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61] ‘추윤 갈등’보다 돋보인 라이더유니온의 합법노조 인정

‘추윤 갈등’보다 돋보인 라이더유니온의 합법노조 인정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목소리

 

김주호 경상대학교 교수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유례없는 갈등이 모든 언론을 지배하고 있던 와중에 노동조합 하나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조용히’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이다. (서울) 라이더유니온은 이미 재작년 11월 서울시로부터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고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제는 서울의 라이더만이 아니라 전국의 라이더가 노조법상 노동자(근로자)가 되었다. ‘노조할 권리’도 인정받았다.

 

노동자라고는 하지만 라이더는 전통적 노동자와 사뭇 다르다. 전통적 노동자에게 있지만 라이더에게는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선 근로계약이 없다. 라이더는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회색지대를 달린다. 배민이나 요기요 등과 근로계약을 맺고 어느 하나의 전속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위탁계약을 맺고 ‘중개된’ 배달 업무를 수행한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 앱의 온오프가 출퇴근이며 낮이건 밤이건 앱으로 들어온 콜을 ‘자유롭게’ 잡아 일한다. 고정된 월급이란 게 없다. 대신 건별로 배달료를 받는데 그마저도 수시로 변경된다. 열심히 일한 만큼 더 많이 벌 수도 있겠지만 일거리가 적어져 소득이 줄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많다. 정해진 일터도 직장 동료도 없다. 거리가 이들의 일터이고 그곳에서 동종업계 사람을 스치듯 만날 뿐이다. 정해진 고용주가 없다. 누구의 일을 해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배민의 일인지, 바로고의 일인지, 배달 주문 고객의 일인지, 음식점 주인의 일인지 아니면 이들 모두의 일인지 불분명하다.

 

라이더에게 없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라이더는 전통적 고용관계를 전제하고 발전해 온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달린다. 이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없다. 노동시간의 제한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연장·휴일근로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특정 업체의 배달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주휴수당은 없다. 유급휴가와 유급병가, 퇴직금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사회적 보호로부터도 비껴나 있다. 대부분은 명시적으로 고용된 상태가 아니어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가 없다. 산재보험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려면 전속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개 산재보험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이더에게는,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목소리가 없다.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해도 사회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정치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노동 없는 민주주의였다. 일찍이 냉전이라는 냉엄한 국제질서하에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반공주의에 묻혀 버렸다. 저렴한 노동력에 기대어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루어 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계속 억눌려야 했다. 87년 민주화와 함께 이들의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이내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떠밀려 내려갔다. 민주주의에 노동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다수의 보통 시민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그 대가로 임금을 받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임금노동자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보통 사람들 없는 민주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민(民)’이 ‘주(主)’가 아닌 무늬만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노동 없는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더더욱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노동시장의 주변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10년대 내내 10%를 조금 넘는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정규직의 경우 이 수치는 약 2%로까지 내려간다. 정규직의 1/10 수준이다. 다소 보수적으로 비정규직을 분류하는 통계청의 자료에서도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2020년)은 3.0%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에게는 노조가 필요하지 않은 건가? 할 말이 없는 건가? 그렇지 않다. 최근 수년간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여전히 정규직의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의 가입률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이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그럴 필요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절대 다수는 노조가 없는 곳에서 일해서(85.6%), 또는 있다고 하더라도 가입할 자격이 없어서(9.0%)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한다. 노조 가입 기회는 전체 비정규직의 5.3%에게만 주어져 있다. 스무 명당 한 명 꼴이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복지에서 주변화된 비정규직은 정치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 노동시장의 주변부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무엇보다 노동 여건상 조직화 자체가 쉽지 않다. 정해진 일터에서 정해진 시간에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던 전통적 노동자들과 달리 플랫폼 노동자들은 앱의 지시에 따라 각기 다른 곳에서 각각의 일정에 따라 홀로 움직인다. 각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조직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전통적 노동자에 맞춰져 있는 법과 제도의 장벽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지금의 법과 제도는 무언가를 말하기에 앞서 우선 ‘말할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더유니온이 전국 단위의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라이더들이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정당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말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내용의 옳고 그름은 차후에 판단할 일이다. 더욱이 플랫폼 노동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고 플랫폼 노동자가 처한 여건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선결 조건이기도 하다. 이것이 꼭 플랫폼 노동자에게 한정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방과후 강사, 보험설계사 등이 최근 노조할 권리를 인정받고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등한 권리를 가진 자유로운 다수 시민의 지배로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시민들이 같은 크기의 목소리를 지녀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유 없이 묻혀서는 안 된다. 누구든 말하게 하고 이견이 있다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는 엘리트 간의 정쟁에 불과하다. 검찰개혁의 본질을 흐리는 추윤 갈등보다 라이더유니온의 쾌거가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런 우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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