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7-07   1478

유전자연구의 법적 · 사회적 의미

Ⅰ. 들어가며

멘델에서부터 시작된 유전학에 대한 연구는 이제 인간유전학에 대한 연구로 그 중심이 옮겨왔다. 1960년 이후 생물학자들은 생물의 유전체(genome)에 대한 연구를 하여 왔는데, 1980년대 이후로는 유전체의 염기서열에 대한 물리적 지도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유전자변형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10 여 년간의 국제적 연구프로젝트로 시작된 인간유전체연구(Human Genome Project)의 결과가 발표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생명과학기술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인간유전자에 대한 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질병에 대한 예방 및 진단, 그리고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간유전체연구 및 인간유전체기능연구1) 유전자검사의 기법을 더욱 발달시키고 새로운 유전자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과 정보를 제공할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개별화된 의학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의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유전학 연구에 대한 이와 같은 기대와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위험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유전학의 발달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위험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원인들에 의하여 일어날 수 있다. 첫째, 인간유전학에 대한 지식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의료인들이나 연구진들도 그 지식의 증가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이로 인하여 의료인들이나 연구진들이 일반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 일반인들도 인간유전학에 대한 많은 오해와 사실에 기반하지 아니한 기대를 함으로 인하여 위험이 야기될 수 있다.2) 세 번째로 인간유전학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고 이것이 개인의 유전정보분석과 결합되게 되면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유전정보로 인한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모든 과학기술의 발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유전학에 대한 연구도 지나친 기대와 많은 우려를 동시에 안고 이루어지고 있다. 이하에서는 인간유전학의 법적·사회적 의미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인간유전학의 사회적·법적 의미

인간유전학은 멘델 이후 발달하고 있는 유전학적 지식과 기법을 인간에 적용하는 것이다. 인간유전학의 대표적인 응용기법인 유전자검사는 개인 혹은 특정집단의 유전자를 분석함으로써 그 개인이나 집단의 질환에의 이환가능성 혹은 특성들을 알아내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 유전자검사는 그 시행의 목적에 따라 대개 네 가지 정도로 유형화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진단목적의 유전자검사이다. 진단목적의 유전자검사는 증상에 기반한 진단을 확증하기 위하여 개인의 유전자에 대한 검사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의 유전자검사는 예측유전자검사와 선별유전자검사이다. 예측유전자검사는 어느 개인 자신 혹은 그 자녀들에 대하여 이미 인식된 장래의 위험을 확증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전자검사이다. 신생아에 대한 선별유전자검사, 생식목적의 유전자검사, 늦은 나이에 발병하는 유전질환에 이환될 가능성이 있는 증상 없는 개인들에 대한 유전자검사 등이 예측유전자검사의 일종이다. 또한 개별적인 약물치료들에 대한 반응을 미리 예측하기 위한 약리유전학적 검사도 예측유전자검사의 일종이다. 유전자검사기법들이 더욱 발전하면 미래에는 특정한 환경적 요인들에 대한 개인들의 감수성을 결정하기 위하여 하는 유전자검사도 예측유전자검사의 일종으로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유전자검사의 세 번째 유형은 연구목적의 유전자검사이다. 수술 중 채취된 잔여조직이나 연구목적으로 획득된 혈액 등을 이용하여 인간유전학적 연구를 시행할 수 있다. 낭포성 섬유종이나 헌팅턴병과 같은 희귀한 유전질환들이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유전자와 질환과의 연관성이 밝혀진 경우이다. 유전자검사의 네 번째 유형은 개인식별목적의 유전자검사이다. 각각의 개인들은 독특한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DNA변이체들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 개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와 같은 개인식별목적의 유전자검사는 범죄현장조사를 포함한 법의학적 검사, 친자감별검사, 그리고 개인들간의 가족관계를 확인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유전자검사는 그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분석되어지는 유전자의 부위와 기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유전자검사의 유형에 따라서 윤리적 고려사항들과 법적 고려사항들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어느 유형의 유전자검사이든 결국 인체로부터 획득되는 시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시료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유형의 유전자검사를 할 경우에는 개인에 대한 많은 유전정보를 알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하여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되는 등 유전정보의 오·남용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따라서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시료에 대한 관리가 보다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유전체에 대한 연구는 아주 단순화하여 말하면 유전자검사와 데이터베이스가 결합된 것이다. 즉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유전정보를 유전자분석을 통하여 알아낸 후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인간의 유전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시도가 인간유전체에 대한 제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유전체에 대한 연구, 나아가 최근에 이루어지는 많은 인간유전학에 대한 연구는 유전정보은행3)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유전정보 및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시료들이 하나의 장소 혹은 하나의 시스템 내에서 보관·관리될 경우에는 유전정보 내지 시료의 유출 등 오·남용의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절한 관리 및 보안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4)

인간유전학에 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주제 중 하나는 유전자결정론이다. 즉,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인간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진 존재라는 믿음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5) 특히 유전자결정론은 인간유전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와 결합하여 유전자의 역할에 대하여 지나치게 과대평가 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 및 유전자에 기반한 사회정책의 시행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질환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유전자결정론이 영향을 줄 수가 있는데, 특정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곧 특정 질환에 이환된 것이라고 오인하거나,6) 혹은 역으로 특정 유전자의 부존재가 곧 그 질환에 이환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사고를 근거로 보건정책이 유전자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의 경우 사회적 요인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가 특정 유전자를 보유하였기 때문에 알코올중독 혹은 마약중독에 이환된 것으로 보아 그들을 격리하는 조치 이외에 아무런 사회적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7)

유전자검사를 통하여 얻어지는 결과는 결국 시료를 제공한 개인의 유전정보이기 때문에 그 개인의 유전정보가 공개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유전자검사가 생식의학과 결합될 경우에는 배아의 폐기나 태아의 낙태 등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8) 그리고 유전정보를 이유로 한 보험관계나 노동관계에서의 차별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9) 따라서 유전정보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시급한 일이다.10)

인간유전학 연구에 있어서의 또 다른 문제는 인간유전학 연구의 재료들이 인간으로부터 획득된 시료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국 인간유전학 연구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유전학 연구는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할 위험이 있다. 인간유전학 연구로 인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료획득의 적절성, 피검자의 동의, 연구과정에서의 시료취급의 적절성, 시료관리 및 처리·폐기의 적절성 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인간유전학의 발달로 인한 여러 사회적·윤리적·법적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자율적 규제와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인간유전학이 극히 전문적인 분야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연구자들의 자율적인 규제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겠지만, 규율은 규율대상의 현실상황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인간유전학으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이 매우 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적 규율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인간유전학의 연구 및 그 결과의 이용에 대한 적절한 법률이 빠른 시일 내에 마련되어야 한다. 그 동안 복제문제가 중심이 되어 논의된 생명과학에 대한 법률이 현재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마련되어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의 제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11) 하지만 여러 단체들의 상이한 가치관 및 이해관계로 인하여 아직도 난항을 겪고 있다.12) 하루 빨리 입법이 이루어져 보다 투명하고 적절한 절차 하에서 인간유전학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물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Ⅲ. 나가며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은 언제나 시행착오를 겪어왔으며, 또한 시행착오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점은 인간유전학을 비롯한 생명과학기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생물학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과학기술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수행하여야 하고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물리학 내지 화학으로 대표되던 과거의 과학기술과는 다른 면이 있다. 인간유전학을 비롯한 생명과학기술에서의 시행착오는 곧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13) 따라서 보다 확실하게 안전성이 담보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과학의 연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은 아무런 규율 없는 상태에서 마음대로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주장만큼이나 위험하다. 그와 같은 주장은 결국 연구자들을 설득할 수 없으며 아무리 통제하려고 하여도 연구자들은 더욱 깊은 지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은 누구도 원치 않는 상황일 것이며 그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예방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구자들과 인문사회학자, 그리고 일반시민집단 간의 상호이해에 기반한 정직한 토론과 합의이며, 나아가 연구자집단 및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의 개발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인간유전학 연구의 원치 않는 부작용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 또한 필수적인 고려사항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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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는 인간유전체연구에는 참여하지 아니하였지만,일부

병에 대한 인간유전체기능연구는 현재 수행하고 있다.

2) 인간유전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주장은 인간유

전학의 사회적,윤리적,법적문제를 논의하는 일부 논자들에 의

하여서도 일어나는 오류이다.

3) 이 글에서는 유전정보은행이란 용어를 유전자분석의 결과인 유

전정보의 보관,관리하는 기구뿐만아니라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시료에 대한 보관,관리를 하는 기구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기로 하겠다.

4) 특히 국가기관에 의하여 개인의 유전정보가 오,남용될 경우에

는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5) 유전자결정론의 대표적인 예가 우생학이다. 우생학의 역사에

대한 개략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Matt Ridley/하영미,전성수,이

동희역, 게옴, 김영사, 2000, 342-359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6) 실제로는 단일 유전자질환 중 몇 몇을 제외하고는 특정 유전자

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질환이 유발되지는 않는다.

7) 아직까지는 단일한 유전자에 의하여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

이 야기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8) 그렇다고 하여 모든 산전유전자검사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의미

는 아니다. 단일 유전자질환 중 질환을 야기하는 확율이 거의

100%이고 그 결과가 상당히 중한 의학적 문제들을 야기하는 경

우에는 유전자검사가 허용될 필요가 있다. 실제 몇 몇 유전질

환에 대해서는 고위험집단에 대한 산전유전자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9) 보험관계에서의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적 대우의 문제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10) 유전정보의 공개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는 법적 문제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정규원, ‘유전정보 보호에 관한 법적 고찰,’ 한

림법학FORUM 제10권, 2001, 61-77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11)<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에 대해서

는 정규원,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에 대한 검토,’ 법

과 사회 제22호, 2002, 281-295면을 참조하기 바란다.

12)필자는 개인적으로 현재 공개된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

에 몇 몇 보항이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3)미래세대에의 해악이라는 표현은 너무 먼 느낌이 있다.

정규원 | 한양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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