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9-07-16   1854

[7.16 시국선언자 대회] 헌법이 존엄사 하는 시국에 부쳐






이명박 정권의 헌법질서 유린


김승환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은 다양한 갈등과 대립 그리고 타협의 산물이다. 이 때문에 헌법은 다양한 계층, 세대, 지역의 이익과 관점이 반영되어 있는 법전이다.

제119조 제1항은 시장경제, 제2항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규정하고 있다. 시장경제는 자유로운 경쟁과 성장을 강조하는 데 반하여, 사회적 시장경제는 공존과 배분을 강조한다. 양자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회적 강자의 양보와 절제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특별한 배려가 요구된다.

제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받을 재산조차 없는 사람에게는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더 중요하다. 사회적 약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사회적 강자의 재산적 이익의 양보가 필요하다.
 
긴장과 갈등 그리고 충돌관계에 있는 헌법규범들을 조화롭게 해석하여 입법과 사법 그리고 국가정책에 반영할 때 비로소 정의로운 공동체의 건설이 가능하다. 국가권력은 갈등하는 이익과 권리들을 조정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떤 것을 전적으로 후퇴시키고 다른 것을 우선시켜서는 안 된다. 즉, 우리 헌법은 승자 독식 또는 다수파 독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뜻이다. 민주공화국은 군주체제, 독재체체, 권위주의체제, 전체주의체제를 배격한다. 제1조 제1항에는 민주공화국의 탈을 쓴 반민주공화국체제에 대한 경계가 들어 있다. 민주주의공화국은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것은 어떠한 의사, 주장, 가치, 사상에도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사유영역에 대해서 국가권력은 중립적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 헌법이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다고 해서 그 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군주가 없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국가권력을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이 독점하고 있을 때, 그 나라는 반헌법적인 제왕제국가 또는 독재국가가 되는 것이다. 


국민주권은 민주공화국의 핵심요소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국민의 동의 없이는 국가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 국가권력의 행사자는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권력의 행사자는 권력행사의 ‘기회’를 획득하는 순간에만 민주적 정당성을 취득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행사의 기간이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담당자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주기적으로 요구하는 수단이 선거 내지는 선거를 통한 의사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국민은 선거 외에도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 전형적인 것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이며, 이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 의사표현의 자유, 방송의 자유, 신문의 자유, 알 권리이다. 그러한 권리들을 통해서 주권자인 국민은 권력행사자의 정당성을 점검하는 것이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교사, 학생, 외국인, 노동자, 재소자 등 누구에게나 인정된다. 헌법은 심지어 용역깡패의 의사표현의 자유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미네르바 사건, 피디수첩 사건 등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바로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탈하는 검찰폭력이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입을 여는 자유이고, 입을 여는 자유에 대한 제한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정권이 국민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다양성과 여론에 의한 권력감시를 봉쇄하려는 것으로서, 스스로 반민주주의 정권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방송은 국가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방송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권력이 방송을 장악할 경우 방송은 정권안보용 메가폰으로 전락하고, 자본이 방송을 장악하는 경우 방송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의 하수인으로 변질되며, 그 결과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인 여론다양성이 깨지게 된다. 여론다양성의 파괴는 민주주의 파괴, 그리고 국민주권의 파괴를 초래한다. 


알 권리는 국민이 방송, 신문, 국가정보 등 다양한 정보원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정보를 취득하는 권리이다. 이를 토대로 국민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국가권력을 감시․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표현의 자유, 알 권리, 방송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방송의 자유와 독립성을 훼손하는 권력은 민주적 권력이 아니라 독재권력 내지는 파쇼권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집회의 자유는 개인이 집단을 이루어 의사를 표현하는 자유이다. 이 점에서 그것은 특수한 형태의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고, 집시법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찰은 옥외집회․시위에 대한 사전신고제를 집회에 대한 허가제로 남용하고 있고, 집회참여자에 대한 살인적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경찰의 이러한 행위는 모두 집시법이 규정하는 집회방해죄(제3조, 제22조), 형법이 규정하는 폭행죄, 상해죄 등에 해당한다. 즉, 그러한 행위는 경찰권의 행사가 아니라 경찰폭력에 불과하다. 집회현장이나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망타진식 단속과 검거행위는 스탈린 시대 또는 히틀러 시대에나 볼 수 있는, 법치국가 원칙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헌법은 국가권력을 분리해 놓고, 상호 견제와 균형 및 통제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법관 또는 검사가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국회와 헌법재판소는 탄핵소추(제65조)와 탄핵심판(제111조 제1항)을 할 수 있다. 검찰권은 국가조직상 집행권에 속하기는 하지만 일반행정과는 달리 범죄사건에 대한 수사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받지 않고 중립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해야 한다(검찰청법 제7조, 제8조). 법관은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임법관의 지시도 받아서는 안 된다(제103조). 국회는 집행부와 사법부의 인사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국무총리임명 동의권, 국무위원해임건의권, 장관 인사청문회 등), 국정감사권과 국정조사권을 통해서 다른 국가권력을 감시․통제한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제왕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의 어디를 보아도 대통령이 제왕적 지위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헌법규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현실에 있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행사자들이 권력행사의 준거를 헌법과 국민의 의사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에서 찾는 현실이 헌법정신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집행권은 물론이고 입법권과 사법권의 구성원들에게도 헌법이 무엇을 명령하고 있는가?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결과 우리는 무서울 정도로 민주주가 질식당하는 위기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 권력이 국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현재 여당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당론의 결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린 미디어법안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당의원들이 모르고 있다는 말이 그들 스스로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현재의 한나라당의원들을 보면 마치 유신치하의 유정회의원들을 보고 있는 듯한 애처로운 느낌이 들 정도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야 한다. 그러나 여당의원들은 차기 총선에서의 공천 확보, 장관 발탁에 대한 기대감, 검찰 소환에 대한 두려움 등에 얽혀서 대통령에 종속되어 대통령의 의사를 대표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 검찰의 역사는 갖가지 오욕으로 점철되어 있고, 아직도 지난날의 그 더러운 타성과 구역질나는 권위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겁찰은 숱한 검찰폭력과 검찰살인을 저지르고서도 검찰피해자들과 국민 앞에 단 한 번의 진솔한 참회도 하지 않은 집단이다. 사퇴한 검찰총장 후보자 천성관의 각종 범죄․비리의혹이 밝혀졌는데도 국민 앞에 사과의 성명서 한 장 없는 집단이다. 그런 문제투성이의 인물이 검찰총장 후보자가 되면서 20여년의 세월동안 검찰권을 휘둘러 왔으니, 그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검찰피해를 당했겠는가! 검찰은 정치적 반대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대통령의 의중에 맞게 촛불집회, 미네르마 사건, 피디수첩 사건에서 검찰권을 남용하여 인권을 침해했다.


법원도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저지른 촛불집회 영장사건 몰아주기 배당, 집시법의 야간옥외집회․시위금지 조항 위헌제청과 관련한 재판개입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고, 대법원장은 법관징계법에도 없는 엄중경고라는 솜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으로 국민을 희롱하였다. 현 정권에서 법관들도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헌법과 법률의 의미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도 함께 읽거나 오히려 거기에 더 큰 무게중심을 두는 흔적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법과 원칙은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이상 그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그 친위권력이 주장하는 법과 원칙은 이명박 대통령이 무엇을 옳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그르다고 생각하는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에 맞는 것은 법과 원칙이지만, 그것과 다른 것, 그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법과 원칙이 아니다. 방송이 정권을 비판하는 것,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 교사가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 네티즌이 인터넷상에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 야당이 쟁점법안의 통과를 가로막는 것, 이 모든 것은 법과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불행하게도 헌법이 존엄사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 아래 글은 ‘7.16 시국선언자 대회’에서 발표된 여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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