가위원 선정과 인터뷰 세부 방식은 면접 평가 1주일을 앞두고서야 공지될 정도로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대학저널>. 2014. 4. 14). 정말, 힘없는 지방 사립대의 입장에서 교육부는 대한항공의 조현아 부사장이고, 중앙대의 박용성 이사장이다. 

 

정부가 공무원연금개혁을 하면서 대타협기구를 결성한 것은 야당과 시민단체, 이해당사자인 공무원 노조의 협조 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학생의 미래와 교직원의 생존, 그리고 지역경제의 사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대학구조 개혁을 이해관계자의 동의나 긴 안목 없이 힘으로만 밀어붙이고 있다. 정말 정책실명제가 필요한 대목이다. 4대강 사업이든 자원비리든 국민의 세금을 아무데나 펑펑 쓰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직무유기의 후진 정치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엉터리 정책을 만들어 놓고 얼마 있다가 대학의 총장으로, 교수로 전업하는 회전문 정치의 표상이 교육부이다. 누가 이 정책을 만들었고, 누가 집행했는지 꼭 눈여겨볼 일이다. 

 

 

구조 개혁의 결과: 대학 생태계의 파괴 

 

이렇게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우리는 수도권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 공대만이 존재하는 외눈박이 대학사회가 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실제로 민교협 토론회에서 발표된 박정원 교수(상지대)에 따르면, 2023년까지 16만 명을 감축할 경우 수도권은 편입학을 통해 충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2만 명만 줄여도 되지만 지방대의 감축 규모는 12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교육부는 그렇다 치고 사정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놀라운 일은 나서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방 사립대는 그 심각성은 잘 알고 있지만 일단 평가를 잘 받아 개별적으로 구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직 여유가 있는 수도권의 사립대들은 아직 남의 일처럼 팔짱 끼고 관망하고 있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중요한 변화에 반응하지 않고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서서히 죽어가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boiling frog)가 떠오른다. 

 

 

제발 우리 함께 같이 살자!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 헌법의 기본 원리로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천명하고 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 구조 조정은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학문의 다양성과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심각히 훼손하는 반(反)헌법적 처사로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그것은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순수학문인 인문사회 계열과 예체능 계열의 붕괴, 지방 사립대의 퇴출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진행되는 부정의(不正義)한 정책이다. 취업률과 출산율 대책의 일차적 책임은 대학이 아니라 국가이다.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재정을 수단으로 으름장 놓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도 아니고, 입법 미비의 상황에서 사립대 퇴출 조치라는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위헌적 행태도 아니다. 진정 자유민주주의의 교육기관으로서 교육부가 해야 할 책무는 투명하고 내실 있는 대학 정보의 공개와 부패 비리 대학에 대한 엄정한 처분이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5단계 평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2017년까지 1단계 감축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과제는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처음부터 방향과 원칙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대학도 살고 교육부도 산다. 이렇게 교육부의 지시에 침묵하면서 손 놓고 가만있다가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를 제외한 지방사립대들과 비인기학과들은 모두 다 죽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경쟁 논리가 판치는 지금 여기가 팽목항이고 세월호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