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7-05-08   883

[3기 시민운동 현장체험②] “한미FTA, 나프타보다 ‘더 무서운 놈’이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한미FTA 얽힌 실타래 풀기’ 강연 후기

지난 첫 모임에 10분 정도 늦게 간 터라, 일부러 10분 일찍 참여연대 사무실에 도착했다. 2층 강당에 도착하니, 그래도 내가 네댓 번째로 온 듯했다. 휴~.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한미FTA, 얽힌 실타래 풀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은 매우 재미있고, 동시에 예리했다. 정부의 거짓말을 하나하나 파헤칠 때마다, 나는 왜 정부에서 “정태인과는 TV 토론회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 강연 중인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복잡한 협상 내용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주었으므로, 나는 강연 시작부터 몰두할 수 있었다. 서두에서 정태인 박사는, 정부가 부문별 협상 중 ‘가장 잘 했다’고 자화자찬했던 자동차 협상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설명했다. 미국 시장의 자동차 관세 인하를 위해 우리가 국내법과 제도를 얼마나 많이 바꿔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동차 협상의 결과로 미국 시장의 관세를 낮추는 대신, 우리는 배기량 기준 세제를 개편하고 환경기준을 완화해 주었다. 그 결과 대형차 판매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정태인 박사는 지적했다. 이러한 협상이 막대한 환경 피해를 낳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것까지 미국 협상단이 촉구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한국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는 부분에 가서는 말 그대로 정말 어이가 없었다.

섬유 협상에서는 얀포워드(원사기준 원산지 판정방식) 적용 부분을 줄이기 위해 LMO(유전자 변형 생물체) 검역 기준을 완화해 줬단다. 정부가 우리 국민의 건강을 미국의 다국적 기업의 이익 앞에 내던져버린 셈이다. 하긴, 광우병 쇠고기도 막무가내로 수입하는 판에 아직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미국이 주장하는 LMO 쯤이야 한국정부 입장에서 대수겠는가.

어디 이뿐인가? 의약품 분야에서 사실상 특허기간을 연장해 주고, 약가적정화방안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앞으로 약값은 오를 것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가족들과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보건의료단체들 추산, 우리나라는 앞으로 매년 1~2조원의 약값을 추가 부담해야 된단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미국이 FTA를 하려는 것은 그저 상대국의 관세를 낮추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미의회조사국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미국은 한미FTA를 통해 한국의 ‘비관세 장벽을 없애’려는 목표를 갖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것은 한국의 법과 제도를 미국 거대기업들의 이익에 맞게 바꿈으로써 실현된다. 또한 미국은 기존의 상품 무역보다는 지적재산권・서비스・투자 등 이른바 ‘신이슈’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분야를 개방하게 함으로써 기존의 WTO 체제보다 훨씬 강화된 양자간 FTA 협상을 맺고, 궁극적으로는 WTO 체제를 보다 시장경제 원리가 관철되는 방향으로 추동하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라고 한다. 바로 한미FTA를 지렛대로 삼아 각국이 경쟁적 자유화에 뛰어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한미FTA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더 무서운 놈’인 것 같다. 네거티브 방식의 서비스 개방(개방하지 않는 것을 표시하고 그 외의 것은 모두 개방), 개방 정도를 역진할 수 없도록 묶어버려 결국 전부 다 개방하게 만드는 래칫 원리, 다른 나라와의 FTA에서 더 좋은 조건의 개방을 할 경우 한미FTA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미래의 MFN(최혜국 대우)까지. 여기에 한미FTA에 적극 찬성한다는 내 친구마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우려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까지 더하면, 이보다 끔찍한 FTA는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정태인 전 비서관의 설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비스 분야에서의 개방이 생각보다 미진했다”며 실망을 표시했다고 한다. 정부는 자발적 개방과 자유화로 이 부분을 해결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스스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각종의 공공부문을 시장원리와 기업에 맡길 것이라는 뜻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사보험이 대체한 사회,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이 폭등해 서민들의 등골이 휘어지는 사회. 그런 사회가 한미FTA가 만들 우리 사회의 미래인 듯했다. 갑자기 할리우드 영화 ‘존 큐’가 그린 미국의 처참한 의료체계가 그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대체 이런 FTA를 왜 추진하려고 할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그것은 역시 경제적 이익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극소수의 대기업들에게 돌아갈 이익은 막대할 것이다. 공기업이 민영화된다면 그것을 인수할 수 있는 것은 외국자본이거나 대기업 정도가 될 것이다. ‘제도 선진화’의 혜택은 이런 식으로 미국의 기업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기업들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암울한 미래에 맞서 우리는 이길 수 있을까? 정태인 전 비서관은 ‘승산이 있다’고 한다. “아직 체결까지는 시간이 있고, 체결 후 국회 비준도 남아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고,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싸운다면 한미FTA를 막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듯, 1987년에 민주화를 일궈낸 저력을 다시 발휘한다면 2007년에 한미FTA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강연에 대한 마지막 소감은, 정태인 전 비서관은 반드시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강연을 해야 겠다는 것이다. 작년에 그는 한미FTA에 대해 총 200여 회 강연을 했다는데, 그중 대학은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 횟수만큼 올해에는 대학에서 강연을 한다면 대학생들의 한미FTA 여론이 크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미FTA를 막아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참가자 김영익참여연대는 지난 4월 30일부터 오는 5월 28일까지 약 한 달간 ‘참여연대와 함께하는 시민운동 현장체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한미FTA 괴물인가 선물인가’를 주제로 총 11회에 걸쳐 강연과 토론, 직접행동을 체험하게 됩니다. 지난 5월 4일 그 두 번째 순서로 정태인 전 청와대비서관이 ‘한미FTA, 얽힌 실타래 풀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이 글은 현장체험에 참가한 김영익 씨가 이 날 프로그램을 마치고 느낀 점을 정리한 후기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후기는 인터넷참여연대를 통해 연재 중입니다.

김영익 (현장체험 참가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