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98] 개헌의 핵심은 ‘자치’여야 한다 : 분권과 자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

개헌의 핵심은 ‘자치’여야 한다

분권과 자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

 

김종욱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국민 선택의 실패’와 시민의 책임을 확인하는 정치 과정이었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해야 했으나, 동시에 그 국민은 민주주의와 헌정을 지키는 주체임도 확인했다.

왕이 사라진 공화국의 국민은 그들의 손으로 선택한 대리자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연인원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토요일마다 광장으로 나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으니, 그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가슴 아픈 고백을 해야만 했다. 도대체 파악되지 않는캐릭터를 가진 대통령과 제왕적 권력이 만나 벌어진 이 답답한 해프닝은 탄핵 인용으로 귀결되었고, 이제 전직 대통령이자 피의자 신분이 된 탄핵 당사자는 삼성동에 칩거하며 자신의 무죄를 강변(强辯)하고 있다. 범죄 여부는 국민이 그토록 신뢰하지 않던 검찰과 법원에 맡겨두도록하자. 그 이유는 민심의 균형추가 무너진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자신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중대한 배신’을 통해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탄핵 인용 이후 개헌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집권당이 될 개연성이 높아진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하고, 국민의당‧바른정당‧자유한국당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개헌안 국민투표를 5월 9일 대통령 선거일에 동시에 하자고 합의했다. 개헌의 시기와 내용을 중심으로 정치적 갈등과 국민적 분열이 시작되었다. 일방은 권력을 나눠 먹으려는 정략적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다른 일방은 제왕적 권력을 축소해서 재발을 방지하자며 빠른 개헌을 주장한다. 뭐 시점이야 올해 대통령 선거일이든 내년 지방선거일이건 간에, 그것이 국민적 합의 속에서 진행되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마도 이 논쟁은 헌법 개정 내용은 고사하고 시기 논쟁만 벌이다가 날을 샐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첫째, 제왕적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대립하면서 언제까지 국민을 분열로 몰고 갈 것인가? 둘째, 모든 문제를 대통령 개인의 잘못 탓으로 돌린다면, 매번 실패하는 유권자의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셋째, 거대한 정치 변동이 지나고 난 이후, 대한민국의 변화를 차기 대통령의 통치에 맡겨 놓으면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개헌 문제에 대한 민주적 토론을 전개해야한다.

분권형 개헌은 다양한 정당의 연합정치 실현과 이념이 다른 정당의 ‘동거정부’ 수립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여러 정당의 연합정치와 동거정부의 경험은 토론과 협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다. 이미 입헌군주제나 내각제를 채택한 국가가 아니라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오죽하면 유럽에서 미국의 대통령제는 늘 공포, 멸시,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왕정복고와 독재적 권력 집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국 대통령제는 남북 갈등이라는 지역 대립, 연방제도에 의한 특유의 견제 장치 등 우연적이며 특수한 정치 지형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미국 특유의 정치제도인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권력 획득을 위해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아귀다툼을 하는 ‘싸움질’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분권형 개헌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서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불행한 대통령’이었다. 만약 이것이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면, 공화국 주권자인 국민은 매번 ‘나쁜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시원(始原)도 유권자인 국민이다. 이도 아니라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여야 정당정치와 입법부의 무능 때문이다. 즉 이 정국은 국민 선택의 실패이며, 총체적인 정치 기능의 마비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사라져야 할 것은 박근혜 전(前)대통령만이 아니라, 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방치한 정당체제를 해산하거나 정치인들 모두가 책임지고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 ‘여의도 정치’의 종언을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 ’87년 체제’가 선택한 헌법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고, 2012년 유권자가 선택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낙마했다. 국민은 탄핵 민심을 통해 문제가 된 대통령을 자연인으로 되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의 문제점을 고치는 것이다.

 

이번 탄핵 정국의 또 다른 핵심적 함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로 집약된다.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의 삶을 제고할 수 있는 ‘역사적 결절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주의 핵심인 자치를 헌법 개정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전 루소는 자유란 인민의 자치 실현이며, 인민이 자기입법의 실천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라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주의는 자치의 확대였다. <예기(禮記)>에도 자유 평등한 백성들이 임금을 표준으로 삼아 자치하는 ‘칙군자치(則君自治)’를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치가 실현되는 풀뿌리의 변화, 즉 일상의 민주화가 중요하다. 자본과 행정관료, 지식권력과 법‧제도로 포박된 일상의 식민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치 권력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일상의 민주화는 앞으로 진행될 엄청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진지(陣地)를 구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의 격랑은 일상을 뒤덮을 것이다. 기술의 급속한 변화와 자본의 공룡화 시대의 도전에 맞서 가정, 일터, 마을, 공동체의 일상적 삶의 공간을 가꾸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도 자치 권력에서 나올 것이다. 잘못된 권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했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의 국민들에게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은 너무도 현명한 조치다. 더 많은 자치권을 획득한 대한국민은 가정, 일터, 마을, 공동체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그래서 자본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공감과 치유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 이념과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투쟁하기보다는 분권과 자치의 시대로 전진해야 한다. 개헌 논의가 더 필요하다면 토론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대신 이번 대통령 선거의 입후보자들은 정당 또는 개인의 개헌안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거대한 민심을 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 민심은 헌법을 낳고 공론은 법률을 낳는다. 그래서 국민의 공감대를 헌법에 담는 것은 ‘국민이 곧 국가’임의 천명(闡明)이다.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서 ‘마마 용서하옵소서’라며 눈물을 흘리던 여성도, 경남 봉화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나라를 걱정하는 남성도, 그것을 애국으로 알고 있는 우리 국민이다. 이제 진짜 권력은 나누고, 국민에게 돌려주자.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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