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북리뷰 5_비교자본주의체제론으로 미국경제 다시 보기

김진방 · 성낙선 외, 『미국자본주의의 해부』

역사적으로 제국을 건설한 국가는 여럿 있었지만 현재의 미국만큼 정치ㆍ군사적으로뿐 아니라 문화ㆍ경제, 기타 모든 면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미국을 싫어하건 좋아하건 오늘날 미국을 떠나서 현실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깊이 다룬 연구서는 웬일인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경제학적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분석한 연구서는 필자가 아는 한 거의 없었다.

IMF 이전까지 미국은 주로 정치ㆍ군사적인 관계에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IMF구제금융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미국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미국이 단지 투자ㆍ교역의 면에서 더 진출한 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똑같은 경제체제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는 10명의 필자들 대부분이 공유하는 하나의 가설이 발견된다. 첫째, 미국경제체제는 금융규제하의 포드주의적 경영자본주의로부터 1970년대 후반의 위기를 거치면서 금융 주도적 주주자본주의로 이행했다. 둘째, 90년대 중반 이후의 미국자본주의는 전에 없던 호황을 구가했지만 이는 주가상승, 소비증대, 임금삭감 등 단기적인 요인에 기인한 바가 크고, 반면 체제논리상 격심한 시스템 리스크와 노동배제, 극단적인 소득분배의 왜곡 등 때문에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완충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다양한 글들은 이 두 개의 큰 명제를 세부적으로 분석하거나 새로운 체제 성립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 있다.

저자들의 입장은 특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근래 좌파케인스주의자, 사회민주주의계열의 좌파학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관점이다. 평자 자신도 딱히 유력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현실분석에서 이 관점을 상당정도 채택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가설을 넘어 일정한 완성도를 갖춘 이론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대답해야 할 의문이 많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일층 심화된 연구를 위해 몇 가지를 검토해 보자.

앞의 좌파(케인스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작금의 미국자본주의 체제는 일시적인 일탈이고 서구, 특히 독일체제가 ‘정상적인’ 지속성을 가진 자본주의 체제라는 함의가 포함되어 있는데, 과연 이것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가? 오히려 유럽의 수정자본주의가 복잡한 계급타협에 의해 일시적으로 성립한, 그러나 취약한 조건 위에서 존속해 온 체제라고 혹자가 주장한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 70년대 말의 위기를 거쳐 유럽체제(특히 EU 차원의 체제)도 미국적인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럽체제가 되었건 일본체제가 되었건 위기 이후 미국보다 활력을 보이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이들 체제가 발생한 위기들을 적절히 해결할 수 있었다면 미국체제로의 수렴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미국체제는 조만간 더 큰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사실 위기의 징후는 벌써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유럽체제가 안정적인, ‘정상적인’ 체제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보다 순수한 자본주의적 작동의 결과 발생한 위기는 새로운 형태의 모순, 사회적(특히 계급적) 갈등을 야기할 것이고 새로운 형태의 타협적 체제의 출현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때의 체제는 필연적으로 많건 적건 사회주의적인 요소나 비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한, 어떤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 체제일 수 있다. 또 일부 지역에서 과거 국가사회주의와는 다른 어떤 사회주의 체제가 출현할 수도 있다. 과거 유럽의 수정자본주의만큼이나 모순적인 원리가 결합된 새로운 대안체제가 다시금 일정 기간 동안 안정적 성장과 형평을 보장해 주는 체제로 등장한다는 전망을 해볼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보면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대안이다. 기존의 체제는 참조할 수 있으되 어떤 이론적 판단의 불변의 준거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자들처럼 미국체제가 일탈적인 자본주의 체제라는 암묵적 가설을 가지고 보면 이러한 과제가 연구의 시야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미국체제는 단기주의적인 시계에 사로잡혀 있고 장기적인 투자에는 유인이 약하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런가? 기초연구를 정부가 수행하고 상업성을 가진 응용분야는 개별기업이 담당한다면 체제 전체로는 반드시 단기주의적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단기적으로 신속하게 적응하여 가속적으로 변화한다면 그것이 누적되어 장기적으로 성장률을 더 끌어올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이 문제는 기업연구로 대답이 나올 성질의 문제는 아니고 전경제의 동태적인 자본축적과정에 대한 이론을 통해 답이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필자들은 어디에서도 이런 이론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이론적으로 저자들이 주로 의존하는 것은 정보경제학, 케인스주의의 불확실성에 관한 모델들인데, 이것도 깊이 생각해 보면 우려를 낳는다. 자본주의의 문제가 겨우(!) 정보비대칭, 정보불확실성의 문제에 그친다면 애당초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간단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모순과 갈등, 그 폭발의 다양한 형태의 근원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니까 문제를 이 정도 수준에서 제기하게 된 결과 케인스주의적인 개입주의 체제가 현실판단에서 불변의 준거점처럼 된 것은 아닌가? 가벼운 문제에 대한 가벼운 대응으로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우려일까?

미국의 헤게모니적인 지위와 미국체제의 상관관계는 어떤지에 대한 연구도 이 책에서는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이 문제는 이 책의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각국의 체제가 출현하고 진화하는 과정, 그 작용방식을 연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 체제가 다른 사회에 상당 정도 적용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IMF 이후 정치가ㆍ정책담당자 들은 정말 무책임하게도 이 조건에 대해 전혀 연구하지 않은 채 수년 안에 한국을 미국식 사회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참으로 무모하고 폭력적이다. 아르헨티나처럼 뭔가 잘못된다면 역사의 역적으로 기록될 일을 앞뒤 돌아보지도 않고 시도해 왔다.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절대 이런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되었건 유럽체제가 되었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체제의 성립조건뿐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 요소들을 깊이 추적해야 이식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답이 나올 것이다.

이런 질문들은 반드시 저자들에게 제기하는 것이라기보다 유사한 문제를 고민하는 모든 연구자들이 제기하고 함께 답을 찾아야 할 것들이다. 일층 진전된 질문을 던지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저작이다.

조원희 / 국민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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