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2-11   519

과학기술투자확대만이 답은 아니다

인수위가 발표한 ‘과학기술 중심 사회’, 일면적 사고가 아쉬워

1. 지난 7일, 발표된 “새 정부 10대 국정과제”에는 ‘과학기술 중심 사회’가 그 중 하나의 과제로 포함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현재의 추세를 고려하면 과학기술을 국정과제의 하나로 고려하겠다는 인수위의 의지는 매우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아직도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확대 외에는 다른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 인수위가 아직도 이렇게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2. 이런 아쉬움은 국정과제 ‘과학기술 중심 사회’의 세부 항목이 ▲ 과학기술자 사기 진작 및 과학기술인력 양성 ▲ 연구개발비의 투자 확대 ▲ 기술혁신, 신(新)산업육성 ▲ 일자리 창출 등이라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세부 항목을 풀어서 설명하면 “기술혁신을 통해 신산업을 육성하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지원과 연구개발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과학기술을 경제의 하위범주로 보는 구시대의 통념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기술혁신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보다 깨끗한 환경, 건강한 삶, 안전한 생활 등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의 편중을 살펴보기 위해 사회·경제적 목표에 따른 연구개발비 분류를 보면 2001년 현재, 산업개발과 통신을 위해서는 전체 연구개발비의 27.39%와 18.13%를 투자하는 데에 비해 환경, 보건, 도시·지역개발에는 각각 2.49%, 4.35%, 1.71% 밖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

3. 더욱 심각한 것은 BT, IT, NT같은 기술중심적인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 보건, 지역개발 등의 사회·경제적 목표가 아니라 특정한 기술분야를 강조하면서 과학기술정책은 학문분야에서의 우수성 또는 관련산업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협소화된다. 이런 사고의 과학기술정책에서는 환경, 보건, 지역개발을 생각할 여지는 사라져 버리고 이런 문제들은 다른 영역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과학기술은 다른 사회와 독립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지역간 균형발전,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 지속가능한 발전, 참여민주주의의 확대 등은 과학기술과 동떨어진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 환경, 보건 등 까지 새 정부 과학기술정책의 관심이 확대되어야 한다.

4. 인수위가 발표한 다른 국정과제에는 ‘참여와 삶의 질 향상’, ‘국민통합과 양성평등’같은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이런 과제들도 과학기술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정책은 단지 과학기술수준의 문제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에 관련된 거버넌스의 재편까지를 고려해야 한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몇 해전부터 국가과학기술의 비전을 형성하고 결정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시민대표가 참여할 것을 비롯해서 참여지향적 기술영향평가 등 과학기술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해야 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시민참여를 통해 시민들이 느끼고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계획되고 결과가 활용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노무현 당선자가 주장했던 참여민주주의의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과학기술계에도 학력(學歷), 성별, 비정규직 등의 차별문제는 존재하고 있으며 지역불균형, 학위에 따른 연구원 사이의 불평등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를 개혁해야 한다. 연구개발시스템의 건전성과 관련된 이런 문제들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문제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과학기술성장의 속성 그 자체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이라면 과학기술의 창조와 활용뿐만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에도 주목해야 한다.

5. 시민들은 인수위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진정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가 발표한 ‘과학기술 중심 사회’라는 국정과제에서 말하고 있는 지원확대 위주의 과학기술정책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부분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경제성장을 위해서만 집중한다면 과학기술은 다시 경제성장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며 우리가 원하는 다른 형태의 발전가능성은 사장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정책과정 및 과학기술계 내의 불균형 등을 해소하는 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투명하고 건전하며 합리적인 과학기술계, 과학기술정책과정은 차차기 정부의 과제가 되고 말 것이다.

2003. 1. 13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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