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1998-02-24   769

대학의 기능회복과 학생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시사회종교단체의 견해

새 정부에 바란다

지난 세기 동안 대학과 학생운동은 우리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왔다.

당장 한 끼를 굶더라도 자녀를 대학에 보낸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식민지 경험과 분단의 질곡을 이기고 오늘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사회적 자양분이 되었다. 독재정권의 암울한 시절, 사회전체가 침묵의 늪에 빠져있을 때, 대학생들은 통제와 검열, 투옥과 고문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분단극복을 위해 온몸으로 진실을 외쳐 우리 모두를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대학과 대학생운동은 불행하게도 이 값진 희생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불구화되어 왔다.

대학은 권위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강요해온 흑백논리와 효율만능의 가치관에 희생당한 채 오랫동안 학문의 자유로운 탐구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없었다. 최근에는 과거 독재 정권의 규제와 통제 대신 ‘경쟁력주의, 학벌주의’라는 또 다른 흑백논리가 대학을 천편일률적인 직업훈련소로 전락시키고 있다.

대학교육의 질은 곧 그 사회 미래의 질이며, 대학문화의 질은 곧 그 사회의 정신적 질이다. 최근 우리사회가 겪는 위기가 단지 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라 가치관과 사회적 룰 전반의 위기임을 인식한다면, 이제 대학은 효율만능을 역설하기에 앞서 진리와 다원적 가치를 옹호하며, 무비판적인 경쟁으로 대학생들을 내몰기에 앞서 건전한 비판과 참여민주주의 역량을 닦도록 훈련하고 지도하는 본래의 사명을 되찾아야 한다.

한편, 학생운동은 오랫동안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비판적-자기희생적 역할로 인해 다른 나라에 유래가 없을 만큼 강력한 학생운동조직들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권력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었고 그 때마다 누구보다도 커다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사실 학생운동주체들은 때론 과격분자로 매도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문제제기를 하는 선각자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오랜 공권력과의 대결이 야기한 긴장감으로 인해 현실의 빠른 변화와 복잡해지는 사회적 문제들에 충분한 관심을 돌릴 여력을 가지기 힘들었다. 이에 따라 최근 학생운동진영은 탈냉전과 권위주의의 해체과정이 야기하는 새로운 사회적 모순들, 그리고 이미 지구화-지역화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에 대해 새로운 운동비전을 마련하는데 있어 역부족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는 분명 학생운동이 당한 희생의 또다른 측면이다. 그러나 역부족을 느끼는 것이 어디 학생운동만의 일인가? 사실 나라를 오늘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방치한 우리 모두의 한계임을 안타깝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의 대학생들이 그들 특유의 낙천적이고 진취적인 시각으로 내외의 변화를 살필 여유를 채 갖기도 전에 이적단체니, 시대착오적인 좌경용공세력이니 하는 차가운 비난의 시선에 갖혀 진압과 일소의 대상으로 내몰리는 최근의 현실에 심한 자책감을 느낀다. 그들의 오류가 이제까지 우리사회를 이끌어온 권력체제가 범해왔던 허다한 오류와 무책임보다 더 크지 않을진대, 그들을 단죄하여 몰아세우기에 앞서 대화와 이해로 포용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마땅하다. 최근 학생운동은 정부의 강경일변도의 공권력 행사와 갈수록 원자화 되어가는 대학의 현실 사이에서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다. 각종 사회참여 활동과 자치활동은 문민시대라는 이름에 부끄럽게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으며 궁지에 몰린 학생들은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그 결과 진취적 실험속에서 창조적 비전을 가꾸어 갈 공간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대학이 취직준비에 매몰되고 현실에 비판없이 순응하는 젊은이들의 대량생산체제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늘의 대학현실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마땅하다.

이같은 공감 위에서 대학과 정부, 그리고 사회단체는 오늘의 대학현실과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해 깊이 논의하는 대화의 장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대학,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학생들이 새로운 비젼과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갈 기회와 실험의 공간을 제공하는데 더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는 비단 학생운동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 이전에 우리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투자에 다름 아니다. 대학과 학생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각 주체들에게 다음과 같은 노력이 기대된다.

1.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신정부는 문민우위와 참여민주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고 이를 대학사회와 학생운동에 적용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실천에 옮겨야 한다. 우선 정부는 대학을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권위주의적 태도로부터 벗어나 대학에 대한 직접적 개입과 공권력 행사를 줄이고 대학당국과 대학생, 그리고 지역사회와 사회단체의 자율적 역할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또한 청년 및 대학생들이 사회적 발언권을 행사할 제도적 여건과 사회적 공간을 마련, 보장해야 한다. 선거연령 18세 인하는 그 한 방안이며 평화적 시위의 보장 역시 필수적이다. 특히 정부는 대학생 자원활동이나 대학생 참여 사회단체 활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권장하므로써 대학생의 사회참여와 봉사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1. 대학은 진리추구의 자유와 다원성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둔 상상력과 창의력의 훈련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학내의 각 주체에게 보다 자유로운 연구의 기회와 자치활동의 공간을 보장되어야 한다. 대학운영이 민주화되어 교수, 학생, 교직원의 참여를 보장하며 각 주체들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특히 대학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산학협동 뿐만 아니라 사회제부문의 현장주체들과 함께하는 사회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함으로써 고유한 영역에서 창조적인 사회기여의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학의 현장성 강화에 기초하여 대학당국은 사회참여형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그 과정을 진행하는데 학내 자치활동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1. 시민사회단체들은 방관자적 태도에서 벗어나 미래 시민사회의 기반이자 현재 시민사회의 엔진 역할을 하는 대학과의 책임있는 동반자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사회단체는 우선 자신의 사회교육적 역할을 강화하고 청년학생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연구계발함으로써 대학인에게 사회발전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또한 대학과의 공동 프로그램을 계발하며 인턴활동 및 자원활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학생 참여매뉴얼을 확충하고 이를 이끌어갈 청년학생 전문 지도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아울러 학생 운동에 대한 지원연대를 보다 적극화하고, 정기적인 정책교류와 정보를 제공하므로써 대학생 자치활동이 사회 각부분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미래 시민사회 지도력 훈련과 연결되도록 도와야 한다.

1. 학생운동에 대해 우리는 학생운동을 통해 우리사회의 내일을 책임질 각분야의 진취적 지도력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 이는 폭넓은 사회참여의 경험과 열린 사고방식을 체화한 전문적 시민지도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학생운동 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창조적 비전에 의해 뒷받침되는 선진적이고 다채로운 실천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학생운동은 전통적 관심사인 노동, 통일등의 주제영역에서 구체성과 현실성을 확보함과 아울러 새로운 사회적 관심사들에 대해 폭넓은 대응력과 대응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우리는 학생운동 주체들이 현장과의 구체적 연결, 특히 지역운동 및 시민사회운동의 제분야 주체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는데 더 큰 관심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우리는 학생운동이 단선적인 대립-대결구도의 강박에서 벗어나 사회와 대학, 정부에 대해 비판과 참여의 균형적 태도를 견지하는 가운데 구체적 해결의 과제를 중심으로 건설적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1. 대학, 정부, 사회단체, 학생운동의 새로운 관계맺기에 대한 이상의 제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새로운 계기의 하나로서 새정부가 한총련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을 거두어 들이고 과거 학생운동 관련 투옥된 학생들을 전원 석방하고 수배를 해제하는 것을 통해 건설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정부가 한총련이라는 학생대표체 전체를 무리하게 이적단체로 규정함에 따라 학생운동과 관련된 재판에서는 학생회 가입탈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한총련 가입탈퇴 여부에 따라 형량이 정해지는 중세종교재판식 판결이 횡행하고 있다. 설령 학생운동의 주체들에게 적지 않은 오류가 있었다 할지라도 학생운동이 이제까지 우리사회에 기여해 몫이나 장차 새로운 관계속에서 변화될 학생운동이 우리사회에 기여할 적지 않은 몫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복권과의 형평성을 생각할 때도 꼭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용단을 기대한다.

1998년 2월 2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청년정보문화센터,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환경운동연합, 흥사단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