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67] 미얀마와 인도주의적 개입의 딜레마

미얀마와 인도주의적 개입의 딜레마

국제사회는 왜 미얀마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일까?

 

송경호 연세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미얀마 사태와 개입 요청

 

쿠데타를 규탄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쓰러지고 있다. 미디어가 통제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군부의 총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얀마 바깥에서는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연대 집회가 한창이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하루빨리 미얀마 시민들을 구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얀마 사람들 역시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미얀마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가 유엔 특사로 임명한 살라잉 마웅 타잉 산(Salai Maung Taing San)은 3월 4일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서한에서 보호의 책임(R2P)을 언급한 바 있고, 3월 17일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매일 같이 반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를 자행하고 있는 군 지도부에 대해 국제사회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미얀마 사람들은 스스로 방어하는 수밖에 없다.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제사회가 너무 늦기 전에 빠르게 행동하기를 요청한다.”

 

사실 유엔 내부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3월 11일 유엔 안보리가 성명을 통해 “평화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강력히 규탄”하며 “미얀마군에 최대한도의 자제를 촉구하고 안보리가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음을 강조”한다고 밝혔는데, 같은 날 토마스 앤드류스(Thomas Andrews)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이 “미얀마인들은 지지한다는 말만 아니라 지원 행동(supportive action)을 필요로 한다”면서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즉각적인 조치의 필요성

 

당시 앤드류스는 안보리가 취할 수 있는 즉각적인 조치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언급했다.

 

1) 군정의 기업들과 미얀마의 단일최대 수입원인 석유 및 가스 기업에 대한 표적 제재를 포함해서 군정에 대한 자금 흐름을 차단할 것, 2) 국제 무기 금수 조치를 시행할 것, 3) 만약 안보리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이 문제를 회부할 의지가 없을 경우 국내 법원을 통해 범죄 책임성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할 것, 4) 언제든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지역 시민사회 및 구호단체와 직접 협력할 것, 5) 군정을 미얀마 인민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을 것 등이다.

 

이런 조치가 보다 강화된 제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미얀마 군부의 반응은 기대만큼 극적이지 않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미얀마는 이번 쿠데타 이전에도 미국, EU, 일본 등으로부터 장기간 다양한 제재를 받아 왔고 군부 역시 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쿠데타 이후 2월 10일에 미국이 미얀마 경제제재 관련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4014)을 내려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 미얀마군 총사령관 등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개인과 기업의 미국 내 모든 자산 및 이익을 동결하고 거래를 금지했고, 지난 16일에는 EU가 미얀마 군부에 추가 제재를 진행했으며, 한국 정부 역시 이례적으로 독자 제재에 나서면서 미얀마 군정과의 국방 및 치안분야 신규 교류 및 협력을 중단했지만 아직 미얀마의 상황을 개선할만한 충분한 조치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과연 미얀마 내외에서 기대하고 있는 ‘개입’이나 ‘즉각적인 도움’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이런 제재 조치들이 장기적으로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매우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왜 국제사회(보다 직접적으로는 유엔)가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시행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반인도적 범죄와 유엔의 무력적 개입

 

헌장에도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이 연장선상에서 헌장 전문(preamble)과 제1조 3항은 인권 보장을 유엔의 핵심 가치로 천명하고 있으며, 세계인권선언(UDHR) 전문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권의 보장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라고 명시하고 있다.

 

인권 문제가 곧 평화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면 유엔 헌장은 평화 유지를 위해 안보리가 무력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장 제39조에 따르면 안보리는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또는 침략행위의 존재를 결정”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거나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권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41조에 따라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거나, 그마저도 불충분한 것으로 인정하거나 판명될 경우에는 제42조에 따라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안보리는 미얀마의 상황에 대해 ‘결정’과 ‘권고’, 그리고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조치’까지는 시행하거나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제42조에 해당하는 조치는 아직 직접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모양새다. 흔히 그 이유로 안보리에서 거부권(veto)을 가진 상임이사국 중에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는 점, 특히 중국이 미얀마 군부와 결탁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유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헌장 제2조 7항의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국제연합에 부여하지 아니”한다는 구절은 실제 유엔 회원국의 배타적 주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오랫동안 간주되어 왔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딜레마

 

배타적 주권이나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는 과거 인도주의적 개입을 논쟁적으로 만드는 중요 요소였다. 실패한 개입 사례로 손꼽히는 NATO의 코소보 개입 사례에 대해서 “불법적이지만 정당한 것”이라는 기묘한 결론이 내려진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2001년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 보고서’ 이래로 기존의 비개입 원칙을 뒷받침해 온 베스트팔렌(Westphalia) 체제와 유엔 헌장 제2조는 상당부분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어떤 한 국가에서 인종청소를 비롯한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저질러지고 있다면, 국제사회가 인권 보호를 위해 군사적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을 할 수 있다”(ICISS 보고서)는 것이 점차 국제사회의 상식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 보호의 책임(R2P)은 2005년의 유엔 결의문과 2006년의 유엔 안모리 결의 1674호에 이어 2009년에는 유엔 총회에서 결의로 도출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반인도적 범죄’는 집단살해죄와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과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관할범죄이자 위반국에 대한 흔히 무력적 제재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안으로 간주된다. 군부 쿠데타 직전까지 미얀마에 대한 유엔 결의안에서 핵심 내용을 차지하고 있었던 로힝야족 탄압 문제까지 포함한다면, 미얀마 군부에 대한 무력적 개입과 이 문제들의 중심에 선 미얀마 군 총사령관에 대한 처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얀마 유엔 특사의 주장처럼, 지금이야말로 유엔이 보호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잘못된 선례들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특히 인도주의라는 목적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인도주의적 개입이 되기 위해서는 ICISS 보고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2) 최후의 수단으로서 (3) 비례적 수단에 따라 (4) 합리적 전망과 (5) 정당한 권위를 가지고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와 총회 결의를 통해 개입을 결정하고 시행한다면 정당한 의도와 과정이라는 조건은 대체로 만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개입의 권리’가 아니라 ‘보호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그런 책임을 지는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보호의 책임에 ‘재건의 책임’까지 포함되는 것인지도 부담스러운 문제다.

 

시리아 담당 유엔 사무총장 특사였던 라크다르 브라히미(Lakhdar Brahimi)의 다음과 같은 말은 개입의 부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의 예상과 아젠다가 점차 현실적이지 않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의 향상, 국가 재건, 인권, 성 평등, 법치, 지속가능한 경제적 발전과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분쟁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모든 것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사회는 왜 미얀마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과연 우리는 보호의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미얀마의 상황, 그리고 인도주의적 개입의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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