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8-12-03   774

근조 대한민국 역사교육


[공동성명]   
 근조! 대한민국 역사교육



  실로 비감한 심정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나라의 상식과 법도가 이렇게 땅에 떨어질 수 있는가? 어찌 이러고도 역사교육을 정상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마치 군사 작전을 전개하듯 교육과학기술부는 두 달의 짧은 기간 동안에 역사교과서 문제를 처리하려고 한다. 수년간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교과서를 만들었고, 정부가 인정하고 학교현장에서 사용한 지 수년이 흐른 지금, 그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한 노력에 정부가 온 힘을 쏟고 있다.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를 수용하여 교과서 수정지시를 주도하고, 나아가 시, 도 교육청에서 벌이는 교과서 채택 변경 연수에 힘을 실어주며 적극 방조하는 양면작전을 펼치고 있다. 급기야는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줄 알면서도 출판사에 외압을 넣어 수정지시를 관철시키려 함으로써 집필자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와 보편적 상식조차 무너뜨렸다.


  역사학계는 좌편향되었다는 전제 아래 일체의 대화도 갖지 않고, 그저 눈앞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학교 현장이 어떤 혼란에 빠지든 상관하지 않고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70년대식 국정교과서 발상으로 21세기 역사교육을 함부로 재단하고, 세세한 구절까지 서술 변경을 요구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더욱 기막힌 일은 그 수정내용이란 것이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것들이라는 점이다. 역사교육의 비전문가인 대통령, 정치인, 관료들이 수정에 개입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것이 정녕 검정 교과서 제도 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더욱이 교육청을 통해 채택 변경을 강제하면서 자신들이 정한 법규와 절차조차 무시한 채 밀어붙임으로써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고서도 민주시민을 양성하라며 일선 교사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이 같은 비민주적 행태가 초래할 우리 사회의 민주의식의 후퇴는 어찌할 것인가? 그 역사적 평가를 어찌 감당하려 하는가? 일찍이 세계 교과서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폭거가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에서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이 모든 정치적 억압의 배후에 대통령의 편향적인 발언이 자리 잡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망연자실케 한다. 근조 역, 사, 교, 육!!! 이것이 우리의 외마디 비명이다.

  그러나 상대가 편법과 비상식으로 문제를 왜곡시킨다고 해서 침묵할 수는 없는 일, 우리 역사학계와 상식을 가진 시민들은 교과부의 이러한 행태를 엄중히 문책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논리로 역사교과서를 왜곡시킨 나쁜 선례를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할 것이며, 갖은 탈법과 편법에 대한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교과서 수정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교육계 곳곳에 만연한 독재적 행태를 지적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첫째, 실체 없는 수정 논란을 증폭시키고, 교과서 집필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검정 교과서 제도의 근간을 부정한 교과부를 고발한다. 자기 손으로 검정하고 문제없다고 옹호해온 교과서를 정권이 바뀌었다고 자기 손으로 뜯어고치는 자기모순을 지적한다. 역사학계의 진심어린 호소를 철저히 외면한 채, 특정 집단과 정치권만을 의식한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꾸짖고자 한다. 어이없게도 출판사를 내세워 교과서 수정지시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무책임하고도 저열한 행태를 지적한다.  


  둘째, 검정 교과서에 대한 월권적 행위, 학교의 자율성과 학교 운영위원회의 고유 권한을 무시한 일부 시, 도 교육청의 권력남용을 고발한다. 일부 교육감들은 교과부 차원의 수정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교과서 교체를 종용하는 학교장, 학부모 연수를 실시하고, 변경 여부를 보고하게 함으로써 교과서 수정논의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또 학교의 자율적 판단과 학교 운영위원회의 결정내용을 뒤집는 교과서 채택 변경을 강제하여 학교현장을 정치 갈등의 터전으로 전락시켰다. 아울러 우리는 정치적 외풍을 막기 위해 뽑은 민선 교육감이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학교로 끌어들여 학교 공동체를 파괴한 죄를 묻는다.


  셋째, 학교 운영위원회와 관련한 최소한의 절차와 의견수렴도 무시한 채 불법적으로 교과서 채택을 변경한 일부 학교장을 고발한다. 그들은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교육청 연수를 핑계로 전공 교사의 신중한 판단을 무시하였으며, 학교 운영위원회를 비민주적으로 이끌면서 교과서 채택 변경의 첨병 역할을 하였다. 심지어 전공 교사가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채점표조차 없이 채택 변경을 감행하는 불법을 자행하여 해당 교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더 나아가 학교장의 교육자로서의 양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 내실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학교 자치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부당 사례들이 취합되는 대로 이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여 그 과오를 물을 것이다.


  넷째, 정권의 외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자와의 협의 없이 독자적인 수정에 나서겠다는 출판사들의 비양심적 행태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출판사측은 교과서 제작이라는 일이 단순한 자본의 논리나 정권의 논리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저자들의 저작권을 무시한 행태는 앞으로 교과서 발행과정의 왜곡을 초래할 것이고, 출판관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이라도 권력의 외압에 굴복한 사실을 반성하고 교육현장의 민주주주의와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길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근거 없는 색깔론으로 눈을 가린 권력, 영혼 없는 관료, 그리고 이익에 눈이 먼 출판사의 야합은, 지금 이 순간에도 최소한의 다양성도 없는 검정 교과서와 무너진 법도와 짓밟힌 상식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우리 앞에는 낡은 독재의 논리가 펼쳐져 있으며, 무능과 편법으로 얼룩진 비교육적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허위로 규정한다. 죽은 역사교육이라고 엄숙히 주장한다. 그리하여 근조 역사교육의 기치를 치켜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주검 위에 새로운 역사교육의 이정표를 세울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에 바탕하여 창의적 사고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힘차게 열어갈 건강한 역사교육을 펼칠 것이다. 갈등과 파행으로 무너진 학교 현장의 상흔을 보듬고, 정직과 신뢰로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나아가 온갖 관료적, 비민주적, 비상식적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해 우리 사회의 양식 있는 시민들과 함께 맞서 싸울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대통령과 교과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지적한다. 또한 그와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도 그들에게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1.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출판사에 대한 부당한 외압을 즉각 중단하라!

1. 교육과학기술부는 집필자의 자율을 무시하는 수정지시를 철회하라!

1. 교육청은 모든 불법행위를 중단하라!

1. 교육과학기술부는 정치적 중립성을 엄격히 준수하라!



2008. 12. 3

역사교육연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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