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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정치시평
  • 2020.04.16
  • 1021

코로나19 이후, 나쁜 연결을 끊고 좋은 연결을 잇자

새로운 일상은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승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전임 연구원

 

모두가 전환, 그리고 새로운 일상의 시작을 말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재난을 동시에 경험하는 가운데, 이제 인류는 결코 코로나19 발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이 많이 등장한다. 엄청난 학살로 끝난 양차 세계대전의 경험이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주의적 반성으로 이어진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그 당시에는 서구 문명이 던진 과학과 제국주의의 부메랑이 다시 던진 이를 향해 돌아온 것이라면, 지금은 언제 어디로 던졌는지 모를 인간 행위의 부메랑이 예측하지 못할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날아오는 것 같다. 훨씬 더 전환적이고 동시적인 반성이 가능하다.

 

최첨단 정보통신기술도, 스텔스 기능의 대량살상무기를 제작하는 군산복합체도 공공 마스크와 방역용품을 제때 생산해서 필요한 곳에 빠르게 공급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빛의 속도로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 자본과 노동시장을 꽁꽁 묶어 지배해온 초국적 금융 자본도 서서히 퍼져나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결국, 모든 국가의 정부는 방역을 위해 외부생활 제재를 강행했고, 곳곳에서 일상의 동선이 끊어지면서 사람들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소중한 지혜를 깨닫는 듯하다. 그동안 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삶을 살아가는 데 그리 많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우리의 소비, 지식, 노동, 교육, 정치적 관계를 묶어온 지구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연결이 아주 불평등하고 차별적이었으며, 사실 지금 이 재난에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연결의 힘이라는 것이다.

 

나쁜 연결을 끊고 좋은 연결을 잇자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게 되듯,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져나가자, 전 세계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삶을 연결해온 끈을 잡으려 했지만, 그 끈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의료시스템은 민영화되었고, 마스크와 방역용품은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마스크가 넉넉하다 해도, 당장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 문을 닫은 사람들이 빠져드는 늪은 따로 있었다.

 

지구화라 하지만, 국가와 도시 간 불균등 발전은 오히려 국경 출입 봉쇄로 이어졌고, 나쁜 금융과 위험한 노동을 확산한 지구적 노동분업질서는 핵탄두와 마스크의 좋은 상관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인종주의와 전체주의, 그리고 남성중심적 젠더 불평등은 코로나19라는 병리학적 위기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배제와 차별이라는 사회적 공포로 변질시켜 버렸다.

 

위기를 이겨내고 있는 힘은 이 나쁜 연결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질서가 지난 수십 년간 쓰레기 취급했던 것들로 여겼던 신뢰와 연대, 우정과 환대, 비전문가적 제작 능력, 희망과 위로를 인도하는 일상의 예술, 자본 투자 수익에 따른 효율성이 아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같은 것들이 저 정보통신기술과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금융자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위대하게 인류가 동시에 느끼는 공포의 안개를 거두고 있다. 이 쓰레기 취급당했던 위대한 것들은 지금 현재 우리에게 닥친 거대한 공포와 위기의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가장 아름다운 삶으로 바꿔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우정과 환대, 그리고 회복력이라 한다.

 

그동안 우리가 파괴한 생태적 자연이 인간이 무언가 애쓰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훨씬 빨리 회복하고 있다는 걸 직접 목격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더 겸손해져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정작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하고,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사회적 존엄성을 지키는 데 필요한 공공재, 그리고 이 공공재를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접근가능한 능력이라는 것도 함께.

 

어느 때도 잃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존엄성, 그리고 위기의 아픔에서 다시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회복력을 키우는 것은 사람과 이 공공재를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나쁜 연결은 사람들이 특히, 사회적 약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공공재에 접근할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한다. 즉, 접근할 수 없는 공공재는 차별을 만든다. 공공 마스크뿐만 아니라, 깨끗한 물이라도 쪽방촌에 더러운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거나, 아무리 좋은 병원이라도 역세권은커녕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는 언덕에 있다면, 그건 공공재가 아니라 차별이다. 교육도, 주거공간도, 쉼터도, 비싼 의약품과 교육비도 마찬가지다. 회복력은 바로 얼마나 탄력적이면서도 질긴, 그리고 평등하면서 자유로운 끈이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재와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삶이 이 재난을 초래한 그 이전 삶의 질서로 다시 복귀하지 않으려면, 바로 나쁜 연결을 끊어버리고 좋은 연결을 만들면서, 이 회복력을 잘 키워야 한다. 전환과 새로운 일상은 때 되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방향을 선택하고 용감하게 실천할 때 만들어지는 우리 모두의 공동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일 년 후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여전히 위험한 노동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고, 금융 자본은 투기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군비경쟁이 세계 헤게모니의 핵심이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은 나아지는 것이 없고, 공공재는 더 비싼 상품이 되어 버리고, 일자리 수, 실업률, GDP가 삶의 지표로 여전히 작용한다면, 전환과 새로운 일상은 그 어느 조각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6주기가 된 세월호 참사 기념일을 함께 맞이하면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사회가 다를 것이라 했던 우리의 기억을 다시 곱씹게 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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