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1-11-05   1278

즐거운 만남! 알뜰한 당신!

시민의 높은 호응으로 정기적 월례 행사로 자리 잡은 알뜰시장

“제가 지금 가진 돈이 4만원 밖에 없어요.”

40대의 한 신사가 지갑을 내보이고 있다.

“더구나 말일이라 카드도 안돼네요.”

“죄송합니다. 이 책은 5만원도 너무 낮게 책정된 가격입니다.”

“알아요. 그럼 돈을 가져올테니 팔지 마세요.”

“다른 분이 사시겠다면 안 팔 수가 없어요.”

“우선 4만원을 드릴께요.”

‘THE WORLD GREAT CLASSICS’이라는 영어 문학전집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잠시 후 그 신사는 돈을 마련해 와서 책을 찾아가며 환희에 찬 표정으로 날듯이 사라진다. 이판도 선생이 기증한 이 전집은 구하기 쉽지 않은 소장본이다. 그 신사는 마치 보물을 찾은 듯 행복해 했다.

“즐거운 만남! 알뜰한 당신!”

참여연대 알뜰시장은 이 공식 카피처럼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품의 즐겁고 행복한 만남이 있다. 알뜰시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회원들의 자발적이고 신나는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다. 회원들이 물품을 깨끗이 손질하여 직접 가져오고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이 분류,정리하고 가격을 책정하여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정기적으로 연다. 시월의 마지막 날 열린 이 행사는 벌써 세번째다.

동네에서도 유명 장터로 자리잡은 “참여연대 알뜰시장”

처음에 170여만원, 그 다음은 250여만원이고 이번에도 25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남아 있는 정수기가 팔린다면 수십만원이 추가될 듯. 시민들의 호응이 폭발적이라 지역 내의 유명한 장터로 자리잡았다.

여기서는 ‘닥스’와 같은 고급 넥타이가 2천원에 팔린다. 국내 톱 디자이너의 한 사람인 ‘설윤형’의 옷이 몇만원에 거래된다. 분당에 사는 이명원씨는 매번 진짜 보석들을 기증하신다.

알뜰시장 자원활동가 이혜옥 선생님은 옛날 7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 테이프를 큰 가방으로 가득 가져오셨다. 내놓으면서도 ‘이런 걸 누가 사갈까요?’하셨지만 너무 너무 잘 나가는 게 아닌가. 하나은행에서 근무하시는 어떤 분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좋아하는 노래들이라면서 많이 사갔다. 판매하시는 한인종 선생님과 기증하신 이혜옥 선생님은 신기한 듯 감탄하신다.

이혜옥 선생님은 70년대에 유행했던 LP판을 함께 기증하셨지만 가격 책정의 어려움으로 LP판 모음전을 따로 기획하기로 했다.

“우리 할망구가 너무 좋아할거야.”

천원 짜리 쉐타 세 개를 사신 할아버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하시는 말이다. 주차장 아저씨는 수줍어서 근처만 맴도는데 친구 분이 억지로 골라 입힌 양복이 너무 잘 어울린다.

알뜰시장에는 중고 물품만 있는게 아닙니다

행사를 정기적으로 하다보니 벌써 단골도 생겼다. 세 번의 알뜰시장에 모두 왔다는 분은 친척과 친구에게 줄거라며 행복한 얼굴로 물품을 고르신다.

참여연대 알뜰시장은 중고 물품만 나오는 건 아니다. 270권의 신간을 주신 분도 있고 국제양말 한 박스를 택배로 보내주신 김석순 선생님 같은 분도 계신다. 수원에서 유통업을 하시는 정의엽 선생님은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새 물건을 매번 퍼 날라 오신다. 그러다 사모님한테 걸리면 큰일 나지나 않을까? 이런 새 물건들은 점심시간이 지나자 동나버렸다.

오후 세시가 넘으면 파장 분위기다. 미모에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이혜옥 선생님과 황경순 선생님은 갑자기 모델로 변신하셨다. 주위는 금세 따뜻한 웃음이 가득 퍼지고 안팔리던 멋쟁이 옷 세 벌을 멋진 여자 분이 사가신다. 노숙자 한 분이 공짜 코너의 물건을 한 보따리 챙겨 가신다.

알뜰시장에서 물건을 사가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가는 분들 중에서 물품을 기증하시겠다는 분들도 있다. 출근 길의 한 시민은 깨끗하게 드라이한 반코트를 들고 와서 기증해 주셨다. 안국동의 대우 자동차에 근무하시는 한 시민은 기증 의사를 밝히고 구두를 가져 오셨다. 그 구두는 전시되자 마자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이번 알뜰시장서 빠질 수 없는 사연을 가진 것이 ‘정수기’다. 게시판에 실린 증언을 들어보자.

“이옥수 선생님의 소개로 잠실의 김도경 선생님이 정수기를 기증해주셨습니다. 전 정수기라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 집을 방문했죠. 그런데 그게 보통 정수기가 아니라 냉장고만한 대형 정수기더라구요. 얼마나 무거운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차에 싣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는 않고… 드디어 사정사정해서 한 분이 정수기를 같이 들었죠. 근데 스타렉스에는 이게 잘 안들어가는거에요. 한 10분 해보시더니 저에게 화를 내시고는 휑하니 가버리더군요. 할 수 없이 사람을 돈 주고 불렀습니다.

제가 정수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생담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랍니다. 이 정수기를 팔고자 합니다. 사실 때는 280만원을 주셨다는군요. 상태도 깨끗하고 하자도 없습니다.”

이 정수기는 자신의 주인이 될 ‘알뜰한 당신’을 찾고 있다.

황홀한 기쁨으로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

판매 코너를 담당한 열명의 자원활동가 선생님들 중 유일하게 청일점인 한 분이 있다. 상근자들의 근무태도를 매일 매일 체크하시고 참여연대의 모든 행사를 감독하시는 최용수 선생님이 그 분이시다. 참여연대의 대표적 우익이지만 그 분이 계신 자리는 언제나 넉넉하다. 좌파의 거두 안00선생과는 틈만 나면 싸우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친해 탈이다.

황경순 선생님은 물품정리하시느라 힘들었을텐데 식혜를 준비해 돌리신다. 알뜰시장의 수익금으로 음료수를 사먹는 것도 아까운가 보다. 훈훈한 정이 감도는 식혜는 정말 맛 있다.

사실 가장 많은 물품을 모아오고 기증하는 분들이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이다. 기증된 물품을 정리 분류 가격 책정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먼지 속에 작업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마스크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혜옥 선생님, 이해숙 선생님, 이연이 선생님, 설호정 선생님, 김자현 선생님, 문수복 선생님, 최선희 선생님, 황경순 선생님, 오유진 선생님, 정순진 선생님, 이은주 선생님, 심상연 선생님, 그리고 정낙섭 선생님, 최용수 선생님

남에게 무언가를 줄 때의 기쁨이야말로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 순간이다. 스스로 정화되고 아름다워지는 기쁨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봉사와 헌신은 마약보다 황홀한 기쁨을 준다. 그 황홀한 기쁨으로 사는 자를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런 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세상은 베푸는 기쁨을 아는 자에 의해 따스한 희망의 빛이 꺼지지 않는 법이다.

다음 알뜰시장은 11월 28일 10:30분에 열립니다.

물품 기증은 계속 받습니다. 기증하실 분은 02-723-4251(담당 : 이강백)으로 전화해 주십시오.

이강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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