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82] 박근혜, 참 고마운 대통령 : 청년의 분노를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박근혜, 참 고마운 대통령

청년의 분노를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정태석 전북대학교 교수

 

2016년 11월 12일. 서울 종로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규탄하는 청년들, 대학생들의 무리가 거리를 가득 메우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참으로 얼마나 듣고 싶었던 외침인가! 그동안 청년들, 대학생들의 울분이 간간이 터져 나오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계기가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유착하여 공정해야 할 대학 입시마저 농단했던 최순실, 정유라 사태가 불거지면서 젊은이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권력을 오·남용하고 사유화한 대통령을 더 이상 참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으로 인해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통합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주말마다 100만을 넘나드는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과 지방 곳곳의 광장에 모여들였다. 일개 사인이 군사 외교 문제에까지도 개입한 최순실의 국정 농단 주범이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라는 점이 점차 드러나면서 박근혜의 퇴진과 구속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2016년 11월 29일. 시민들의 외침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박근혜는 담화문을 통해 퇴진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자신의 잘못을 억지로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퇴진에 대한 결정 장애를 드러냈다. 그동안 의지해온 최순실이 없으니 이제 결정을 국회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임기 단축 운운하면서 말이다. 탄핵당해도 시원찮을 사람이 임기 단축 운운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국회가 그러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라도 있는가? 마지막까지 탄핵의 불명예를 모면하려는 꼼수를 쓰는 것을 보면, 이런 사람을 그동안 대통령으로 삼아온 국민들로서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대통령과 격이 다른 성숙함과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건 등 정부가 국민들, 심지어 청소년들의 건강과 안전을 외면하는 사태들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적 사고가 확산되어 국민들의 주권자 의식은 점점 더 높아져왔다. 그리고 대통령의 무능과 권력 사유화가 드러나는 초유의 정치적 사태가 발생하면서, 급기야 청소년들의 정치 의식과 시민 의식도 고양되었고 대통령이 중고생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는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 참 고마운(?) 대통령이 된 것이다.

 

2012년 말로 돌아가보자. 한국 사회는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 절실했다. 사회는 재벌 중심의 경제로 인해 양극화되어 있었다. 자본의 투자 확대와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성장을 하면서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았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었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고, 실업자로 또는 아예 구직 활동을 포기한 실망 실업자로 살아가다가 먹고살기 위해 임시로 비정규직이나 알바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젊은 층들 사이에서는 불만과 변화의 열기가 높았다. 그런데 기성세대는 이런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다거나 아직 배가 불러서 궂은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들이 길러놓은 자식들인데도 말이다.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기성세대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는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려고 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 주식투자 등 재테크를 통한 부의 축적이나 개인적인 소득 향상에 더 몰두해왔다. 물론 기성세대도 주택 구입이나 자녀 사교육비 마련, 노후 대비 등으로 자신들의 앞가림을 하는데 바빴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신세대, 자녀 세대의 일자리, 교육, 결혼, 출산, 양육 등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찾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동안 젊은 세대는 점점 더 힘든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젊은 층에 대해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대하면서 비난하며 불평만 늘어놓았으니, 젊은 세대에게 이 사회는 ‘헬조선’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20대의 65.8%와 30대의 66.5%는 문재인을 선택한 반면에, 50대의 62.5%와 70대 이상의 72.3%는 박근혜를 선택했다. 50대 이상의 기성세대와 영남 지역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박근혜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선거 부정의 도움과 함께 노인 복지 등 지키지도 못할 각종 복지 공약과 경제 민주화 등을 내세워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복지 공약 후퇴, 경제 민주화 후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적절한 대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폐쇄, 사드의 일방적 배치 결정 등 집권 기간 내내 폐해들이 쌓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무능하고 판단력을 잃은 대통령이 공적인 행정 조직에 의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적인 친분을 가졌던 최순실에게 자신의 권한을 넘겨준 권력 사유화와 부패의 결과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지금 민주주의를 희롱하며 자신의 사생활을 지키는데 주력한 대통령 한 명으로 인해 국민 90% 이상이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시기 한국 사회는 재벌이 부를 독점하는 불평등하고 경쟁적인 사회가 되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과 양육 및 교육 복지 정책이 시급했고, 또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산업 역군들에게 노인 복지를 제공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래서 증세와 복지 제도 확충을 통한 복지 사회로의 전환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장·노년 세대는 구시대의 상징인 박근혜를 압도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젊은 세대가 그렇게 바랐던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 불이익은 산업 역군들에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노인 빈곤율의 압도적 1위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급기야 이미지 관리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무능함을 드러낸 대통령, 대통령을 왕처럼 생각한 대통령, 왕권은 최순실에게 맡기고 자신은 영원한 공주로 남고 싶었던 대통령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처럼 역사의 후퇴라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많은 국민들이 정치적 각성을 하게 되었고, 특히 많은 청소년들, 청년들이 시민으로서, 주권자로서 자기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새누리당밖에 몰랐다는 시민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었다는 시민들이 적극적인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젊은 층들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중심 세력인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도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로 주권자임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다. 이제 이들은 한국 사회의 부정의와 부패의 뿌리가 대통령 한 사람을 넘어서 대통령을 비호해온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과 이들과 유착한 재벌 집단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아가 대다수 국민들을 무시해온 부패한 보수 정치 세력과 재벌 대기업 등 기득권 세력이 지배하는 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앞으로의 시대적 과제라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광장에서 많은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재벌도 공범이다”라고 외치면서 서로 연대와 화합의 열기를 나누고 있다. 또 사회적 약자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공감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열기는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에서 시민들 간, 세대 간의 공감과 배려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기보다 서로 이해하고 나누는 동료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시민들이 서로 이웃처럼 나누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정의로운 공동체 사회를 꿈꿔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사회 체제의 전환으로 이어가야 한다. 개헌 논의를 민주적인 정치제도, 선거제도를 만들어가는 디딤돌로 삼으면서,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제도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를 계기로 사회의 부정의과 부패의 고리가 총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기성세대는 기득권에 안주하며 자신의 몫을 지키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고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인들도 스스로 개혁하면서 부패한 보수 정치 세력을 해체하고 젊은 층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정치 제도를 만들어나가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주권자인 시민들의 의사가 공정하게 대표될 수 있는 정치 제도와 선거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가 국민의 의견을 잘 대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권자가 아니라 그 대리자일 뿐인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선출하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법률 자체를 국민 주권의 원리에 부합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개헌 논의도 주권자인 시민들이 주도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 광장과 거리에서의 열기와 공감을 정의롭고 공동체적인 사회를 향한 근본적인 사회 개조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연대가 절실하며, 미래의 주역들이 앞장선다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둡지 않을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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