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구개발과 평가의 유착 고리를 끊어라

선수가 심판 겸하는 기형구조가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부실’ 낳아

최근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에서 6명의 연구원이 정리해고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표면적으로는 정리해고이지만 실상은 지난 10월 안영근 의원(현재 열린우리당)이 국회에서 발표한 “국책개발 사업의 현황과 문제점 – 그 대안을 찾아서”라는 보고서의 내용에 들어있는 연구개발과 평가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이 문제였다.

이 문제는 지난 1월 17일 KBS 1TV의 <한국사회를 말한다>의 일부로 제작된 “국가연구개발비 5조 6천억원이 새고 있다”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안 의원의 발표와 KBS의 보도는 모두 국민들의 혈세로 이루어진 막대한 국가연구개발비가 투입되는 연구개발 사업의 관리를 둘러싼 과학기술계의 뿌리깊은 유착과 비리를 문제삼은 것이었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위원장 이성우)은 성명서에서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리가 “산업자원부 공무원들의 평가절차를 무시하는 부당한 지배개입,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종사자들의 부당한 학위 거래, 금품 수수 등 갖가지 부정과 비리로 얼룩”졌다고 비판하면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주장했다.

지금까지 제기된 부정과 비리 사례는 크게 나누어 과제 수탁과정의 비리(불공정 지정), 평가 과정의 비리(주무부처의 부당압력 의혹), 그리고 ITEP의 일부 연구자들이 과제를 대가로 학위를 취득한 비리 등이다. 이것은 모두 현재의 부조리한 평가체계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져온 연구자와 평가기관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기노조)이 지난해 말에 신청한 국민감사청구가 받아들여져서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할 예정이고, ITEP은 확보해 놓은 증거를 토대로 ITEP 종사자들의 비리 의혹을 부패방지위원회에 고발해놓은 상태이며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에 대한 심판, 조정 신청도 했다.

선수와 심판이 한 몸뚱이가 된 기형적인 평가체계

사실 이번 ITEP 연구원 무더기 해고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국가연구개발비를 둘러싸고 온갖 비리와 부정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퍼져나왔다. 이공계 위기론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늘어난 연구개발비가 정작 연구 현장에서 땀흘리는 과학자와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돌아가기는 커녕 해당 주관 부서와 밀착된 일부 비리 과학자들의 호주머니를 불려주고 윤리의식이 실종된 평가기관의 일부 연구원들이 교수들에게 프로젝트를 주는 대가로 엉터리 박사 학위를 받는 부정적 수단으로 활용된 셈이다.

그렇다면 국가연구개발비의 평가와 관리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른 원인은 무엇인가?

이번 사건으로 해고된 ITEP의 한 연구원은 며칠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국가 연구개발비 5조6천억원의 상당수를 운영하는 주무부처는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이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연구개발 과제를 선정해 예산을 배정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산하 평가 기관을 갖고 있다. 산자부-ITEP, 과학기술부-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통부-정보통신연구진흥원(IITA)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국가연구개발비의 대부분을 집행하는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가 그 산하에 각기 자신의 사업을 평가하는 평가기관을 하나씩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ITEP, KISTEP, 그리고 IITA의 인사와 경영을 평가대상인 세 부처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마치 경기장에서 한 쪽 팀의 선수가 심판을 겸하는 것과 같은 모순적인 형국인 셈이다.

KISTEP과 기술영향평가

이러한 평가체계의 모순은 비단 이번 ITEP 사태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현재 진행중인 여러 부처의 사업에서도 그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기술영향평가(technology assessment, TA) 시범 사업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기술영향평가란 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안녕과 복지에 막대한 규정력을 미치는 중요한 과학기술 주제의 영향을 주로 사회, 윤리, 환경의 측면에서 연구 초기에 미리 평가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시민단체들이 그 시행을 요구해왔고, 지난해에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 14조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문화, 윤리,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규정에 근거해서 실시되었다.

3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시행된 시범사업이었고, NBIT(나노, 생명공학, 정보기술) 융합기술이라는 대상기술이 모호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최초의 기술영향평가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업은 진행과정에서부터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우선 평가위원회가 과학기술전문분과, 산업경제전문분과, 사회문화전문분과의 세 분과로 구성되면서 이 사업이 기술영향평가인지 기술개발을 위한 기술기획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평가사업이 완료된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식적인 결과가 발표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매체에 실린 글들을 종합해볼 때 발표가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KISTEP의 상급 단체인 과학기술부가 평가 결과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판단하고 평가가 발표되면 향후 해당 사업을 진행하는데 장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결국 선수와 심판이 한 몸통에 붙은 기형구조가 모처럼 시행된 기술영향평가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는 셈이다. 기술영향평가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을 미리 찾아내서 그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영향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부정적인 내용을 우려한다면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 기술영향평가를 수행할 까닭이 없다.

이처럼 사업을 수행하는 주체와 평가 기관이 수직관계를 이루고 있는 한,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앞에서 언급한 ITEP의 해고 연구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독립된 기관으로 가칭 “국가과학기술기획평가원”을 두고 그 산하에 ITEP, KISTEP, IITA와 같은 평가기관들을 배치해서 인사와 경영을 주무부처로부터 독립시키는 방안을 제기했다. 그 명칭이나 소속이 무엇이든 간에 선수와 심판을 분리시키는 구조적인 개혁이 따르지 않는 한, 엄청난 규모의 국가개발연구 사업 관리와 기술영향평가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김동광(시민과학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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