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4-06-29   817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김선일 씨를 살리지 못한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테러방지법 입법 시도 중단하라!

1. 열린우리당이 테러방지법 입법을 재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28일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김선일 씨 피살 사건과 관련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것이 상임중앙위원회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2. 우리, 인권사회단체들은 먼저 묻고 싶다. 진정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김선일 씨를 살리지 못한 것인가? 외교부 직원들이 김선일 씨의 피랍 확인 전화를 묵살한 이유가, 20일 넘게 억류되어 있는 자국민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이라크에 파견되어 있는 국정원 직원들이 김선일 씨의 피랍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수집할 수 없었던 이유가, ‘혈맹’ 관계라는 미국과의 정보 협력이 원활치 않았던 이유가, 무장단체의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가 정말 테러방지법이 없어서란 말인가.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궁지에 몰린 정부가 핑계거리를 찾는 것이다.

3. 인권사회단체들이 2001년 말 테러방지법의 입법이 처음 추진될 당시부터 누차 이야기해왔듯, 현행법과 제도는 테러행위에 관한 정보의 수집, 분석, 배포에서부터 테러행위의 예방과 진압, 수사와 처벌을 위하여 다양한 국가기관에 전문적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국가정보원은 테러조직에 관한 국내외의 정보를 수집, 작성 및 배포하게 되어 있고, 필요하면 국정원 내부에 자체적인 대테러센터를 설치해 테러에 대응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일 씨가 그토록 어이없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선 관료들의 나태와 직무 유기 때문이 아니던가. 근본적으로는 국민을 불구덩이로 몰고 가는 이라크 파병을 끝끝내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정부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부시 대통령 하의 미국과의 동맹 관계만을 앞세우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내팽개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김선일 씨 피랍 사실에 대한 정부기관의 은폐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한 다른 답이 있을 수 없다.

4. 열린우리당의 안영근 제1정책조정위원장은 “지금의 대응으로는 허점이 드러났다”며 “(테러방지법)은 테러에 대한 긴급 대처를 위한 것이며, 테러대책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테러방지법을 추진하기 전에 먼저 국민에게 답하라. 구체적으로 이번 사건의 대응의 허점은 무엇이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이러한 비극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지부터 낱낱이 밝혀라. 원인을 분명히 따지고, 책임을 분명히 묻기 이전에는 이라크 파병은 물론, 테러방지법 제정 추진도 절대 안 된다.

5. 우리는 이미 지난해 11월 30일 한국인 노동자 2인이 이라크에서 피격된 후, 12월 9일 국회에 보낸 의견서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급조된 강력한 테러 대책이 아니라 문제를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정보”라고 강조했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중동/아랍권에 대한 정책이 없고, 독자적 판단 능력도 없고, 이에 대처할 방안도 없음을 비판했었다. 모든 정보를 미국 혹은 서방측에 의존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꼬집었었다. 외교통상부 내에 중동문제 전문가가 전무할 뿐 아니라 아중동국의 지난해 예산이 모두 9억5백만원으로 외교통상부 전체 사업비의 0.17%에 불과한 불균등한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런 상태에서 국방부의 조사팀든, 국회의 조사팀이든 이라크에 대해 어리석은 판단밖에 할 수 없음은 분명했다. 그 당시에도 정부는 12.2 테러방지대책을 내놓았지만, 어느 것 하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더 큰 희생을 불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테러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고, 파병 문제를 재검토하려는 진지한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이라크에서의 노동자 피격 사건이 한국 파병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식의 안이한 판단만을 연일 내놓았었다. 정부는 그때로부터 한 치도 달라진 것 없이, 강대국에 굴종하면서 국민에게는 무책임한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6. 열린우리당은 이미 법안 성안 작업에 들어갔다며, 테러방지에 대한 입법을 추진해나가되 국정원이 센터를 지휘하는 방향은 피하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테러방지법의 입법 추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떠한 형태의 조직개편이든 입법이든 졸속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현재의 정보, 보안 관련 기구들이 테러 예방 및 대응 조치를 실시함에 있어 어떤 결함이 있는지부터 먼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평가에 기반해 무엇이, 왜 필요한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반대하며, 이러한 질문을 수차례 정부와 국회를 향해 던졌지만 결코 성실한 답변을 들은 적이 없었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상황 논리로 테러방지법의 졸속 입법을 포장하지 말라. 그리고 분명히 다시 밝힌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철회가 아닌 다른 모든 대책은 공허할 뿐이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조속한 파병 철회 결정이다.

2004년 6월 29일

‘테러방지법 제정반대 공동행동’ 참가단체(총 103개 단체, http://nopota.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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