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사고 속의 무기력한 과학기술자

[추천! 이달의 사이언스 필름] 영화 <차이나 신드롬>

사이버참여연대에서는 매월 1회씩 김명진 님의 <추천! 이달의 사이언스필름> 을 게재합니다. 김명진님은 <시민과학> 편집위원이고 과학기술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시민과학>에도 게재됩니다.

<차이나 신드롬>은 핵발전소 사고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흔치않은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인 ‘차이나 신드롬’은 바로 핵발전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인 멜트다운(meltdown)이 일어났을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멜트다운은 원자로 노심(‘코어’)이 물 밖으로 드러나 그 속에 채워져 있는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사고를 말하는데, 이것의 녹는점(2,800℃)은 노심을 둘러싸고 있는 강철용기와 콘크리트의 녹는점보다 더 높기 때문에 이를 녹이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이 때 이론적으로는 이것이 지구 중심을 통과해 반대쪽에 위치한 중국까지 다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주1) 물론 영화 속에서도 설명되듯이 녹아내린 노심이 중국까지 도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대신 그 전에 지하수와 만나게 되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대기 속에 엄청난 양의 방사능물질을 뿜어내는 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원전 역사상 가장 큰 사고 중 하나로 불리는 1979년의 미국 스리마일 섬(TMI) 원전 사고 직전에 개봉해 더욱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영화는 TV 리포터인 킴벌리 웰즈(제인 폰다)가 카메라맨 리처드 애덤스(마이클 더글라스)와 함께 핵발전소 홍보 취재를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취재도중 그들은 기기 오작동과 판단착오로 인해 거의 멜트다운에 이를 뻔한 사고 정황을 목격하게 되는데, 웰즈와 애덤스는 그 광경을 몰래 촬영해 방송으로 내보내려 한다. 그러나 핵발전소의 신규 인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전력회사측은 방송사의 고위 간부와 접촉해 사건을 은폐하려 들고, 애덤스는 필름을 반핵운동 진영에 넘겨 이에 맞선다. 한편 발전소의 수석 엔지니어인 잭 고델(잭 레먼)은 사고 발생시의 비정상적인 진동에 의문을 품고 이를 조사하다가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델은 발전소 운전에 위험이 따를 수 있음을 알고 발전소측에 운전 중단과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운영 적자를 이유로 거절당한다. 이에 분개한 고델은 발전소의 중앙 통제실을 점거하고 TV 리포터를 불러 이 사실을 폭로하려 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다소 낡은 듯 보이기는 하지만, <차이나 신드롬>은 핵발전소에 내재한 사고 가능성을 개연성있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1974년에 이 영화의 최초 각본을 쓴 마이크 그레이가 실제로 엔지니어였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 영화에는 두 차례의 ‘사고’가 등장하는데, 이들 각각은 1970년대에 미국 핵발전소들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재구성된 것이다.

실제로 1970년 시카고 인근의 드레스덴 II 원전에서는 원자로 수위 계기의 지침이 꽉 끼어 눈금을 잘못 가리킨 사건이 있었으며, 1975년 앨러배마 주의 브라운즈 페리 원전에서는 화재로 인해 냉각재 순환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멜트다운에 이를 뻔한 사고가 있었다.(주2) 물론 이 영화를 둘러싼 사건들 중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찬반 양론 속에서 영화가 개봉한 지 불과 11일 후에 스리마일 섬에서 실제 멜트다운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스리마일 섬 사고는 미국에서 원전반대운동이 힘을 얻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이후 미국 내에서 추가로 주문된 상업용 원자로는 단 한 기도 없었다.

<차이나 신드롬>은 그것이 다루고 있는 소재의 특수성을 잠시 접어둔다면, <대통령의 음모>처럼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사회고발성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정치 스릴러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공공의 안전은 온데간데없이 이윤만 밝히는 거대 에너지 회사, 회사의 안전 관행을 적당히 눈감아 주는 핵규제위원회(NRC) 같은 정부기구, 그리고 문제를 은폐하려는 음모와 암살 기도가 등장하며, 이런 문제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언론사 기자와 여기에 제보를 하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전면에 부각된다.

이는 어찌보면 다분히 틀에 박힌 구성이다. 그러나 <차이나 신드롬>은 여기 등장하는 내부고발자가 현장 엔지니어라는 점에서 통상적인 정치 스릴러와는 또다른 공감을 자아낸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잭 고델은 원전을 “자신의 생의 전부”로 여기는 인물로, 발전소가 사고에 대비해 철저한 주의를 기울여 설계되었으며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로 보호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발전소 인근 바에 찾아온 미인 여성 캐스터에게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고, “전등을 켤 때면 10%만 나를 생각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엔지니어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가로막히자 그는 갈등 속에 내부고발자로서의 길을 택하고 절망감 속에 발전소를 점거하는 극한 행동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이와 같은 엔지니어의 모습은 1970년대 이후 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통제권을 잃고 무력해진 과학기술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주2) 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기술 이미지를 분석한 학자들에 따르면, 1950년대까지는 영화에 등장한 과학기술자들이 대체로 공동체로부터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그려진 반면, 1970년대부터는 과학기술자들이 대기업, 정부 연구소, 군부 등에 고용되어 주어진 일만 하면서 자율성에 제약을 받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흔해졌다.(주4) 과학기술자가 자신이 일으킨(혹은 자신과 연관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려 시도하다가 자신에게 권한이 없음을 새삼 깨닫고 좌절하는 내용을 담은 최근의 여러 영화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봐둘 만한 점은, 전문가 언어와 일반대중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 사이의 괴리이다. 영화 속에서 핵발전소 종사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약어와 기술용어들로 가득차 있고, 이는 영화 속의 다른 등장인물들에게(그리고 관객에게도) 생경함과 거리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영화 끝부분에서 잭 고델이 발전소가 안고 있는 문제를 TV 시청자들에게 폭로할 때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미치광이로 보이기에 충분한” 요령부득의 설명을 늘어놓는 장면을 보면, 그러한 의사소통의 괴리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대중만은 아닌 듯싶다. 평소에 일반대중과의 의사소통 노력을 게을리하고 연구개발과 일상 작업에만 몰두하는 것은 ‘결정적인’ 시기에 이르면 과학기술자에게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주1) 이필렬, 「원자력발전소 사고」,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창작과비평사, 1999), p. 95.

(주2) 이 정보는 샌디에고대학 역사학과 홈페이지에 있는 역사영화 아카이브인 ‘filmnotes’에서 얻었다. 이곳에서는 <차이나 신드롬>과 드리마일 섬 원전 사고에 관한 다양한 참고문헌 목록도 얻을 수 있다. http://history.sandiego.edu/

(주3) Steven L. Goldman, “Images of Technology in Popular Films: Discussion and Filmography,” Scienece, Technology, & Human Values, 14:3(1989), p. 277.

(주4) 앤드루 튜더, 「과학의 가장 나쁜 측면을 들여다보는 창」, ≪시민과학≫ 37호(2002년 6월), pp. 26-34.

김명진(<시민과학>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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