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2-06-10   1067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제 13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축제의 열기와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도 어김없이 한 자리에 모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흰빛 저고리와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그들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어머니들이었다. 온몸으로 울어온 옹근 시간들이 그들을 오히려 강하게 만든 것일까. 비록 부축을 받으며 공원으로 들어서고 있었지만 어머니들이 내딛는 걸음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청을 올리며 내딛던 자식들의 걸음의 연속이었다. 6월 8일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열리기 한 시간 전 서대문 독립공원은 그 걸음으로 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부모님들이 추모제가 돌아올 즈음이면 더욱 쓸쓸해하고 외로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식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우리와 함께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들은 이제 검은색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1989년 1회 추모제부터 참석해오고 있는 고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 호남유가족 협의회 회장의 말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고. ‘되살아난 불’과 함께 싸우기 위해 대학생들도 공원을 찾고 있었다. ‘통일연대’ 깃발아래 백 여명의 학생들이 영정 앞에 자리를 잡았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가 주관한 제 13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선언과 함께 오종렬 범국민추모제준비위원회 상임대표는 ‘영령이시여! 이 전사들을 지켜보소서’라는 대회사를 낭독했다.

이어 백순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민주열사들과 희생자들은 공동체의 선을 추구하는 정신을 우리에게 남겼다. 당시에는 의제화가 어려웠던 반미감정이 사회쟁점화하고 있다.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며 “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우리민족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한다”고 말했다.

오충일 6월항쟁계승반전평화대회위원회 공동대표는 “꼬박 일주일 전 이곳에서 반전평화 이주노동자 인권보장촉구 집회를 가졌는데 기자들이 취재는 나왔지만 정작 보도는 한군데에서도 되지 않았다. 언론이 정신 나갔다. 정신나간 나라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6월항쟁의 목소리는 제도교육에서 나온 목소리가 아니다. 민족민주열사들의 자발적인 목소리였다. 그들의 정신과 목소리를 가슴에 담은 사람들만이 역사의 축을 이뤄갈 것”이라며 “이젠 잊혀져갈지도 모를 이름과 얼굴을 우리 가슴속에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조순덕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장은 이날 추모사를 읽어 내려가는 도중 눈물을 흘려 참석한 어머니들 역시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추모사를 통해 “거대한 바위를 향해 던진 계란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왔지만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된다”며 “열사들이 목숨을 바쳐 이 땅의 정의를 지켜왔듯이 우리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영령들을 달랬다.

▲ 한상범 위원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의문사진사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 역시 이날 영령들에게 말을 건넸다. “친일, 친미에 이어 독재세력이 된 반민주 반민족 기득권 세력들이 매카시즘의 칼을 휘두르며 여전히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민족통일과 민주화의 숙제를 가지고 우리도 당신들의 따를 것이다. 우리의 의지를 지켜보며 격려해달라”

추모사가 끝난 후에는 민주공원 후보지 확정발표가 있었다. 이해동 민주묘역추진위 위원장은 정부의 ‘서울 수유동 북한산 국립공원’ 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민주열사추모공원의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현재 정부의 추진과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지자체와 사회단체의 합의와 설득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선 가운데 추모연대의 남상헌 의장이 낭독한 이날 추모제의 결의문을 통해서는 △신자유주의 반대, 주 5일 근무제 쟁취, 정리해고 저지, 민중생존권 사수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석방, 범민련,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6·15남북 공동선언 이행, 미국반대, 전쟁반대 △수구정당, 보수정당 반대 등의 주장을 한 목소리에 담았다.

“열사들의 투쟁 속에서 노동자와 민중들의 정치적 권리가 확장되었지만, 다시 몰아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앞에서 노동자와 민중들의 고통은 더욱더 커지고 있습니다. 아직 열사들의 온몸을 던져 투쟁하면서 제기하였던 자주, 민주주의, 통일, 민중생존권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현실의 문제요, 우리들이 당면한 2002년 오늘의 투쟁일 것입니다. 오늘 다시 우리는 수많은 열사들의 간절한 호소를 되새깁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결의문 낭독 후 불교인권위 위원장 진관스님이 헌화시 “우리를 깨워주소서”를 낭송하는 가운데 이날 추모제의 참석자들의 헌화행렬이 이어졌다.

해가 기울 무렵 추모문화제가 시작, 노래패들의 공연과 함께 98년 11월부터 99년 12월까지 400여일 동안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여온 유가협의 투쟁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제정을 관철시키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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