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7-01-08   919

테러자금조달억제법 제정은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가 지난 2007년 1월 4일 차관회의에서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을 제정하기로 결의하였다. 재경부가 제정을 주도하고 있는 이 법률안은 미국 등이 이른바 ‘대테러 전쟁’ 차원에서 그 제정을 압박해온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국제인권법에 상충되는 자의적이고도 과도한 규제로 논란을 빚어온 제도이다.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은 한마디로 ‘테러자금 조성 및 자금세탁 방지법’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안은 ‘테러행위’와 ‘테러자금’을 법적으로 규정하여, 이에 대한 사전예방을 위해 재경부장관이 테러관련자를 행정고시를 통해 지정하여 이들의 자금으로 의심되는 금융행위를 추적하고, 이들의 자금을 동결하며, 이 자금의 조성과 세탁에 관련된 자, 특히 미수행위의 방조자에 대해서까지 강력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입법 시도는 그 기대효과에 비해 무수히 많은 무리한 법적용 및 행정처분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예견케 하고 있다.

첫째, 테러행위 및 테러자금 규정의 모호성과 무리한 적용의 가능성이다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은 테러 개념을 “협박으로 국가ㆍ지방자치단체ㆍ외국정부를 강요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하는 일정한 유형의 폭력행위”로 정의하면서 1)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또는 사람을 체포ㆍ감금ㆍ약취ㆍ유인하거나 이를 인질로 삼는 행위(2조 1항 1호), 2)테러자금 조달의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에서 열거하는 9개의 국제협약상의 범죄행위 중 이를 수용하여 제정된 국내법률에 조문화된 범죄행위 – 즉, 항공기ㆍ선박에 대한 테러, 폭발물ㆍ생화학물질에 의한 테러, 방사선ㆍ방사성물질에 의한 테러(2조 2항 2-4호) 등으로 열거하고 있다. 또한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은 테러자금을 “1)테러에 이용하기 위하여 모집ㆍ제공된 자금 또는 재산, 2)테러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개인ㆍ법인 또는 단체로서 제4조에 따라 재정경제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자가 보유하는 일체의 자금 또는 재산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2조 2항 1-2호)”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테러방지법 제정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 등도 적절히 지적했듯이, 테러행위, 혹은 테러자금 등의 개념은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정치적 개념으로서 이를 법으로 규정할 경우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 법이 내세우는 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할만한 실체적인 범죄 행위들에 대해서는 굳이 ‘테러’행위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형법, 폭력행위처벌법 등 다양한 국내법과 국제법을 통해 이미 상당한 정도의 통제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굳이 이를 테러행위라는 명목으로 정죄하고 가중처벌할만한 법적 실익이 있는지가 의문시되어져 왔다. 특히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은 테러행위를 “살인ㆍ중상해ㆍ납치(2조 1항 1호)” 등으로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어 자의성의 여지를 크게 하고 있다. 더욱이 테러자금의 경우 테러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자금을 재경부장관이 행정명령을 통해 지정 고시하도록 하고 있어 남용의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둘째, 테러관련자 지정 및 관련 금융거래의 지정과 동결명령의 남용우려이다

동법안은 테러관련 자금조성행위 및 세탁행위를 테러행위와 별개로 범죄화하고 있다. 미수범은 물론 미수행위의 방조자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재경부장관이 테러혐의거래 및 거래자를 확정하여 이를 고시하고 관련된 금융거래를 불법으로 규정, 동결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조치에 따른 선의의 불이익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행정절차법 상의 필수조치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도 부여하고 있다.

특정 범죄를 위한 자금조성 및 그 세탁행위를 특정범죄행위와는 별도로 정죄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또한 타당한 일이다. 이미 한국은 물론 많은 나라들이 자금세탁방지법 등을 통해 이러한 제도를 입안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자금 조성 및 세탁행위의 전제범죄를 규정하는 문제는 매우 신중해야 할 문제로서 앞서도 강조했듯이 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테러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국내법을 통해 실체적으로 규율을 하고 있고, 그에 따른 자금세탁행위에 대해서도 이미 ‘특정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에관한법’(약칭 범죄수익규제법)을 통해 처벌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가인권위 의견서나,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의 입법공청회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미수범의 방조자(예비죄 종범)도 처벌한다는 매우 위험한 조항이다. 이는 국가보안법 상 불고지죄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반인권 조항이다. 일반형법에서 정범이 예비단계에 그친 경우에 그 정범을 방조한 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 및 다수설의 태도라는 점이 이미 입법공청회 과정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재경부장관에게 부여된 지나치게 큰 재량을 바탕으로 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행정명령을 남용할 가능성이다. 동 법안이 테러관련 자금 규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아니하고 재경부장관의 재량에 맡김으로, 이슬람 연고의 이주노동자들의 송금이나,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모금행위, 혹은 기부행위, 나아가 대북경제협력 자금 등이 뚜렷한 법적 규정 없이 제재와 동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고,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행정절차법의 적용도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은 테러관련 자금의 통제를 의도한 이 법안 제정의 실질적 목적과 직결되는 부분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법안의 가장 심각한 폐해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셋째, 동 법안 제정을 추진하는 정부는 선택가능한 다른 대안을 배제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외환거래법을 통해서 불법적 외환거래를 처벌함은 물론, 재경부장관이 고시한 특정 혐의 거래를 사전에 허가받도록 하는 예방규정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범죄수익규제법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일명 FIU법)이라는 자금세탁 규제를 위한 패키지 입법안을 제정 운용하고 있다. 더불어 ‘폭력행위처벌에관한법’과 ‘형법’등을 통해 다양한 폭력행위와 그 자금조달을 규제하고 있다.

사실, 현행법으로 해결되지 못할 부분은 ‘개인적 테러행위자에 대한 테러자금 조달행위’, ‘예비단계에서 좌절된 경우에 이른바 예비의 종범(從犯)’의 처벌 등 매우 기술적인 부분이다. 이는 앞에서 열거한 일부 법률 조항들을 국제인권규범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부 개정함으로써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해결가능한 대안을 거부한 채, ‘테러개념’에 대한 무리한 입법화를 시도하고, 행정부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하는 반인권적인 입법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넷째, 동 법안은 명분과는 달리 이슬람 세계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과잉대응을 조장하고 대북포용정책의 원활한 수행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9.11 이후 테러의 근절만을 앞세운 미국의 무리한 패권적 반인권적 행동들이 도리어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한편, 서방에 대한 이슬람 등 등 제3세계의 증오와 무장갈등의 확산을 가져오는 자양분이 되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자금이 테러에 이용되고 있다면서 이의 동결을 세계 각국에 요구했고 우리 정부도 이에 호응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미국은 이른바 ‘탈레반 관련자’로 지목한 이들에 대해서는 제네바 협약이나 고문방지협약의 적용 또한 배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난을 야기해왔다. 미국이 테러세력 및 자금 추적이라는 명목으로 미 행정부가 취해온 광범위한 자의적 도청과, 계좌추적은 미국 유권자들은 물론, 이에 협력해온 유럽의 반발도 초래하고 있다. 유럽의회(EU)의 정보보호 관련 자문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미국에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가 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테러자금조달억제법 같은 많은 문제점을 가진 법안을 정부가 무리하게 제정하게 된 것은 최근 방코 델타 아시아은행에 대한 계좌동결 등 북한과 이란 등에 대한 금융제재를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의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대북금융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은 APEC 각료회의 등을 통해 “돈세탁·테러자금 지원,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연루된 개인과 집단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보다 강력한 제재를 취해야한다”고 강조해왔고 한국 정부에 이러한 추가조치를 압박해왔었다. 한국 정부가 만약 테러자금조달억제법 등 미국의 구미에 맞는 반인권적인 법안을 제정하게 될 경우, 이같은 국내법의 존재는 미국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하고 있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나 금융거래 등도 테러자금 조달행위의 하나로 통제하는데 동참하라는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좋은 디딤돌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는 대북포용정책과 배치되는 자가당착적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동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대다수 이슬람 계열의 이주노동자, 특히 불법 노동자들의 외환거래가 테러자금조달행위로 처벌되거나 그러한 혐의에 따라 추적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슬람국가들 출신의 불법노동자들은 흔히 ‘하왈라-이슬람 신자들간의 신용에 의한 송금방식’으로 알려진 환치기를 통해 수익을 본국에 보내왔었다. 이런 행위는 지금까지는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효과적으로 통제되어왔지만 이제 이 같은 행위는 다만 소박한 환치기가 아닌 테러행위 조달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통제될 것이다. 이미 이라크 전쟁이후 이슬람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통제가 강화되어온 조건에서 동법률안의 통과는 이들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 법적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예비자의 종범까지 통제하는 동법률안은 전통적으로 대가족제도를 유지하는 이슬람 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심화시키는 구실로 작용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지난 해 9월 입법공청회에서 이 문제를 충분히 제기한 바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주최의 공청회에 참여한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처장과 이계수 건국대 교수를 비롯한 상당수의 토론자들이 이 법의 반인권적 부작용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지적들이 입법과정에서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 제기된 중대한 문제에 대해 추가적인 의견요청이나 공론화 과정없이 동 법률안 제정방침이 차관회의를 통과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경부는 법적 실익이 의문시되는 반면, 광범위한 인권침해는 물론 대북정책과의 상충이 우려되는 테러자금조달억제법의의 제정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국무회의는 차관회의를 통과한 동 법률안을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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