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484] 유엔 농촌노동자 권리선언, 신자유주의에 맞선 사람들

유엔 농촌노동자 권리선언, 신자유주의에 맞선 사람들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유엔 선언으로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국제조정위원

 

지난 11월 19일 뉴욕에서 열렸던 유엔 총회 제3위원회(사회·인도주의와 문화위원회)에서는 각 국가의 투표(찬성 119표, 반대 7표, 기권 49표)로 ‘농민과 농촌노동자 권리선언'((Declaration on Rights of peasants and other people working in rural areas)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하 농민권리선언) 이제 12월 17일경에 진행될 예정인 총회에서 공식적인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무난히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인권의 역사에 있어서 그 동안 소외되어 왔던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새롭게 정립되는 큰 진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과정을 가슴 졸이며 바라 본 비아캄페시나(La ViaCampesina, 농민의 길) 회원들에게는 굉장히 가슴 벅찬 소식이나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소식일 수 있을 것 같다. 유엔 선언이라니?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라니?

 

이 운동을 시작하고 주도해 온 비아캄페시나는 1993년 WTO, IMF, World Bank등의 국제기구와 초국적 독점농기업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농업시스템에 반대하는 국제농민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창립되었으며 현재 82개국, 181개 조직이 가입되어 있는 국제 농민운동조직이다. 한국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가입단체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99년 시애틀, 2003년 멕시코 칸쿤, 2005년 홍콩에서 벌인 WTO 각료회의 반대 투쟁 등을 통해 WTO 등에 대한 소농들의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내 온 비아캄페시나는 농민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토지와 천연자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합의된 규범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무모했지만 끈질기고도 뜨거운 긴 투쟁을 시작했다.

 

그 투쟁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농민권리 선언을 만들기 위한 내부적 결의를 마친 비아캄페시나는 2003년부터 유엔인권이사회와 접촉을 시작했고 자문위원회를 거치고 이사회를 거쳐 10년이 지난 2013년부터 인권이사회에서의 5차례 공식 협상과 3차례의 투표를 통하여 마침내 올해 총회에까지 올리게 되었다.

 

이 과정은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는 전 세계 소농들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기도 했지만 많은 농민, 어민, 원주민, 노동 단체들, 그리고 FIAN(Food First Information and Action Network), CETIM(Centre Europe – Tiers Monde) 등 자문그룹들이 함께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이 선언을 강력히 지지 지원하는 볼리비아 등의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들의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지속가능한 먹거리, 지속가능한 생태계, 지속가능한 지구가 가능함을 이들 모두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할 수 있었다. 

 

“농민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전 세계인류발전과 생물다양성 보존 및 증진을 위해 공헌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농민과 농촌노동자가 빈곤, 기아, 영양실조, 기후변화로 고통 받고 있고, 매년 땅과 공동체에서 강제로 추방당하는 숫자가 늘어나며 농민과 농촌노동자가 의존 해왔던 천연자원 및 자원자원의 지속적 이용이 어려워지며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행사마저 거부당하고 있으며 농민과 농촌지역민이 위험한 착취조건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 선언문을 제정하고자 한다.” (농민권리선언문 서문)

 

농민권리서언문은 위 서문과 함께 농민과 농촌지역민의 인권, 평등과 발전에 대한 권리, 식량주권에 대한 권리, 토지·물·종자·생물다양성·전통지식 대한 농민의 권리, 여성과 청년의 권리, 국가의 의무, 국제기구의 책임 등 총 28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선언은 농민들의 인권 뿐 만 아니라 토지와 천연자원에 대한 농민의 권리, 생물다양성에 대한 농민의 권리, 물에 대한 농민의 권리,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국제법이 포괄하지 못 했던 농민들과 지역민들의 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선언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농업 시스템으로 야기된 전 지구적 문제인 기아와 빈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파괴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지난 10일은 ‘인권의 날’이었다. 70년 전인 1948년 제정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로 시작하는 세계인권선언을 기억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 기념식에 참석하여 “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겠다.”는 기념사를 하였다. 참 좋은 말이었지만 이 기념사를 듣는 기분은 씁쓸하였다. 인권국가를 지향하는 인권대통령이 정작 농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농민권리 선언문 채택에는 기권을 함으로써 한국농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국으로서 2013년부터 이 논의에 참석해 왔고 3차례의 투표를 거치는 동안 반대-기권-기권의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한국 농민들과의 소통은 전혀 없었다. 정부의 입장을 듣고 농민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주무 담당관의 면담을 요청하고 토론회 등을 개최하였으나 명확한 근거와 입장 없이 ‘알아보겠다’ ‘논의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고 정부 대표는 당사자인 농민들과의 간담회 한 번 없이 투표에서 기권의 입장을 취했다.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질 농민이 점점 사라져 가고 농촌공동체가 붕괴되어 가고 지역이 소멸해 가고 있는데 아직도 정부는 남의 불 보듯 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땅을 일구고 지켜왔던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초국적 농기업으로부터 농민을 지켜내는 것이 왜 우리 모두의 문제인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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