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 예고된 혼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대로 된 생명윤리법을 만들어야 한다.

작년 중반부터 인간복제회사 클로네이드와 이탈리아 안티노리 박사가 경쟁하듯 예고하던 복제인간이지난 12월 26일 탄생했다. 복제인간의 탄생은 예고 당시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 ‘인간도 복제할 수 있다’는 현실로 다가온 악몽은 전세계를 더욱 더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5년간 생명윤리법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채 차일피일 입법을 미뤄오던 정부는 ‘인간복제’라는 현실 앞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바쁜 모습이다.

검찰은 혹시라도 국내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복제 사건을 막기 위해 현행 의료법상의 위반 행위를 찾아내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지금으로서는 ‘의료법상의 의료인의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나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으로 수사를 진행시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검찰은 복제인간을 탄생시킨 클로네이드에 세포융합기를 납품했다고 하는 국내 벤처기업인 바이오퓨전텍사의 대표와 클로나이드 한국지부 관계자에게 출국 금지 명령을 내리고 조사를 진행중이다. 검찰은 한국인 대리모에 체세포 복제 수정란을 착상했다는 주장의 기자회견을 토대로 관련자들을 조사했으나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동안 생명윤리 법안을 관련 부처의 의견 조정이라는 이유로 미뤄왔던 정부 역시 부산하기는 마찬가지다. 2002년, 배아복제 허용 여부에 대한 이견으로 과기부와 복지부는 ‘줄기세포연구등에관한법률(안)’과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이라는 서로 다른 내용의 법안을 가지고 대립해 왔다. 부처간의 이견은 국무조정실의 조정을 통해 조정되는 듯 했으나 과기부의 반대로 입법이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배아복제 허용을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들은 ‘당장 위협이 되는 인간복제를 막을 수 있는 법을 먼저 만들고, 논란이 되는 문제는 차후 논의하자’라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종교계에서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배아를 실험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시민 사회단체들 역시 과기부와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에 반대했다. 이들 주장은 지난 몇 년간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무시한 것이며 배아복제 허용은 인간개체복제로 바로 이어질 수 있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시민 사회단체들은 과기부 중심의 법안이 포괄적인 내용이 아닌 개체복제와 배아연구만을 다루고 있는 것에도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 급기야 복제인간의 탄생이 시간을 다투어 예고된 지난 11월, 과기부는 생명공학 육성법에 인간복제 금지 조항을 삽입하는 형태로 법을 개정할 계획을 발표했다. 생명윤리법제정 공동캠페인단은 이에 반발해 국회에 독자 법안을 상정하기도 했다. 또한 김홍신 의원을 포함한 여야 의원 88명은 기존의 보건복지부안을 수렴한 형태의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맞서 그 동안의 과기부 주장과 비슷한 ‘인간복제금지및줄기세포연구등에관한법률(안)’도 12월 31일 이상희 의원 외 25명이 제출한 상태이다.

한편 인간복제를 막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논의도 현재 유엔에서 진행되고 있다. 클로네이드사가 인간복제를 성공시키기 위해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나라들에서 실험을 진행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복제의 위험은 이제 일국적인 차원에서의 규제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현재 유엔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은 개체복제금지만 일단 협약에 규정하고 치료용 복제는 별도로 검토하자는 독일, 프랑스안과 모든 인간복제를 금지하자는 미국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단계적 접근을 취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의 입장도 치료용 배아복제 등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협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각국이 모라토리엄이나 금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개별 국가들의 입법 조치를 보면 배아복제를 허용하고 있는 영국을 제외하고(이 경우에도 이종간 핵이식은 금지)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등이 현행법을 통해서 배아복제까지 금지하고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지난 몇 년간의 사회적 합의로 나온 우리 나라의 법안이 외국에 비해 강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일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그 동안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그대로 반영한 법안을 하루 빨리 제정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확정될 법안은 개체복제와 배아연구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의 다른 영역에 대한 규제까지 담긴 포괄적인 것이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된 ‘시험관 아기’ 시술이 대규모로 증가함에 따라 많은 수의 인간배아가 생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법적인 관리와 규제가 전무한 상황이다. 불임 클리닉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인간배아의 생산, 보관 및 폐기 등에 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인간배아와 난자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인간개체복제만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실효성이 없으며, 인간배아 연구의 경우에도 윤리적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개체복제와 줄기세포연구만을 다루는 법안은 부적절하다. 인간유전정보에 대한 규제도 포함되어야 한다. 일부 바이오벤처들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유전자검사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롱다리 유전자’, ‘지능(학습) 유전자’, ‘비만 유전자’, ‘호기심 유전자’ 등의 상업적인 유전자검사에 대해서 의학계 및 보건의료단체들은 심포지엄 등을 열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었다. 또한 인간유전자정보를 대규모로 보관·관리·이용하는 유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가 공공기관과 사적기관에 의해서 구축되고 있으며, 이런 정보를 이용하여 개인들의 차별할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규제도 전무한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나라는 인체와 관련된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개체복제만 막고 나머지 문제는 시간을 두고 차후에 논의하자’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번에 제정될 법안에는 인간복제를 비롯하여 배아보호, 유전자 검사 및 유전정보보호, 유전자 치료 규제,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설치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공학감시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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