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와 관료의 장막에 둘러싸인 초전도 핵융합사업

참여연대 맑은사회 만들기본부는 올 7월 19일과 11월 4일, 두 차례에 걸쳐 10년 동안 약 2500억 원의 국가예산이 들어간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개발과제” (일명 KSTAR 프로젝트)와 관련된 의혹들을 공개하고 관련기관에 이에 대한 해명을 촉구한 바 있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첫 번째 의혹은 “KSTAR 프로젝트”의 중핵(中核)이라 할 수 있는 초전도 도체에 용접불량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초전도 자석제작을 담당하는 사업단 책임자인 K씨가 다음해 정부 예산을 타내기 위해 용접불량을 과기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초전도 도체 제작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두 번째 의혹은 프로젝트의 평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초전도 사업을 평가하고 예산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국가 핵융합 연구개발위원회의 “부실 평가”로 인해 여러 문제점들을 안은 채 올해 3단계 사업 예산이 지출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몇 차례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바 있기에 이 글에서는 전문가와 관료의 “장막”에 둘러싸여 시민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과학기술 영역에서의 예산낭비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 그리고 이들이 맞닥트리는 어려움을 주로 서술하려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맛보아야 했던 어려움은 비전문가로서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참여연대

가 제보를 접수받은 시기가 2001년 9월말이었고 이를 부패방지위원회에 신고한 시점이 2002년 4월이었으니, 검토에서 대응까지 7개월 이상이 소요된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뇌물이 오고가거나 일반적인 예산낭비 사례는 (예컨대 청소년 수련관이나 학교에서 보조금을 유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의 확정과 법적 판단이 용이하고 검토 시간도 짧다.

그런데 과학기술 영역에서는 기본 용어(예컨대 “초전도”나 “토카막”)나 기초 이론(초전도 핵융합 이론)들을 이해하고 사업단 내의 운영프로세스(어디서 예산에 대한 결정을 하고 보고 체계는 어떻게 하는지)를 파악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제보사실은 1차적으로 제보자를 통해 확인하고 외부 전문가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사안의 경우 기본적인 내용은 제보자를 통해 확인했지만 과연 제보내용이 진실인지와 설사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과연 제보자의 주장대로 심각한 문제인지를 판단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제보자 신원과 제보 사실에 대한 누설문제로 인해 당사자인 삼성과 기초과학지원연구원, 과학기술부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는 건 피할 수밖에 없었고 외부의 전문가(대학교수나 연구소의 전문가들)의 경우 대부분이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어 발언의 객관성을 판단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이로 인해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며칠밤을 준비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자료를 준비했지만 “그건 기술적으로 이러이러해서 문제가 없다”라는 간단한 말에 대꾸도 못하고 좌절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비단 시민단체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로 늘상 당하는 어려움이었다. 이 문제를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하기 위해 만난 많은 의원보좌관들 역시 전문성 문제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의원들에게 질의할 내용, 이에 대한 상대방의 답변에 대한 반박 내용, 이에 대한 상대방 반론에 대한 재반박 내용까지 적어줘도 피감기관의 답변에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원들은 아주 확실한 내용이 없으면 아예 국감기관에서 질의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과학기술에 대한 외부 감시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적 지식도 문제이지만 또한 쟁점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제보자들은 흔히 “자신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 누구나 자신의 주장에 쉽게 수긍하여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제보자들은 대부분 전문적 지식을 획득했고 이미 내부운영 시스템에 대해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이런 전문가가 아니라 “핵융합과 핵분열도 구분 못하는 ” 사회부 기자와 일반시민들이다. 예컨대 “도체의 용접불량을 입증할 방법을 묻는 우리에게 제보자는 계속 “용접 상태를 보면 전문가들은 다 안다”, “이런 용접상태를 보고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면 그는 과학계에 계속 발 담그고 있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물론 자신이 보기에 동료 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논쟁을 하면 용접불량이 있다고 시인할 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을 한자리에 모여놓기 위해서는 “언론”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지대한 역할을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은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이내 묻히고 만다.

참여연대도 문제 제기하는 과정에서 수 차례 기자들을 만나고 협조를 구했지만 기자들은 “예산 낭비액이 얼마냐? 그렇다면 사업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있느냐” 하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다. 기자들, 더 나아가 일반인들이 원하는 것은 평이한 주장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런 능력이 기자든, 시민단체든 서로에게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반면에 「과학신문」처럼 한정된 독자들을 상대로 한 “전문지 “의 관심은 큰 힘이 되었다. 흔히 지역운동가들은 중앙 일간지와 방송에 소외감을 느낀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유력한 진보적 지역신문이 있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과학기술 영역에서 발생하는 이런 문제제기가 활성화되고 해결되기 위해서는 전문지들이 좀더 활성화되는 것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을 검토하면서 과학기술부와 국가핵융합연구개발위원회의 프로젝트의 감독의 허술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보자의 주

장대로 도체에 용접 불량이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용접의 허용기준치”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애초부터 그런 것이 없이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사업 종료를 앞둔 1년 전까지(이 사업은 95년에 시작해서 2004년 12월에 종료된다)도 초저온에서 도체가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도체 테스트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초 올 9월 예정인 실험이 계속 연기되어 내년 8월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1000원 짜리 신형 전구를 만드는 과정도 「샘플 제작 → 발생한 결함의 원인을 규명 → 결함을 보완하여 샘플 재생산 → 결함보완검증 → 샘플성능 시험 → 본 제품의 대량 생산」등의 순서를 밟는데 하물며 2500억 원이 투자된 도체제작에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삼성, 기초과학지원연구원, 과학기술부는 한결 같이 “이것이 과학기술계의 관례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답변만을 되풀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료 검토과정에서 2002년 6월의 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에서 초전도 자석분야에 대한 2단계 사업평가를 진행하면서 ‘성공적인 자석 시험 결과를 전제로 한 A등급”이라는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까지 초전도 자석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사실상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결국 3단계 사업은 진행이 되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의문은 한달 후 국가핵융합연구개발위원회의 회의록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위원회의 몇몇 위원들이 이러한 평가를 “초전도 자석에 대한 우수한 평

가”이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3단계 승인을 해주었던 것이다.

얼핏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프로젝트 관리 규정이나 운영이 실제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견제장치 없는 자율적인 사업운영”이의 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관료에 의해 과학자들의 창의적 사고와 자율성이 통제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과학현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단계별 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과학기술 사업의 특성상 매년의 평가보다는 사업의 목표가 변경되는 단계별 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단계별 평가의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는가 이다. 특히 한국 과학사회의 협소함을 고려할 때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인력풀이 협소하다보니 “서로 봐주기식”으로 진행할 위험이 있다. 앞서 언급한 국가 핵융합연구개발위원회의 부실 평가 원인도 이에 있다. 실제로 위원장은 1단계 사업의 과제 수행자였고 또 다른 위원은 2단계 사업의 전문가 소위원회의 위원장, 현재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기업체 소속 임원들로 이들은 사업이 지속여부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경우를 공직윤리에서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라고 하는데 바로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 이해충돌을 해소할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 사업을 자신이 평가하는 꼴이니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겠는가? 프로젝트 진행의 “민주적 운영”도 생각해볼 거리이다. 사실 확인과정에서 우리는 그 동안 사업단 내부에서 사업책임자의 독단적인 운영에 많은 연구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과 이들 중 일부는 직접 문제제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번번이 과제 책임자나 사업단장에 의해 묵살되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업 운영에 있어 과제책임자이 자율성과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일부의 지적처럼 참여연대가 ” 사정도 모르면서 과학자들의 사기를 죽이는 일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는 비판은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 식의 고민이 이어졌다.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자율적인 운영도 중요하지만 국가예산을 사용하는 만큼 그에 걸맞는 책임성(accountability)과 투명성(Transparency)의 선은 지켜주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예컨데 이 사안처럼 비록 사업단장이나 과제 책임자가 자신의 운영방법과 다르더라도 그 문제제기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만한 문제라면 이 사실은 과학기술부나 국가핵융합 연구개발위원회가 이 사실에 대해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보고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원하는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책임을 추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와 같은 기본적인 지침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이 문제를 부패방지위원회에 신고하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자나 관료들 “정서”나 “문화”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 만연해있는 “하면 된다”의 논리에 과학기술계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문제제기 과정에서 우리가 만났던 대부분의 과학자와 관료들은 연구개발사업(R&D)과정에서 감수하는 “위험”(risk)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따르는 무모함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운영해도 되는 것이냐”하는 질의에 대해 이들은 ‘기술개발 사업은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진행해야 한다”라거나, “2500억 원이래 봤자 다리 하나 짓는 비용이다. 이 정도 비용 투자로 핵융합기술에 진전이 있다면 뭐가 문제냐, 가뜩이나 이공계 기피니 뭐니 해서 과학기술자들의 사기가 위축되어 있는데 이런 문제제기해서 되겠냐”는 답변을 보내왔다. 또 외국에서 일을 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 미국에서라면 이런 독단적이고 주먹구구식의 운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안 되는 것이 한국에서는 가능한가?” 정서나 문화의 차이 아니고서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어 보였다. “혈세”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지 못하는 과학자윤리(Scientist Ethics)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이 사안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제보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참여연대 주장의 사실 여부를 가늠해줄 결정적인 기회인 자석실험이 내년 8월로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이를 둘러싼 양편의 지루한 논쟁은 계속될 예정이다. 감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제보내용이 사실로 확인되어 더 이상 예산낭비의 위험을 줄이고 관련 책임자들이 이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할 듯 하다. 아울러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예산감시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과학기술예산에 대한 통제와 과학기술사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최한수 |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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