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3-17   587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이 대안이다

핵폐기장 부지선정 논란에 붙여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무관심

한국수력원자력(주)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올해 2월 6일부터 한 달간 진행 중인 여론조사가 있다. 질문은 단 하나.

“귀하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택지는, “1. 필요하다. 2. 필요없다. 3.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진행되는 여론조사답게 아주 간단하다. 중간결과를 보면, 1번을 선택한 사람이 총 응답자 중 85%에 달한다. 다만 2월 중반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이런 ‘하나마나한 질문’에 대한 응답자가 55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으로서는 아쉬울 것이다.

지난 2월 4일,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는 동해안의 두 지역(영덕군 남정면, 울진군 근남면)과 서해안의 두 지역(영광군 홍농읍, 고창군 해리면)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후보 부지로 선정, 발표했다. 1년 동안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다지만 그 조사자료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은 지금, 핵폐기물 처리장(이하 핵폐기장) 후보지로 지정된 이들 지역에 발표가 일으킨 파문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발표 후 이틀이 지난 6일에는,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된 네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핵폐기장 백지화 및 핵발전 추방을 요구하는 <반핵국민행동>의 출범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으로 핵폐기장 건설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의 건설을 미뤄서는 안된다는 정부·사업자 측의 호소만큼이나, ‘무척이나 오랫동안’ 위험한 핵폐기물을 자신의 생활터전에 둘 수 없다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는 절실하다.

요즘 이 소식을 전하는 많은 언론들의 대담, 칼럼 및 사설들은 정부의 밀어부치기식 추진과 주민들의 무조건 반대를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합리적인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내리는 일반적인 결론은, 당장 원자력 에너지 없이 전력공급이 불가능하고, 원자력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처리장이 필요하니, 정부·사업자는 안전성을 약속하고 신뢰를 얻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주민들은 처리장 건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지금의 논란에서 이와 같이 ‘점잖은’ 충고가 쉽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우리나라에서 핵폐기장 건설이 계획되기 시작한 때는 1986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후 계속되어온 처리장 건설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었으며, 그 와중에 정부·사업자와 지역주민·환경단체들 사이에는 엄청난 충돌이 있었다. 특히 90년대 초 안면도, 90년대 중반 굴업도에서 벌어진 핵폐기장 건설 반대 투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다. 핵폐기장 건설 후보지로 오르는 지역은 계속 늘어났지만, 시위 중 주민이 사망하고 수많은 지역주민과 환경운동 활동가들이 구속되는 등의 험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핵폐기장 건설 시도는 모조리 무산되었다.

더구나 현재 후보지로 올라있는 지역들의 경우, 과거에도 핵폐기장 건설 후보지로 이름이 올라 반대 투쟁이 벌어졌던 곳이거나, 이미 원전이 건설되어 있는 지역이다. 지난 17여년 간의 경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이대로 가면 갈등과 충돌은 더욱 커져만 가리라는 사실이다.

장기적 대안은 재생가능 에너지원의 개발

이러한 갈등의 근본원인은 결국 우리 에너지 정책이 핵폐기물을 끊임없이 생산할 수밖에 없는 핵발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전력공급량의 35%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결정은 분명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후화된 원전의 사고가능성, 원전 폐쇄시 필요한 천문학적인 비용, 장기간의 핵오염 가능성 등을 고려해본다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원전이 아닌 또다른 어떤 ‘선택지’이다. 바로 재생가능 에너지원의 개발이 그것.

구 동독 갈탄광산의 대신 지역의 에너지원으로 풍력, 태양에너지, 소수력, 바이오매스 등의 재생가능에너지가 자리잡고 있고, 그 중 풍력발전이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생가능 에너지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강조는 언제나 말뿐이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단적인 예로, 과학기술부는 올 한해에만 원자로 및 핵연료, 원자력안전, 방사선방호 및 영향평가, 방사성폐기물관리, 방사선의학 연구, 원전성능개선 및 현장기술혁신 등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사업에 총 1천9백11억원을 투입하기로 확정했다. 심지어 2002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원전 해체 및 핵폐기장 건설 목적 등으로 사용해야 하는 <원전 사후처리 충당금> 4조원을 오히려 그동안 원전의 신규건설 및 홍보비로 전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4년 동안 정부가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개발에 지원한 금액은 고작 1천2백6억원에 불과하다. 한 해 1백억원도 되지 않는 규모다. <대체에너지 개발촉진법>이 1987년 제정되었지만, 이는 다만 생색내기용이었음이 분명하다.

이제라도 원전의 불가피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상황에 맞는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육성하고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등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미래에 위한 대안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평균 수명이 40년 가량 되는 원전 폐쇄 및 재건설 비용, 그리고 폐기물 처리 등의 사안을 둘러싼 정부와 국민들, 그리고 국민들 서로간의 갈등과 대립 사태는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원전에 대한 전력공급 의존도가 50%를 초과했던 스웨덴은 1980년 국민투표로 국내 모든 원전의 폐쇄를 결정한 이후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전체 전력의 2/3 가량을 원전에 의존, 전세계에서 원전 의존도가 두 번째로 높은 벨기에는 2025년까지, 그리고 독일은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그리고 원전 사고 방지에 철저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에서도 잇따른 심각한 사고로 인해 원전에 대한 우려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영국, 미국, 핀란드 등의 경우 중·단기적인 전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원전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EU와 미국은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을 2010년까지 10% 이상으로 높이며, 원전 및 기존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개발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핵폐기장 신설보다는 기존 시설 활용을 모색하라

그러나, 이렇게 원전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중심의 에너지 정책 전환이라는 화두를 다시 확인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당장 닥친 문제, 핵폐기물에 대한 실제 처리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시 제일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은 필요한가? 그렇다. 필요하다. 폐기물이 있는데 그 관리시설이 없어서야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핵폐기장은 어디에 건설하란 말인가? 한국수력원자력(주)이나 산업자원부가 던진 질문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장기간의 원전 운영을 염두에 둔다면 물론 별도의 핵폐기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핵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에너지 정책의 근간이 된다면, 핵폐기장의 ‘신설’은 재고되어야 한다.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당장의 해결책은 핵폐기물을 현재 있는 그곳에 놔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실상의 ‘핵폐기물 처리장’ 기능을 수행해온 곳의 안전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책이다. 그리고 현재 상용화 단계에 이른 핵폐기물 부피 축소 기술을 활용하여 향후 10년 이상을 버티면서 원전의 즉각적인 폐쇄를 포함한 근본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의 사회를 ‘위험사회’로 파악하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부작용과 위험성을 낳는 시설을 둘러싼 갈등은 참가의 폭을 최대한 넓힌 교섭의 장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기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문가의 시각으로 ‘우매한’ 대중을 설득하여 이미 정해져있는 결정들을 통과시키는 식의 의사결정구조를 벗어나지 않고서 갈등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교섭의 장이 생긴다고 해서 갈등이나 통제불가능한 위험이 원천적으로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벡은 이를 통해 예방법과 예방조치를 강화시키고, 희생이 불가피할 경우 희생이 불균등하게 강요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일 수는 있으리라고 희망하고 있다.

핵폐기장 문제에 대한 지금부터의 ‘열린’ 토론이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예측불가능한 사고’나 장기적 위험의 가능성을 제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해도 지금처럼 지역발전금 3천억원으로 위험을 사갈 지역과 흥정을 하고, 이 때문에 지역 주민 공동체 내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방식은 답이 아니다.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17년 간 실패해온 길을, 지금 또다시 가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핵폐기물로 인한 갈등은 어느 한 지역의 희생을 회유 혹은 강요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1995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 당시처럼 2002년이면 핵폐기물이 포화되리라는 식의 협박으로도 풀리지 않는다. 예측불가능한 위험을 쌓아가는 핵발전이 아닌, 보다 안전한 에너지원의 확보를 장기적인 목표로 했을 때에만 현재의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 일부 원자력관련 전문가들만 원전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움켜쥐고 있다면 그동안 쌓인 불신의 벽은 두터워져만 갈 것이다. 후보지 지역주민 만이 아니라, 여타 학계 인사 및 일반 시민들에게도 현재의 정보 및 그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결국 현재 눈앞의 위험 분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틀은 지금보다 국민들에게 개방된,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에너지 정책의 장기적 측면에서부터 누군가의 뼈있는 농담인 ‘수도권 핵폐기장 건설’이라는 선택까지도 고려한 ‘열린’ 논의이다.

≪프레시안≫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003. 2.15)

안성우 | STEP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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