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1-02-25   1161

쟁취된 제도권에 참여하느냐, 밖에서 압력을 가할 것이냐

김중배 대표, MBC 사장 수락 막전막후

김중배(67세) 참여연대 공동대표이자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 상임대표는 지난 24일 오후 4시경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신임사장 취임요구를 고심 끝에 수락했다.

지난 15일 문화방송 노성대 사장의 급작스런 사직 이후, 방문진 이사회는 향후 문화방송을 새롭게 이끌어갈 신임사장으로 어떤 인물을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 숙의해 왔다고 밝혔다. 지은희 방문진 이사(여성연합 공동대표)는 “차제에 문화방송이 공영성과 공정성, 투명성을 담보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사장으로 어떤 인물을 선정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고민”했고, “이번 신임사장의 경우는 사내에 국한하지 말고 외부영입도 고려하자”는 방문진 이사회 내부의 공통된 의견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자리잡는 큰 역할 할 것

특히 사장추천권은 방문진 이사들에게 있는 권한으로 지난 22일까지 이사 1인당 2명씩 인사 추천을 받았고, 23일 추천된 각각의 후보에 대해 추천사유와 토론을 가졌다고 한다. 지 이사에 따르면 23일 약 2시간 동안 벌어진 자유로운 토론결과 이번 문화방송 신임사장의 제1조건은 공영성을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고, 그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하기 위해 무기명 비밀투표를 시행한 후, 투표결과 총 9명중 6명의 찬성표를 득한 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신임사장으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 투표결과에 대해 지 이사는 “이번 방문진 이사회의 결정은 개개인의 신념에 따라 도출된 결과”라고 전제하고, “김중배 대표는 무엇보다 문화방송을 공영방송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 큰 역할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사 인사관행 깬 결정

현재 이번 방문진의 결정은 방송가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기록되고 있으며, 특히 그동안 정권과의 유착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던 ‘방송사의 인사관행’을 깨고, 방문진 이사들의 순수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관철시킨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언론관계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의 ‘인사관행’이란 정부에서 사전에 낙점을 하고 그것이 은연중에 방문진 이사들에게 전달됨으로써 정부의 의지가 관철되어 왔음을 말한다. 이번에 정부가 의중에 두고 있던 인물은 딴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4일 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현업언론인을 비롯 시민사회단체, 언론노조 간부 등은 김중배 대표의 문화방송 사장직 수락을 두고 ‘한밤의 열띤 공방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밤 프레스센터 뒷편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가진 모임에서 대체로 현업언론인들은 “1천만 시청자들이 매일 보는 제도적 공간에 참여해 사회를 개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왜 이를 포기해야 하느냐”고 주장하며 사장 취임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취임 이후 문화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공정보도, 공영방송의 기틀을 잡는다면 이것이 훨씬 더 혁명적인 개혁운동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참여연대, 김 대표 사장취임 강력 반대

반면, 김 대표의 문화방송 사장 내정사실을 접한 참여연대는 긴급 국·실장 회의를 갖고, 김 대표의 사장 취임은 “아직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언론개혁과 시민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갑자기 제도권으로 진출한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고 보고, 이에 대해 “적극 반대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이날 밤 박원순 사무처장을 비롯 김동춘 정책위원장, 조희연 집행위원장은 이와 같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급거 모임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날 밤 모임에 참석한 참여연대 임원들은 김 대표의 문화방송 취임에 대해 강력한 반대입장을 천명했으며, 김 대표 스스로도 ‘취임 불가’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였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실제 박원순 사무처장은 24일 오전 8시경 김 대표와의 전화통화에서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날 오후 일산 자택으로 찾아온 방문진 이사진들과 언론계 관계자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이 같이 결정했다고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보도했다.

손해 보는 게임 아닌가

이에 대해 조희연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현실적으로 ‘쟁취된 제도권’ 공간에 들어가서 개혁을 할 것이냐, 혹은 제도권 밖에서 계속적인 압력과 감시운동을 벌일 것이냐 하는 쟁점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아직까지는 제도권에 직접 들어가는 것보다 제도권 밖에서 시민운동의 힘을 축적해 감시하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 아니냐”며 아쉬움을 전달했다.

이뿐 아니라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김 대표께서는 앞으로 문화방송 사장으로서 우리사회 개혁을 위해 많은 역할을 담당하시겠지만 시민사회운동 내부로 본다면 사실상 손해보는 게임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고 전달한 뒤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가장 상징적인 ‘개혁의 지도자’가, 비록 정치권이나 행정관료가 아니라 언론기관의 장이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크게 보면 제도권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러한 권위를 가진 카드 하나를 잃는 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토로했다.

흔들림 없는 언론개혁을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언개연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해 많은 토론을 벌였고, 사실상 사무처에서는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일단 본인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제도권에서도 흔들림 없는 언론개혁을 펼쳐야 하고, 문화방송 직원들도 이런 개혁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또한 언개연은 김 대표의 문화방송 사장 취임과 관계없이 중단 없는 언론개혁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밤의 격론’이 벌어졌던 2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김 대표의 문화방송 사장 취임에 대해 토론을 벌인 현업언론인들과 시민단체 임원들 사이에는 “들어가서 개혁하자는 의견”과 “아직까지는 밖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세력의 소임 다해야

실제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언론인은 “김 대표는 개혁을 위해 문화방송에 들어가는 것이고, 들어가서 대대적인 대수술을 통해 반드시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한 뒤, “만일 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3개월 내에 반대운동을 벌이겠다”며 김 대표에게 개혁세력의 소임을 다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최문순 언론노조 위원장은 “한꺼번에 바뀔 수 없는 것을 원클릭으로 바꾸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며 “김 대표의 취임으로 문화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세우고, 시청률 경쟁에서도 또 재정적으로도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야당과 일부언론의 흠집내기

그러나 이번 방문진의 결정과 김 대표의 문화방송 사장취임에 대해 『동아일보』(24일치 A4면)는 ‘시민단체 선봉 비방송인 정부와의 ‘교감’ 주목’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김 대표는 언론개혁을 주장해온 시민단체의 선봉장인 데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과 관련해 시민단체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어 김 대표가 사장에 취임한 이후 정부와 어떤 교감을 이뤄나갈 지 주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23일 한나라당 언론장악저지특별위원회(위원장 박관용)는 논평을 통해 “DJ정권 들어와 언론관련 기관 및 단체의 주요핵심에 호남출신 인사가 대거 포진해 있음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며 특히 “현정권이 공영언론을 장악하고 나머지 민영언론마저 장악하려 일련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방문진의 지 이사는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자기들이 아는 관행을 가지고 문제를 보는 상당히 몰상식한 시각”이라고 전제한 뒤 “김 대표의 사장 내정에 대해 호남출신 운운하는 것은 양심에 따라 판단한 방문진 이사들의 행동을 인정하지 못하는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고, 이는 흠집내기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또한 『동아일보』가 제기하는 ‘정부와의 교감’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전제한 뒤, “청와대는커녕 문화방송을 출입하는 정보담당공무원도 신문보도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돼 굉장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조직장악과 경영능력 발휘할까

사실 김 대표의 ‘사장 내정설’이 나돌기 전 문화방송 내부와 정가에는 사내 출신인 고진 목포문화방송 사장의 취임설이 거의 유력시되었다. 문화방송의 한 프로듀서는 “사내 기반이 전혀 없는 데다 ‘신문 출신’인 김 대표의 사장 취임에 대해 사내 일각에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이지만 “김홍일 의원과 동창이며 DJ정권과 밀착돼 현정부 이후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고 사장의 취임에 비한다면 100배 이상 환영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DJ정권에 대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김 대표가 뉴스보도의 공영성과 정치적 독립은 이룰 수 있어도 그 외에 거대한 방송국의 조직장악과 경영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중배 대표는 26일 문화방송 주주총회 이후 사장에 취임될 전망이다.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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