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4-28   1743

“영화 속 과학기술 이미지”와의 질긴 악연, 그리고 DVD를 위한 “변명”

연재를 시작하며

<편집자 주>

이번 호부터 DVD로 출시된 영화들에 나타난 과학기술의 모습을 “과학기술과 사회”의 시각에서 조망해 보는 연재 칼럼을 싣는다. 이 칼럼은 시민과학 이 읽기에 너무 딱딱하고 어렵다는 독자들의 불만에 대해 뭔가 좀 “말랑말랑한” 꼭지를 새로 만들어보자

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으며, 집필은 김명진 회원이 맡기로 했다. 이번 연재분에는 본격적인 연재에 들어가기 전에 칼럼의 문제의식을 소개하고 DVD에 대한 기초지식을 담은 도입격의 글을 싣는다. 앞으로 이 연재칼럼이 중등 과학교육이나 대학의 교양 STS교육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가 칼럼을 맡게 된 “역사적 맥락”과 문제의식을 조금 밝혀둘까 한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처음 “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1995-96년까지 과학기술운동과 영화운동(주로 수용자운동으로서)에 모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1996년 봄 서강대 제2대학에 개설된 과학기술강좌에서 그런 특기(?)를 살려 이 둘을 접목시키는 강의를 한번 해보라는 제안을 선배로부터 받은 것이 “악연”의 시발점이 되었다. “과학기술과 사회(STS)”라는 분야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아직 생소하게 여겨지고 있던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영화를 매개로 얘기를 풀어가 보면 어떨까 하는 소박한 생각의 발로였지 싶다. 개인적으로 과학사·기술사 쪽 공부를 하면서 영화 속 과학기술 이미지를 분석한 글들을 몇 개 들춰본 적이 있었고 국내에 출시된 SF영화들은 제법 많이 보았다고 자부하던 터였기 때문에 그 제안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몇 년 넘게 필자를 괴롭힐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악연”이 본격화된 것은 1998년이었다. 1997년 말에 과학기술민주화를위한모임(과민모, 현 시민과학센터)이 생기면서 참여사회아카데미 시민강좌에 과학기술강좌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 강좌를 맡을 인원으로 필자가 “차출”되었던 것이다(이 때에도 영화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만만한” 주제라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_-). 그리고 당시 과민모 학생사업팀(“강한모임”)에서 준비했던 대학순회 과학기술강좌에서도 그 주제는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 이런 상황은 1999년까지 계속되어 필자는 졸지에 이 주제에 관해 “전문가 아닌 전문가”로 찍혀 버렸고, 1998-99년의 2년 동안 적어도 5-6차례 이상 똑같은 강연을 반복해야 했다(필자의 개인 홈페이지 http://phps.snu.ac.kr/people/walker71에 가보면 당시 이 주제를 가지고 뭔가 쓸만한 얘기를 만들어 보려 했던 몸부림의 “잔해”

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2000년 이후에는 대중강좌 사업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강연에서 매번 뻔한 얘기를 되풀이해야 하는 난감함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딴에는 아쉬움이 남았던 모양인지, 그 이후에도 이 주제에 관한 책들을 계속 모으는 한편으로 짧은 글들을 꾸역꾸역 써댔는데, 이번에 지면을 통해 또 영화 속 과학기술 이미지에 관한 칼럼을 쓰겠다고 자청한 것을 보면 아직도 얘기할 거리가 남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칼럼에서 연재할 글들이 기반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기본적으로 필자가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다시말해 그간 별로 발전이 없었다는 얘기다.–;;; 과거 필자의 문제의식은 {진보의 패러독스} (당대, 1999) 에 수록된 [대중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에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 재론은 피한다). 필자는 STS의 문제의식을 소개하는 손쉬운 매개로 영화를 이용하는 실용적 쓰임새 말고도, 영화 속에 나타난 이미지들이 과학

기술에 대해 일반대중이 갖고 있는 생각의 일단을 보여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불행히도) 여전히 믿고 있다. 영화라는 “텍스트”와 그 제작과 소비를 둘러싼 다양한 “컨텍스트” 사이에 단순한 인과관계를 상정할 수는 없지만, 영화매체가 다른 여러 매체들과 함께 작용해 대중의 과학이해(PUS)와 중요한 영향을 주고받

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었고 이는 지금도 그렇다.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좀더 많은 텍스트들을 가지고 분석함으로써 얘기할 “꺼리”를 늘려 보자는 것이 이번 칼럼을 쓰게 된 동기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칼럼 제목과 관련해 중요한 한 가지를 해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은 필자의 제안을 처음 들었던 편집위원회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칼럼 제목이 왜 “영화파일”도, “비디오파일”도 아닌 “DVD파일”인지 궁금해 할 것이다. 자, 다음 중에서 골라보시라. ① 필자의 집에 폼나는 고가의 DVD 시스템이 있음을 자랑하고 싶어서(필자의 제안에 대한 편집위원회에서의 첫 반응은 ‘오, 부르조아!’라는 외침이었다.–;)? ② 아니면 “수평해상도 500본”의 뛰어난 화질을 보여주기 때문에? ③ 그도 아니면 돌비 디지털(혹은 DTS) 5.1채널의 서라운드 음향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④ 혹은 VTR은 어차피 조만간 단종될 “한물간” 기술이니 미래지향적으로 DVD평을 쓰는 게 더 낫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흠, 답부터 밝히자면 아쉽게도 위의 보기들은 모두 틀렸다.

① 먼저 흔한 오해부터 짚고 넘어가자. DVD를 보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기기는 그리 고가가 아니다. 요즘 TV에 연결

하는 DVD 플레이어는 10만원대 중반이면 구입할 수 있고, 웬만한 집에는 스피커 달린 펜티엄급 PC 한 대쯤은 있을 테니 6만원 정도 하는 DVD-ROM만 갖다 달아도 DVD를 보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VTR 한 대 장만하는 것에 비해 그리 큰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중증 AV 매니아라면 기백만원을 들여 AV 리시버와 5.1 채널 스피커 패키지, 프로그레시브 스캔 대응 TV, 심지어는 PDP나 비디오 프로젝터를 장만하지 않으면 DVD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여기서 “제대로”의 기준은 매우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3년 전에 구입한 셀러론 466 PC

에 DVD-ROM(작년만 해도 9만원이 넘었다-_-)을 달고 3만원짜리 사운드카드와 6만원짜리 2채널 스피커를 새로 구입해 나름대로 “신경써서” DVD를 보고 있는데, 사실 이정도만 해도 제법 지출을 많이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②③ DVD에 대한 또하나의 오해는, 일단 좋은 “시스템”을 갖추기만 하면 “감동적인” 화질과 음질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맘먹고 큰돈을 들였으니 그에 상응하는 “값어치”를 기대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도 원본 필름 소스의 상태가 나쁘면 비디오에 비해 월등히 좋은 화질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음향 역시 원 소스가 스테레오나 모노라면 5.1채널 스피커를 갖추어도 소리는 프런트 스피커에서만 나온다(음악 CD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최근 1-2년새 개봉한 대작 영화의 DVD라면 화질, 음질이 탁월하겠지만 하드웨어에 맞춰 소프트

웨어를 고르는 우를 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필자가 소개할 영화들은 개봉한 지 오래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설사 복원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화질은 어차피 고만고만할 테고 음향 역시 모노나 2채널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니 화질, 음질 따져서 DVD를 선택한 것은 아님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이런 걸 기대하고 DVDP나 DVD-ROM을 구입했다가는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도 있다).

④ 마지막으로 VTR이 곧 단종되고 DVDP가 조만간 대세가 될 거라는 전망에 대해 한마디. 실제로 작년을 기점으로 전세계에서 판

매된 DVDP의 총 매출액이 VTR의 그것을 추월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고, 이에 편승해 (마치 음악감상 용도에서 CD가 카세트테이프와 LP를 거의 대체한 것과 마찬가지로) DVD가 비디오테이프를 대체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전망이 단기적으로 실현될지 여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CD가 카세트테이프나 LP를 대체한 것은 뛰어난 음질보다는 편의성과 내구성에서 장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인데, DVD는 영화감상 용도로 주로 쓰이기 때문에 편의성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장점이 없다(예컨대 CD로 음악을 들으면 중간에 있는 아무 곡이

나 바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 되지만 영화를 중간 챕터부터 선택해 보려는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테이프를 데크에 밀어넣기만 하면 끝나는 VTR에 비해 DVD는 초기메뉴니 서플먼트니 하는 복잡한 것들이 많아 “귀차니즘”을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했듯 DVD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부가적인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데, 기기들이 상당한 고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에게 이는 아직 그림의 떡이다.

결국 이 모든 사정을 감안했을 때, 적어도 당분간은 비디오테이프와 DVD가 공존하는 기간이 지속될 거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다시말해 DVDP는 비교적 쉽게 장만할 수 있지만 화질, 음질이 반드시 탁월한 것도 아니고 당장 VTR이 사라지는 것

도 아니라면, 현재 시점에서 굳이 DVD를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데, DVD로만 출시되는 영화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매년 출시되는 DVD 편수는 비디오테이프 편수의 3배에 달하며, 개중에는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출시된 적이 없는 영화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1930년대에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이나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1957년에 영국 해머 프로덕션에서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플라이>와 <타임 머신>, 그리고 H.G. 웰즈

원작의 <우주전쟁> 등을 한글자막으로 접할 수 있는 길은 현재로서는 DVD가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오래 전에 비디오 출시는 되었지만 이제는 대여점에서 찾기 어려워진 희귀 테이프들, 예컨대 핵발전소 사고를 다룬 <차이나 신드롬>이나 타르콥스키의 “철학적 SF” <솔라리스>, <스토커> 등도 비교적 쓸만한 화질로 구해볼 수 있게 되었고, 뭉텅 잘려나간 상태로 비디오 출시되었던 <필사의 도전>, <터미네이터 2> 같은 영화도 DVD를 통해 복원된 버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고전영화의 DVD 출시가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보면, 앞으로 DVD는 많은 “과학기술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물론 주위에서 아직 DVD 대여점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고, 이 때문에 1-2만원씩 되는 돈을 들여 DVD 타이틀을 구입하거나 인터넷

대여점을 이용해 번거롭게 우편으로 DVD를 빌려보아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상당부분 장애가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장은 이것이 특정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을 어쩌겠는가. 머지않은 장래에 DVD 대여가 지금의 비디오테이프 대여처럼 활성화될 것을 기대하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주절거리며 쓰다보니 불필요한 사설이 길어졌다(뒷부분이 본의 아니게 너무 길어져 주제넘게 무슨 DVD 강좌처럼 되어버렸는데 양해

를 구한다(–)(__)(–)). 이로써 왜 필자가 “영화 속의 과학기술 이미지”라는 주제를 아직도 부여잡고 있는지, 왜 DVD라는 매체를 제목에 굳이 집어넣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설명이 되었으리라고 믿고, 다음 연재부터 “과학기술 영화”들의 소개 및 분석에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김명진 | 시민과학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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