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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행사
  • 2020.08.10
  • 803

포퓰리즘 시대의 도래?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온라인 좌담'을 개최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은 삶의 토대가 무너지고, 밥벌이 조차 하기 어려운 상태에 내몰렸습니다.

지자체와 정부는 일상으로 침투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하게 14조라는 큰 재정을 투여했습니다.

이른바 '긴급재난지원금'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국민에게 일시에 현금을 지급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니 많은 이들은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하며 평가절하하기도 했습니다.

심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 불충분한 사회안전망 등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빈번히 '복지포퓰리즘'이라는 말로 공격당합니다.

과연 복지, 기본소득, 확대재정 등은 포퓰리즘을 초래하는 것들일까요?

포퓰리즘이라는 것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해지고, 이에 대해 기존 엘리트/정치/제도에 대한 불신에 연원한다면, 소위 '우파' 등이 운운하는 '복지포퓰리즘'이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포퓰리즘적인 정치혐오를 막아내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참여사회연구소에서는 지난 약 2년간 '포퓰리즘'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시민과세계] 34호(2019년 상반기호)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시민과세계] 35호(2019년 하반기호) [포퓰리즘과 '우리']

[시민과세계] 36호(2020년 상반기호) [포퓰리즘 현상이 시민운동에 던지는 시사점을 들여다보다]

[학술행사] 논문발표회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적인가?]

[학술행사] 포럼 [포퓰리즘 시대와 민주주의: 정치의 실패인가 전환인가?]

 

이번 행사 또한, 지난 연구들의 토대 위에서 포퓰리즘의 한국적 발호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나날히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포퓰리즘 발호의 관계를 톺아봅니다.

 

[08/13]포퓰리즘 시대의 도래? 불평등과 한국적 조건들

- 일시: 2020. 8. 13(목) 오후 7시30분-9시

- 진행: 김주호 경상대 교수

- 패널: 김경락 한겨레신문 기자,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행사 요지]

정치의 위기와 포퓰리즘적 징후들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 ‘민주주의의 그림자’, ‘하나의 정치활동 방식’ 등 포퓰리즘은 흔히 사용되는 대중영합주의와는 다르게 이데올로기, 행위론적인 차원 등 다양하게 이해됩니다. 특히 ‘복지’와 결합되는 포퓰리즘은 80년대 남미의 페론주의 좌파의 사례에 근거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단편적인 이해에 머무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관후 연구원은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근대민주주의 이전엔 포퓰리즘이라 불릴만한 정치현상이 없었는데, 이는 반대로 포퓰리즘의 주요한 특성을 유추해볼 힌트를 줍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을 핵심으로 하고, 다수결주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합니다. 모든 인민은 주권자이며 대표제를 통해 재현(representation)되어야할 인민의 의지 자체입니다. 하지만 실제 민주주의의 행위자는 소수입니다. 대표자, 관료, 자본가 등이 그들입니다. 또한, 다수결주의는 언제나 소수자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실제 포퓰리즘 현상은 이러한 데서 발현됩니다. 대표민주주의에서 인민은 언제나 투표장이나 대표(재현)를 통해서만 등장하지만 포퓰리즘 현상에서 인민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대표성을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퓰리즘은 기존의 대표민주주의와 정당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체로 포퓰리즘 현상은 정치혐오, 반정치적 양상을 띄고 체제비판 이후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복지나 사회적 포용, 소수자 등을 공격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있거나 이념적 특성이 뚜렷한 것도 아닙니다. 분명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체제하에서 언제든 상존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지만, 이것이 민주주의체제를 비판, 해체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구성할 동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현실에서 포퓰리즘은 복지확대를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는 데 주로 활용되어 그 의미는 더욱 협애하게 이해되어 왔습니다. 주로 특정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표를 획득하기 위해 대중영합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것, 특히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현금지급 등의 정책에 포퓰리즘의 딱지를 붙이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복지확대 등을 두루 공격하는 말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남재욱 연구위원은 ‘복지확대->재정건전성 훼손->경제문제’ 식의 프레임 자체도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스웨덴이나 독일의 사례를 보면 재정건전성이 준수하면서도 복지가 발달한 국가들이고, 반대로 포퓰리즘의 주요 사례로 드는 남미의 국가들이 복지수준이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또한 지난 10년간 나름 복지수단과 정책, 제도가 꽤나 성장했지만 재정건전성이 악화되었다고 볼 수 없기도 합니다. 

 

서구 등지에서 전후 약 30년간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복지국가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70-8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본의 반격’이라 불리우는 신자유주의적인 전환은 전체 시민들을 포괄/포용하지 못했고, 여러 사회적 위험을 외부화/개인화하면서 불안전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경제위기는 가장 낮은 이들에게 더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이와중에 이들을 대표할,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할 ‘엘리트’ 또는 기성 정치세력은 거의 부재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자리를 잃고, 대표되지 못하는 이들은 부정적 포퓰리즘 현상 즉, 외부의 적과 소수자 혐오, 반정치적 정서는 강해지고 이들을 동원하는 정치세력 또한 부상하게 됩니다. 매우 거칠게 정리했지만, 이것이 주는 교훈은 사회적 불평등 즉, 경제적인 불평등과 정치적인 불평등(대표되지 못함)이 부정적 포퓰리즘의 토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패널 모두 불평등 심화가 포퓰리즘 현상의 확산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불안, 특히 재난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닥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하게, 즉 가장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합니다. 이관후 연구원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사례를 들면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0명이 있는데 배고픈 사람이 5명이다. 빵이 5개 필요하다. 이들에게 빵을 안 주면 죽는다. 그러나 불이 꺼진 방에 10명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빵이 필요한 다섯명이 누군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빵을 줘야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주면 좋겠지만, 복지전달체계가 그만큼 허약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입니다. 남재욱 연구위원은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유사한 사례로 언급했습니다. 노동부장관이 나서서 “내가 필요한 이들을 선별해서 주겠다”라고 말했지만 몇 주가 지나도 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선별할 역량이 안 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패널들은 무엇보다 정치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김경락 기자는 브렉시트의 주요 지지세력이었던 이들을 소위 ‘남겨진 자’, 또는 ‘버림받은 자’들을 강조합니다. 하층민의 대변자인 영국의 노동당이 급격하게 엘리트화되면서 이들을 더 이상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적 조건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브렉시트와 같은 포퓰리즘 현상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비슷한데, 진보정치의 과도한 엘리트화를 지적합니다. 법조출신의 특정 엘리트 전문직이나 기업인 등이 정당의 주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이 최근 10년간 가속화되었다고 합니다.

 

이상 살펴본 내용처럼 포퓰리즘 현상은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다 이것이 내표한 위기의 속성을 드러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인 불평등과 소수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이 대표되지 못하는 상황, 기성정치가 그 빈틈을 메우지 못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뜻하는건 근대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 정당체제의 위기이며 포퓰리즘은 그 징후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뚜렷한 ‘운동’, 또는 정치행위로서 포퓰리즘은 직접적으로 목격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국이나 서구에서 포퓰리즘의 바탕이 되는 위기는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의 역할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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