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7-07-11   2046

국기에 대한 맹세문 수정안 발표에 즈음한 법제화 반대 성명

지난 7월 6일 행정자치부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 수정안을 발표하고,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수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법제화하는 대한민국국기법과 시행령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온 인권사회단체들은 이번 수정안 역시 기존 맹세문과 크게 다를 바 없으며, 주권자인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을 강요하는 인권침해라는 본질을 벗어던지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이에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아래와 같은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11일 행정자치부에 전달하였다.

주권자에게 텅빈 충성을 강요하는 국가의 폭거를 멈춰라

– 국기에 대한 맹세문 수정안 발표에 부쳐

지난 6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국기에 대한 맹세문 수정문을 두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냈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수정 내용이 기존 맹세문에 비춰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는 점은 일단 제쳐두자. 더 큰 문제는 아무리 맹세의 내용을 손질한들 충성 서약을 강제하는 형식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것이 여전한 국가의 오만이자 폭거라는 데 있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학교의 명칭이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그런데도 행정자치부는 미래지향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담았다는 억지를 내세우며 ‘국민’에게 몇 글자 바뀐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아무리 ‘맹세’ 안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같은 새 문구를 집어넣는다고 해도, 그것이 낡은 형식이고 인권침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자유와 정의의 개념을 국가가 규정하고 독점한다면 이는 진리가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미국의 충성 맹세를 보라. 그 나라가 맹세에서 읊어지듯이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정의를 가진 국가’인가? 게다가 미국은 충성 맹세로 ‘국민’에게 주입된 애국주의를 양분 삼아, 낡고 잔혹한 패권 질서를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다. 미국의 한 12세 소년은 이 맹세의 본질을 이렇게 간파한다.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가 보장되지 않는 한, 충성의 맹세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위선적인 선언에 불과하다!”

행정자치부는 ‘충성’의 사전적 의미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한 개인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어찌 ‘충성 맹세’라는 획일적 형식으로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있나?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맹세’나 ‘효에 대한 맹세’ 따위를 법령으로 만들어 ‘국민’에게 선창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부는 더 이상 이 땅의 사람들에게 ‘국민(nation)’이기를 강요하지 말라. 국가=국민의 등식은 20세기를 피로 얼룩지게 한 국가의 낡은 호명 체계일 뿐이다. 부끄러운 ‘국민’학교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도, ‘국민’을 만드는 ‘맹세’라는 고갱이는 끝내 버리지 않으려 하는가? 이미 여러 외국에서는 ‘국민’이라는 호칭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국가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국민’ 개념이 아니라, ‘헌법에 기초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누리는 자유인으로서의 시민’ 개념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따라서 ‘국민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기 경례와 맹세를 강제하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시민이 지적ㆍ영적으로 다양할 수 있는 자유, 심지어 국가의 잘못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면서도 오히려 주권자에게 텅 빈 충성 맹세를 강요하는 일은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제하는 국가가 어찌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국가야말로 주권자인 시민에게 인권 보장을 서약해야 하지 않겠는가?

행정자치부는 ‘국민’ 다수가 국기에 대한 맹세 유지를 원하고 있기에 ‘폐지는 오히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법제화한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 국기에 대한 맹세 존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면, 그 전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공론화하는 절차를 먼저 밟았어야 한다. 최소한의 토론회나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채 여론조사를 한다면, 수십여 년을 ‘국민’으로 호명되어온 사람들이 자신을 ‘국민’으로 키워온 ‘맹세’가 가진 문제점을 되짚어볼 여유가 있었겠나? 국기에 대한 맹세가 인권침해가 아닌 이유를 증명하지도 못한 채 형식적인 여론조사 결과만을 내세워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침해를 정당화하려는 자세부터가 사람의 권리와 헌법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정부와 행정자치부는 국기에 대한 맹세 법제화 시도를 중단하고, 시민들과 관련 학계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라. 우리는 우리들 자신과 미래 세대가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끝까지 이 ‘자랑스럽지 못한 국가’와 싸울 것이다.

– 맹세문 수정은 필요없다.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삭제하라!

– 국기에 대한 맹세도, 경례도 인권침해이다. 「대한민국 국기법」에 포함된 ‘국기에 대한 경례’ 조항도 삭제하라!

2007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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