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88] 이재용 처벌하면 경제가 죽는다고?: 삼성 적폐를 청산할 때가 왔다

이재용 처벌하면 경제가 죽는다고?

삼성 적폐를 청산할 때가 왔다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이번 특검이 시작할 즈음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다. 특검이라지만 죽어가는 권력 눈치 보기에 바빴던 정치 검찰보다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갈까 걱정했다. 박영수 특검에 대해 가졌던 나의 불신은 보통 시민이면 당연히 나올 만한 것이다. 박영수 특검이 황교안, 우병우와 각별한 사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엇보다 이건희를 구속조차 하지 않았던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에 대한 기억을 나는 떨칠 수가 없었다.

 

지난 시기 2008년 비자금 특검의 결과는 이건희에 면죄부를 발급해 줌으로써 법을 조롱한 삼성을 살려주었고, 민주공화국의 법과 정의를 죽이는 대가를 지불했다. 이어 이명박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된다며 이건희를 ‘원 포인트 1인 사면’으로 풀어 주었다. 이로써 삼성은 1996년 에버랜드 전환 사채 편법 상속 사건 이래 계속하던 버릇대로 무리수를 두며 이재용 3대 세습체제로 가는 길을 감행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삼성이 나라 경제 꼭대기를 차지하며 검찰 등 권력기관을 길들이는 삼성 공화국, 정경 유착 사슬-세습에 기반한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의 사익 동맹 체제,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재벌 이익 독식을 위해 위험 및 비용 책임을 노동자 및 외부로 떠넘기는 무책임 축적 체제, 불공정‧불평등‧불안이라는 3불 심화의 희생 체제가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 끝이 뭔가. 바로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사익공동체’의 국정농단, 이들 공범자 카르텔에 의한 나라경제와 국민복지 농단, 국민 삶의 농단이다.

 

이처럼 사태의 중대성 때문에 나는 이번 특검에 대해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 섞인 기대도 가졌던 것이다. 1000만에 달하는 ‘촛불 시민혁명’ 행진이 삼성 적폐- 재벌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 경제를 살리라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잘못했다간 특검도 살아남지 못할 판국이다. 다행히 2017년 특검은 나의 예상을 넘었다. 이건희를 살림으로써 법과 정의를 죽이고 나라 경제를 죽이고 삼성 공화국을 온존시켰던 2008년의 ‘면죄부 특검’과는 달리, 이번 박영수 특검은 삼성 이재용에 대해 용기 있게 구속 영장을 청구하고 이로써 법과 정의를 세우는 특검, 즉 ‘촛불 특검’이 되었다. 박 특검은 뇌물 공여(430억 원), 횡령(뇌물 중 일부분이 회사자금, 특경가법 위반), 위증(국회청문회에서 거짓말,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의 3종 범죄 혐의를 이재용에게 적용했다. 430억 원대의 뇌물공여죄는 제3자 뇌물제공과 일반 뇌물수수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특검이 제3자 뇌물 제공 혐의를 적용한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혐의야말로 삼성 이재용 측이 뇌물 제공의 대가로 경영권 승계라는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간주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특검의 이 말은 민주화 시대는 물론이고 한국 현대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아주 낯선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비리-특혜-세습 공화국에서 찌들고 상처받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정계, 재계, 법원, 검찰, 언론, 학계 등등 전반에 걸쳐 문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뿌리 깊은 수구-보수의 나라에서 우리가 이런 희귀한 말을 들을 수 있게 됐을까. 광장 촛불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광장의 거대한 촛불이 의회의 박근혜 탄핵에 이어, 이재용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새로운 특검을 나오게 했다. 정의가 경제를 앞선다는 말을 천명하게 했다. 박영수 특검의 이 말은 길이길이 명언으로 남을 것이다.

 

이재용과 그 일가가 지배하는 삼성은 일단 죽어야 한다. 그래야 삼성 공화국의 시대를 과거로 보내고, 민주공화국의 법과 정의가 살아날 수 있다. 삼성은 완전히 죽으면 안 된다. 삼성이 완전히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절대 반대다. 삼성은 갚아야 할 게 매우 많다. 일단 징벌을 받고 죽은 후에 민주공화국의 시민 기업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그리하여 삼성도 살고 나라 경제도 살고 국민 복지도 증진되는 길, 이 길을 여는 데 삼성은 오래 밀린 책임 숙제를 다 해야 한다. 거듭난다면 삼성은 그렇게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공공복리를 위해 기여할 수 있고, 해야 마땅하다. 여기에는 국민연금을 사유화할 생각을 버리고 그 정상적 주주권 행사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일, 창업주 이래 오랜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버리고 노동기본권을 명실상부하게 인정하는 일, 협력 부품기업들과 상생의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일, 상속세를 비롯해 납세 책임을 이행하고 국민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일 그리고 해외투자의 직, 간접적인 유턴과 이를 통해 상생적 산업 연관 및 기업 연관 관계,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그것이 초일류 국민 기업, 시민 기업으로 거듭나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스웨덴의 발렌베리처럼) 삼성의 미래상이다.

 

지금, 삼성 측에서는 여전히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음은 물론, 보수 언론, 재계, 재계 산하 연구소 등에서 이재용을 가두면 경제가 죽는다고 난리들이다. 그렇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한국 경제는 ‘총수 리스크’가 너무 심하다. 삼성 재벌의 악습을 근절하고 재벌 적폐를 청산한다면 한국 경제는 정의로울 뿐 아니라 새로운 발전 단계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특검의 말을 아래와 같이 살짝 바꾸어 보면 어떨까.

 

 

“정의를 세우는 일이 곧 나라 경제와 국민 복지를 살리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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