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10-05   1196

시민의 과학의 여러 차원들: 시론적 에세이

(번역) 김명진 | 우리모임 회원

(편집자주)

이번 호 기획번역에는 “시민과학(자)”이라는 용어가 쓰이는 다양한 용례와 의미들을 분석한 논문을 싣는다. 국내에서는 우리모임이 1998년부터 「시민과학」이라는 소식지를 내고 1999년 말에 명칭을 시민과학센터로 바꾼 이후 “시민과학”이라는 용어가 그리 낯설지 않게 되었고, 일본의 반핵운동가인 다까기 진자부로의 책 {시민과학자로 살다}가 소개되면서 “시민과학자”라는 말도 제법 쓰이게 되었지만, 아직 그 말뜻을 놓고 깊은 고민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던 듯싶다. 외국의 논의에 대한 소개이긴 하지만, 이 글의 번역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시민과학(자)”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이 논문에서는 (좁은 의미의) 시민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외국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국내 현실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논문의 전반부는 대중의 과학이해(PUS)와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짧은 리뷰로도 읽을 만하다.

시민의 과학자(civic scientist)라는 개념은 근래 들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대통령 과학자문위원과 국립과학재단 이사장을 지낸 닐 레인에 따르면 시민의 과학자는 ‘과학과 사회에 관한 대화 속에 대중을 참여시키는’ 사람인데, 레인은 이런 역할이 ‘탈냉전 세계의 새로운 과학 의제를 개발함에 있어 결정적이고 없어서는 안될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Lane 1998). 국가과학위원회에서 작성한, 공익에 봉사하는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최근 보고서 역시 이와 같은 요구에 호응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과학자 및 엔지니어 공동체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과학기술정책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았고,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시민의 과학자가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NSB 2000a).

이와 연관되지만 서로 구분되는 여러 용어들, 예컨대 시민 환경운동(citizen environmentalism), 시민과학(citizen science), 민주적 과학(democratic science), 민중과학(people”s science) 등도 연설, 보고서, 책, 잡지 기사 등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종종 시민의 과학(civic science)이라는 포괄적인 제목 하에 뭉뚱그려지고 있는 이들 용어들은 서로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과학자와 대중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 주제에 관한 문헌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시민의 과학자 혹은 시민과학자(citizen scientist)라는 용어들이 일관성 있게 사용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시민의 과학자”라는 용어는 ― 레인의 정의(Lane 1998)에서 그랬던 것처럼 ― 과학의 인지도를 제고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에 관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반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을 공공영역으로 끌고들어가는 과학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2001년 연례모임에서 개최된 ‘시민의 과학자의 양성’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 초점을 맞춘 것이 바로 이런 의미였고,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의

이번 특집호의 주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런 정의에 따르면 시민의 과학자는 일반 대중 성원들, 그 중에서도 과학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시민과학자 내지 시민 지원자(citizen volunteer)로서 과학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구분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런 명명법을 따르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또 다른 구분은 “시민의 과학”의 성격 및 범위와 관련된 것이다. 이 용어는 종종 사회적 쟁점이라는 맥락 속에서 과학 내용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지칭하며, 이는 과학자와 일반 청중간의 상호작용의 일부로 이해된다. 예컨대 스노우(Snow 1996)는 ‘시민의 과학의 목표는 과학이 어떻게 기능하며 어떻게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려 주고, 이를 통해 왜 과학이 대중의 관심과 지원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와 같은 함축은 사회 전체의 혜택을 위해 수행되는 과학 연구나 사회적 관심 쟁점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연구와는 구분되는데, 예컨대 과학자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팀

이 새로운 기술과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영향을 평가한 결과라거나 규제기구가 오염의 허용 수준을 결정할 때 참조하는 연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시민의 과학과 유사한 용어들은 시민들이 제안했거나 직접 수행한 과학 연구 ― 독립적으로 혹은 과학자들과 협력해서 ― 를 표현하기 위한 말로도 쓰여 왔다. 그리고 이 개념은 특정한 사회적 의제를 지지하는 과학자 대변자(scientist advocate)들이 수행하는 과학 활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논문은 시민의 과학 개념을 정의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을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이론적 맥락 속에 위치시켜 이를 개관해 보려 한다. 이 논문은 또한 공공영역에서 좀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촉진하기 위한 시도의 실제 사례도 몇 가지 제시할 것이다.

과학과 ‘대중’간의 관계

시민들이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과학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 동안 거의 하나의 신조로 굳어져 왔다. [이러한 신조에 따르면] 과학적 소양(scientific literacy)은 시민들, 국가들, 그리고 과학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민들은 [과학을 잘 이해함으로써] 다양한 이익을 얻는데, 첨단기술 분야에서 보수가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게 된다거나 더 나은 개인적·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거나 더 광범한 인류 문화에 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러한 몇 가지 예들이다. 국가는 경제, 국력, 국가 위신이 강화되는 이익을 얻는다. 과학과 과학자들이 얻는 이익에는 연구자금, 인력, 사회적 권위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다는 것이 포함된다(예를 들어 Bodmer 1985; Eden 1996; Gregory and Miller 1998; 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Council 2000; NSB 2000b; What is public understanding for? 1995 등을 보라).

기본적 인권과 민주적 이상이라는 규범적 고려 역시 시민들이 과학기술 관련 정책결정에서 더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좀더 실용적인 견지에서 시민들이 참여해야 할 필요를 인식한 이들도 있는데, 인기가 없는 정책을 실행에 옮기려는 시도는 광범한 항의와 통치기구에 대한 신뢰의 감소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ESRC Global Environmental Change Programme 1999; Rowe and Frewer 2000; Slovic 1993).

그간의 연구들은 미국에서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에 대한 지지가 대체로 높게 나타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소양’의 수준은 여전히 매우 낮게 나타났다(NSB 2000b). 또한 과학 및 공학 전공 학생 수의 점차적인 감소, 과학과 공학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여성 및 소수집단의 수적 열세, 대중을 상

대로 하는 과학 기사의 양적 감소, 그리고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장담할 수 없는 정치적 분위기 등이 우려할 만한 근거들로 언급되어 왔다(Greenwood 1996; Lane 1997; Neidhardt 1993; NSB 2000a;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1997; Pellechia 1997). 이와 같은 우려들로 인해 적어도 일각에서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좀더 접근하기 쉽고 책임성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하며, 자신들의 연구가 사회에 가져올 혜택과 위험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대중의 과학이해와 과학적 소양

대중의 과학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와 과학적 소양의 수준에 대한 우려는 최근 들어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결코 아니다. 미국의 과학자 공동체는 적어도 한 세기 이상에 걸쳐 대중적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해 왔다(Bucchi 1998; Lewenstein 1995b; Shamos 1995). 미국에서의 대중적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포괄적으로 리뷰한 르원스테인의 글(Lewenstein 1994)은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매년 수십억 달러의 돈이 지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과학이해가 더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시민의 과학은 여기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은 부분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즉, 과학적 소양을 갖춘 대중이 바람직하다는 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표하고 있는 반면, 대중이 알아야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동의된 부분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과학적 소양이라는 용어는 지난 40여년 동안 매우 다양한 개념화와 정의들을 양산해 왔다. 어떤 이들은 과학적 소양이 더 많은 과학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다른 이들은 구체적인 과학 사실들을 아는 것보다 과학적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훨썬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또 다른 이들은 과학적 소양 속에 과학의 제도적 특성이 갖는 사회적 함의에 관한 지식 ―

‘후원, 조직, 통제’의 형태들을 포함해서(Wynne 1992, 42) ― 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논의의 개관은 Bauer and Schoon 1993; Bauer, Petkova, and Boyadjieva 2000; Laugksch 2000; Maienschein et al. 1999; Popli 1999; Shamos 1995 등을 보라).

미국에서는 과학적 소양을 정의하고 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80년대에 AAAS가 “프로젝트 2061″을 발족시켰다. AAAS뿐만 아니라 미국과학아카데미와 국립과학재단 역시 과학적 소양이라는 당면 문제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한 성명들은 과학적 소양 문제에 관해 합의점을 마련해 보려는 마이엔샤인과 그 동료들의 연구를 촉발했지만, 이들은 과학적 소양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여전히 ‘숨은 모호성과 심지어 골깊은 논쟁’이 남아 있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Maienschein et al. 1999, 77).

대중의 과학이해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왔다. 미국 정부가 조직한 부처간 실무그룹(FCCSET/CEHR PUNS Working Group)의 연구에 따르면, ‘”이해”란 인식(appreciation), 정보에 대한 접근, 분석 능력,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개념’이다(PUNS Working Group 1993, Lewenstein 1994, 134-35에서 재인용). 윈 역시 이해가 여러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개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는 과학에 관한 정보, 과학의 인식, 과학에 대한 지지, 과학에의 관심, 과학과의 동화(同化) 등이 포함된다(Wynne 1992; 1995). 르원스테인은 2차대전 이후 대중의 과학이해 증진을 위해 이뤄진 대부분의 노력

들이 실은 과학지식의 증진보다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지지를 구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인 활동이었다고 주장했다(Lewenstein 1992).

또 하나의 유용한 구분은 ‘과학 일반(science-in-general)’에 대한 이해 내지 인식과 ‘특수한 과학(science-in-particular)’에 대한 이해 내지 인식 사이의 구분이다(Durant 1993; Michael 1992). 기존의 연구들에 따르면, 과학지식의 수준과 과학 일반에 대한 지지의 증가 사이에 약한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과학 이해의 증가는 과학 연구에 대한 좀더 차별적인 태도[과학 일반을 지지 혹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연구의 성격에 따라 지지-반대의 입장을 달리하는 태도 ― 옮긴이]와 연관되기도 한다. 에반스와 더랜트는 과학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논란이 되는 연구 영역에 반대하는 경향이 더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Evans and Durant 1995). 유럽연합의 또 다른 조사연구에서도 ‘이들 국가들에서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가장 나은 이해를 보유한 사람들은 과학이 일상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에 대해 가장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 역시 갖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Krebs and Kacelnik 1997, ESRC Global Environmental Change Programme 1999에서 재인용). 따라서 ‘과학을 알면 곧 과학을 사랑하게 된다’는 가정은 아무리 잘 봐 주어도 의심스러워 보인다. 결국 ‘대중의 이해를 과학에 대한 인지도, 인식 내지 승인과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들’과 대중의 이해는 사회 속에서 과학과 과학 제도의 역할에 대해 더 비판적인 관점을 갖는 것을 포함한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못된다

(Turney 1996, 1087).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모형들

대중의 과학이해와 과학적 소양의 개념이 다차원적이고 복잡한 것이라면, 과학자와 대중 성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중의 과학이해의 많은 초기 연구들은 ‘확산’ 모형에 근거하고 있었다. 과학기술 정보는 일반적으로 공식적 교육체계나 대중매체를 통해 대체로 수동적이고 단일한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Gregory and Miller 1998). 이 모형에서 시민들은 대체로 ‘채워져야 할 빈 그릇’, ‘바로잡아야 할 왜곡된 정신’, 혹은 기껏해야 ‘연구자금 지원의 필요성 때문에 설득해야 할 납세자’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이었다(Fayard 1992, 15). 이와 같은 ‘결핍’ 모형은 본질적으로 설득 모형이었

다. 즉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일반인들’이 ‘전문가들’과 비슷한 의견을 갖게 되었을 때 성공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많은 영역들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되고 있다(Logan 1991).

반면 최근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모형들은 상호작용적·맥락적 성격을 강조한다. 힐가르트너(Hilgartner 1990)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청중이 누구인지,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따라 정보가 그 형태를 바꾸는,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일련의 행위들로 사고하는 것이 더 이치에 닿는다고 주장했다.

르원스테인(Lewenstein 1995a)은 연속선상[이라는 일차원적 비유]을 넘어 이런 생각을 더욱 확장해,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형태들을 포함하는 원형 혹은 구체로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보았다. 노보트니(Nowotny 1992, 308) 역시 과학과 대중을 연결시켜 주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그물망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다양한 제도들이 생산해 낸 과학에 관한 정보들이 포함되는데, 대중매체, 공식적 교육체계, 박물관과 과학센터, 정부 프로그램, 비영리기구, 산업체 등이 그런 제도들이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시민들 역시 과학 정보를 만들어내 이를 그물망 속에 투입할 수 있다. 대중매체와 전문매체들(과학잡지 같은)은 이러한 그물망 모형에서 결절점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분명 할 수 있다. 정보는 또한 웹사이트나 전자게시판을 통해 공유될 수도 있다. 개인간의 통로를 통한 정보 교환도 과학적 주제에 관한 공공 견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Stamm, Clark, and Reynolds-Eblacas 2000). 따라서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문직업적 책임을 다양한 공공 포럼에 대한 참여를 포함하도록 확장해야 한다는 제안(Bodmer 1985; Lane 1996a, 1996b)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다양한 맥락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적·다차원적 활동’이라는 현재의 인식(Lewenstein 1995b, 359)과 부합하는 것이다.

그루닉이 예전에 제기했던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상황’ 이론(Grunig 1980) 역시 시민의 과학/시민과학이 대중의 과학이해 증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루닉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서 단일한 대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대신 폭넓은 범위의 청중들, 혹은 ‘대중들(publics)’이 상이한 주제 및 문제들에 대응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러한 대중 성원들은 여러 가지 요인들에 근거해 서로 다른 유형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참여하는데, 그런 요인들에는 그 주제에 대한 관여의 정도,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을 가로막는 제약요건들에 대한 인지 등이 포함된다.

그루닉에 따르면, 기존의 연구들이 과학 기사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있거나 그 정보가 자신에게 어떤 실질적·실용적 가치를 갖지 않는 이상 자신이 읽은 것을 거의 흡수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다양한 대중 성원들을 과학에 관한 대화에, 혹은 아래 설명할 바와 같이 과학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를 통해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다소의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과학/시민과학의 유형 분류

관련 문헌들을 검토해 보면 연설, 보고서, 책, 잡지 기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민의 과학과 연관된 용어들의 사용이 실로 혼동을 야기할 수 있음이 드러난다. 상이한 연설자들이 유사한 용어 혹은 심지어 동일한 용어(예컨대 시민과학자)를 써서 매우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경우들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소절(小

節)들에서 우리는 이들 용어들이 가장 널리 사용되어 온 몇몇 방식들을 파악해 이를 5개의 주요 소제목 하에 묶어서 특징을 정리해 보려 한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우리는 시민의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대체로 묶일 수 있는 활동 양식들에 해당하는 5개의 주요 개념들을 파악해 내었다. 이는 각각 시민의 과학자/시민의 과학, 시민과학자/시민과학, 오두본(Audubon)/시민 지원자, 시민-활동가(citizen-activist), 과학자-활동가(scientist-activist)이다. 아래에서 이런 양식들 각각에 대해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시민의 과학자와 시민의 과학

닐 레인(Lane 1996a)은 시민의 과학자에 대한 논의를 통해, 과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섬으로써 대중을 참여시킬 것을 권고했다. 그 방법들에는 뉴스매체를 통한 발언의 증가뿐 아니라 친구 및 이웃들과의 대화, 지역 로터리 클럽에서의 대화 등도 포함된다. 레인의 요청은 다른 과

학자들에게도 반향을 일으켰다. AAAS의 역대 회장들은 과학자와 대중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자주 발언해 왔다(AAAS 1997; Ayers 1998; Rowland 1993). 메리 울리(Woolley 1997)는 과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충분히 드러나 보이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지도자들이 과학자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연구가 지역사회의 삶의 질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화학회의 헬렌 프리(Free 1998)는 모든 화학자들이 적어도 하루에 한 사람씩과 화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어서 대중과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재단 산하 사회학·행동과학·경제학 분과장을 역임한 베넷 베르텐탈은 ‘모든 과학자들이 유능한 과학자가 되는 동시에 시민의 과학자도 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Azar 1999).

레인은 대중이 과학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믿긴 했지만, 반대로 과학자들이 대중을 더 잘 이해할 필요도 있다고 썼다. 레인에 따르면, 세상의 문제들 중 많은 것들이 ‘서로 중첩된 결과들의 복잡한 패턴’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기술적 해결책 이상의 그 무엇을 필요로 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시민

의 과학자는 과학을 단순히 대변하는 것을 넘어서 ‘말하는 법뿐 아니라 듣는 법도’ 배워야만 한다.

시민의 과학에 대한 다른 관점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연구하는 유르겐 슈만트에 의해 제기되었다(Schmandt 1998). 슈만트에 따르면 시민의 과학은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개선을 계획함에 있어 전문가들과 이해당사자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과정'(p. 63)이다. 슈만트는 발전의 여러 쟁점들에 관해 학제적인 과학자 팀이 전문가 평가를 수행함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목표, 선호, 우선 순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대중의 과학이해의 측면에서 슈만트 모형의 목표와 결과는 레인의 모형(Lane 1999)에서처럼 단순히 인지도와 인식을 촉진하는 것을 넘어서고 있다. 대신 슈만트 모형은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분석 능력이나 행동을 취하는 능력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차원들을 장려한다.

슈만트 모형은 세계은행이 지원한 프로젝트들에서 사용되어 왔는데, 여기서 시민의 과학 프로젝트는 ‘시민’ 팀과 ‘전문가’ 팀에게 서로 구조화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상호연결된 ‘쌍방향(two-track)’ 모형을 동원한다(HARC and Instituto Technologico y de Estudios Superiores de Monterrey 2000; Schmandt 1998). 이런 접근법이 가능하려면 ‘전문가들’ 중 적어도 일부는 필요한 기술적 정보를 이해당사자 팀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1989년에 창립되어 의료 및 보건 분야의 연구를 지지해 온 전미 연대조직인 리서치! 아메리카는 최근 데이빗 앤 루실 패커드 재단에서 5만 달러의 연구비를 받아 ‘”시민과학자”의 양성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시험하는’ 일을 했다(Research! America 2001). 리서치! 아메리카는 이 연구비를 과학자들이 대중과의 거리좁히기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조사하는 데 썼는데, 이는 곧 이 단체가 가진 시민과학자에 대한 정의가 위에서 언급된 레인(Lane 1998)의 시민의 과학자에 대한 정의와 매우 유사한 것임을 말해 준다.

시민과학자와 시민과학

시민과학자 및 시민과학과 관련된 문헌에서 나타난 개념들은 아마 우리가 연구 과정에서 조사한 개념들 중 가장 복잡한 것이었지 싶다. 이 용어들은 서로 상충되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위에서 설명한 리서치! 아메리카의 용법과는 대조적으로, 사회학자 앨런 어윈은 ‘시민과학’이라는 표현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했다(Irwin 1995). 어윈이 보기에 그 용어는 ‘시민들의 필요와 관심사를 도와주는 과학을 연상시킨다. . . . 이와 동시에 “시민과학”은 시민들 자신에 의해 개발되고 규정된 과학 형태를 의미한다'(p. xi). 이 중 후자의 의미는 어윈이 비록 “시민과학”이라는 용어를 쓰긴 했지만, 우리가 시민-활동가라는 소제목 하에 정리한 것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우리는 시민-활동가라는 개념을 시민들에 의해 발의된 과학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이러한 활동은 과학자들에 의해 감독되고 시민들을 자원 참여자로 모집하는 식의 연구 ― 우리가 시민 지원자라는 소제목 하에 정리한 것 ― 와는 구분된다.

기후과학자인 스티븐 슈나이더는 시민과학자라는 용어를 사회적 쟁점의 맥락 속에서 이용되는 과학적 주장을 평가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즉 비과학자)을 가리키는 의미로 썼다(Schneider 2000). 슈나이더의 관점에서 볼 때, 연관된 모든 과학적 복잡성을 [시민이]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민과학자는 과학적 주류견해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평가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슈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시민-과학자라는 말은 이런 딜레마에 직면할 때 일종의 모순어법이 된다. 그/그녀가 도서관에 드나들고 국가연구위원회 연구논문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평가서를 읽는 등 많은 노력을 기꺼이 투입할 의사가 없다면 말이다'(p. 140).

슈나이더가 사용한 시민과학자라는 용어의 의미는, 시민들이 자신과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는 과학 정보에 관해 배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크루거와 섀넌(Kruger and Shannon 2000)의 관념을 ― 똑같은 용어를 써서는 아니지만 그 취지에 있어서 ― 반영하고 있다. 크루거와 섀넌은 이런 생각을 더욱 더 밀고나가,

이를 시민들에 의해 개발되고 규정된 과학이라는 어윈의 시민과학 정의[그 중에서 후자의 의미 ― 옮긴이]에 비유한다. 그들은 이러한 노력을 ‘시민의 과학’이라고 불렀지만 우리는 여기서 시민과학자/시민과학의 범주 아래 집어넣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생각이 기본적으로 ‘자신들에게 중요한 사람과 장소들간의 관계'(p. 461)에 관해 배우는 시민들에 그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두본’ 모형/시민 지원자

미국 시민들은 백 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환경 모니터링에서 일익을 담당해 왔다. 미국 기상청은 1890년 이래로 지원자들을 훈련시켜 강우량과 기온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맡겨 왔다(NWS 2000). 오두본협회의 연례행사인 크리스마스 조류 계수(Christmas Bird Count)는 1900년에 시작되었다. 현재 이 행사에는 미국 전역에서 약 4만 5천 명의 지원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조류학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왔다(Bianchi 1999). 미국 수산청은 1954년 이래로 어류 개체군의 추적을 위해 지원자들을 이용해 왔다(Lee 1994). 코넬대 조류학 연구소는 미국오두본협회와 공동으로 현재 연중 내내 수만 명의 아마추어 조류 관찰자들을 참여시킨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Scully 1999). 양서류, 조류, 강과 호수, 포유류의 현황을 모니터하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들도 있다(예를 들어 EPA Office of Water 2001; REEF 2001b; NatureMapping Program 2000; USGS Patuxent Wildlife Research Center 2001을 보라). 환경감시협회 역시 시민들에게 과학 탐사에 참여하고 또 이를 위해 지원금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972년 이후 이 협회는 전세계에서 1,000건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후원했으며, 이를 통해 과학자들에게 5만 명 이상의 지원자들과 3,7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제공했다(Earthwatch Institute 2001).

이런 프로젝트들이 높은 수준의 질적 보증과 함께 ‘명백한 성공의 기록’을 이뤄냄에 따라, 일반 대중 성원들이 과학자들에 의해 발의되고 감독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런 형태의 시민과학은 점차 인기를 얻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Lee 1994; Ely 2000도 보라). 또한 과학자들과 정부 기구들은 시민 모니터링을 통해 연구비 부족 문제를 우회하면서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었을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EPA Office of Water 2001b; Pattengill-Semmens and Semmens 1998). 패튼길-세멘스와 세멘스에 따르면, 리프환경교육재단의 어류 계수와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참여자들 사이에 인지도의 증가와 자원 보호(resource stewardship)에 대한 이해 및 감각’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Pattengill-Semmens and Semmens 1998). 그들은 이와 같은 보호의 감각이 성공적인 자원 관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Bryant 1994; Putting data to use 1994; Studley 1999도 보라).

하트먼(Hartman 1997)이 지적한 대로 시민 지원자를 참여시키는 프로젝트들은 과학대중화를 위한 또하나의 통로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코넬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시민과학이 ‘대중과 전문 과학자들간의 협력관계’를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Cornell Lab of Ornithology 2001). 지원자들은 ‘참여할 기회, 과학자가 되어볼 기회, 탐구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자신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뭔가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REEF 2001a). 워싱턴주에서 수천 명의 지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중인 네이처매핑 프로젝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시민들을 ‘과학 활동 속에’ 참여시킨다(NatureMapping Program 2000). 그루닉은 어떤 주제에 많이 관여해 본 사람들이 그것에 관한 추가 정보에 노출되었을 때 가장 많은 내용을 배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Grunig 1980). 따라서 조류 관찰자나 스쿠버다이버 같은 애호가들은 시민과학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이로부터 뭔가를 배울 수 있는 특히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지원자들이 [별도의 요청을 받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코넬 연구소에 보낸 750통의 편지를 분석해 보면 이러한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듯이 보인다. 이 편지들은 지원자들이 과학의 과정에 관한 이해를 증진시키며 ‘과학적 사고’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Trumbull et al. 2000). 어떤 경우에는 대중의 견해가 연구 의제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까지 한다. 하트먼은 자신이 인터뷰한 환경감시협회의 수석 연구자들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지원자로부터의 피드백의 결과로 연구 프로젝트를 상당히 변경했다고 말하고 있다.

시민-활동가

우리는 시민-활동가라는 용어를 과학자들이 아닌 대중 성원들에 의해 발의된 프로젝트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 이러한 활동 범주는 위에서 설명한 시민 지원자의 활동과는 구분된다. 시민 지원자의 경우에는 과학자들이 감독하는 모니터링이나 여타의 과학 활동을 돕기 위해 대중 성원들이 모집되기 때문이다. 민중과학 혹은 대중과학(popular science)과 같은 용어들 역시 시민-활동가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관련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은 독성폐기물의 영향에 대한 역학 연구를 수행한 환경정의 운동의 경험에서 뽑아낸 것이 많다(Brown 1998; Di Chiro 1997). 이를 위해 브라운은 대중 역학(popular epidemiology)이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했는데, 그는 이것을 ‘일반인들이 과학적 데이터와 여타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전문가들이 지닌 지식과 자원을 감독하고 정렬시키는 과정’으로 정의한다(Brown 1992, 269). 그는 시민-활동가들이 종종 자신들이 그 과정에서 얻은 과학지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전문가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는 자신들의 새로운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활동가들은 전문 과학자들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활동가 집단은 전문적 연구 조력을 얻는 데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학에 기반을 둔 과학자에게도 참여를 촉진하는 유인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공동체기반 연구가 ‘통상적인 학문적 보상 구조’ 바깥에 위

치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Brown 1993, 7). 또한 브라운은 주 혹은 연방 당국에 맞서 시민들에게 조력을 제공한 과학자들이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로 행동한 데 대해 괴롭힘을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관련된 전문가들을 찾아 과학 및 과학자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시민들의 힘을 강화하는 공동체기반 방법에 대한 소개는 환경정의정보센터(舊 유해폐기물시민정보센터)에서 발간한 {전문가: 사용자 가이드 Experts: A User”s Guide} 같은 소책자에 잘 나와 있다(Clearinghouse for Environmental Justice 1985).이와 연관된 용어인 시민 환경운동은 지역의 특정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의 발의에 따라 시민, 토지 소유자, 정부 부서, 과학 전문가들 사이에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Landy, Susman, and Knopman 1999). 시민 역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프로젝트들 역시 필요로 하는 기술적 전문성을 얻는 데 있어 종종 어려움에 직면한다. 시민 환경운동가들은 연방 및 주 기구들과 대학들이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사회의 의사결정 필요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Knopman, Susman, and Landy 1999).

과학자-활동가

민중과학이라는 용어는 인도의 민중과학 운동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조직인 케랄라 샤스트라 사히탸 파리샤드(KSSP)에 의해서도 쓰이고 있다. 인도의 민중과학 운동은 1960년대에 과학자들과 과학교사들에 의해 첫발을 내디딘 이후 ‘민중의 과학적 소양을 향상시키고 과학기술의 성과를 민중의 기본적 필요와 연관시키는’ 작업을 해 왔다(Krishna 1999, 35). ‘사회혁명을 위한 과학'(Nanda 1997)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활동중인 KSSP는 ‘과학은 사회의 의식개혁과 변혁을 위한 강력한 도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Di Chiro 1997). 이 목적을 위해 KSSP는 자원 관리 프로젝트에 비과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면서, 연관된 쟁점에 대한 보다 더 완전한 이해를 위해 일반인 지식과 전문가 지식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다(Franke and Chasin 1995; Karan 1994; Nanda 1997). 이런 점에서 KSSP의 접근법은 앞서 슈만트가 제안한 것과 흡사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참여한 과학자들의 정치적 행동주의의 정도에서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급진과학운동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미국과 유럽에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Beckwith 1986). 군사 목적을 위한 과학의 이용에 환멸을 느낀 일부 과학자들은 사회적 필요에 봉사하는 과학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운동집단인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은 민중과학의 개념을 고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집단은 다양한 활동들을 벌였는데, 사회 속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을 비판하고, ≪민중을 위한 과학≫ 잡지를 발간하고, 기초적인 기술적 기능을 가르치고, 과학을 탈신화화해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과학의 영향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그런 예들이었다(Greely and Tafler 1980, 369).

과학자-활동가 조직들은 과학기술이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목적’에 초점을 맞출 것을 계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2001). 또한 과학자-활동가들은 많은 환경·소비자 감시집단에 속해 있는데, 이런 집단들 중 상당수는 연구를 위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출판물·회합·선거운동 등을 통해 연구 결과물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미국의 경우 1,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환경단체에 가입해 있는데(Lewenstein 1994), 이는 곧 이런 집단들이 많은 대중 성원들에게 중요한 과학 정보원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기술적 정보를 얻는 원천으로 대학, 국립공공기구, 산업체보다는 환경단체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도 있다(Haerlin and Parr 1999).

시민의 과학 모형들에 대한 토론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와 같이 상이한 시민의 과학 모형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중의 과학이해에 영향을 미친다. <표 1>은 위에서 개관한 시민의 과학에서 뽑은 몇몇 사례들이 이 논문의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대중의 과학이해의 어떤 차원들을 충족시키는지를 표로 만들어본 것이다. 대중의 이해의 차원들은 표의 윗줄에 열거되어 있는데, 왼쪽에는 인지도나 관심과 같은 더 소극적인 차원이, 오른쪽에는 분석 능력이나 행동을 취하는 능력과 같은 더 적극적인 차원이 위치하도록 점증적으로 배치했다. 이 표에는 과학 일반과 특수한 상황에 관련된 과학 사이의 구분도 포함시켰다.

시민의 과학의 네 가지 구체적인 사례 각각에 의해 가장 영향을 받을 듯한 대중의 이해의 차원들은 표에서 ‘x’로 표시했다. 이러한 결정은 분명히 불완전하고 다소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시민의 과학에 대한 접근법들간의 차이를 그것이 대중의 과학이해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데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 예

를 들어 레인이 제안한 시민의 과학자 모형은 인지도와 인식을 강화하는 데 목표를 둘 수 있다. 반면 이 모형에서 사람들은 오두본 모형에서 모니터링 역할을 하는 지원자로 참여한 사람들에 비해 과학자들이나 과학과 동화할 가능성은 더 적을 것이다. 시민 지원자들은 특정 영역의 연구와의 동화 정도는 크겠지만 보다 폭

넓은 과학 일반에 대한 동화 정도는 크지 않을 것이며, 슈만트 모형에서의 시민 참여자들에 비해 과학과 연관된 쟁점들을 분석하거나 이에 대해 행동을 취하는 능력은 떨어질 것이다. <표 1>은 시민의 과학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하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상호작용적이고 다차원적인 과정으로 개념화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다.

최근의 시도들

과학자들과 대중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 ― 정부 프로그램에서 유럽의 과학상점 모델에 이르기까지 ― 을 포괄적으로 리뷰한 글은 이미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예를 들어 Schiele 1994와 Gregory and Miller 1998, chap 9를 보라). 이 논문의 마지막 절에서는 시민의 과학/시민과학을 촉진하고 조력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보다 최근의 활동과 시도들을 몇몇 골라 소개하기로 한다.

앨도 레오폴드 지도자 과정(Aldo Leopold Leadership Program)은 1998년에 과학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된 것으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이번 호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미국생태학회의 주관 하에 오레건 주립대학에서 운영하는 이 과정은 현재 매년 20명의 환경과학자들에게 특별 지원금

을 제공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및 전파 능력에 대한 훈련은 과학자들이 ‘우려를 갖고 있는 개인으로부터 의회 의원에 이르는 그 누구와도’ 효과적으로 같이 작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과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세계보건기구 재생산건강 및 연구부의 지텐드라 카나와 그 동료들의 노력을 통해 시행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문자 해독율과 언론 보도 정도가 낮고 과학 언론이 아직 잘 확립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이 영역에서 연구자들을 돕고 연구 결과를 보건 계획가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카나의 부서에서는 과학 집필, 과학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개발도상국 연구기관에서의 정보관리 등에 관한 워크샵을 개최했다. 200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AAS 연례모임에서 발표되었던 이 프로그램의 결과 역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이번 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 밖으로 나와 대중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는 요청은 다른 많은 혁신적 계획들을 낳았다. 예를 들어 메릴랜드대 해양생명공학센터의 연구자들은 [일반 대중이 과학자의 연구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볼티모어에 있는 탐사관(Hall of Exploration)의 전시 유리 건너편의 공간에서 작업을 해 왔으며, 박물관 1층에서 일일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Olson 1997). 영국 브리스톨대의 과학자들은 1995년에 열린 전국과학·기술·공학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이틀 동안 자신들의 연구를 도시의 대형 쇼핑 몰 안에서 진행했다(Pearson, Pringle, and Thomas 1997). 호주에서는 ‘선술집에서의 과학’ 프로그램이 ‘지난 2년 동안 호주의 일류 과학자들이 실험실과 박물관에서 나와 맥주와 감자칩을 앞에 놓고 자신의 연구에 관해 일반 대중과 토론할 기회’를 제공해 왔다(Nowak 2000, 44). 참여한 과학자들 중 많은 수는 대중과의 상호작용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볼티모어의 과학자들은 대중과의 거리좁히기를 위해 소모한 시간이 승진이나 종신계약 결정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 참여에 대한 제약요건으로 작용한다고 느꼈으며, 이러한 활동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레고리와 밀러(Gregory and Miller 1998)에 따르면, 많은 단체들에서 과학자들에게 특별 지원금을 주어 그들이 대중매체와 일하는 데 다소의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는 한편으로 기자들이 어떤 압박 하에서 일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최근에

나온 몇 권의 책들은 과학담당 기자나 일반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에 대해 과학자들에게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Jacobson 1999; Paradis and Zimmerman 1997; Shortland and Gregory 1991을 보라).

또 다른 최근의 혁신적 시도 중 하나는 보즈먼 소재 몬타나 주립대학(MSU)에서 과학 및 자연사 영화제작 미술학 석사과정을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은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스에서 후원받은 140만 달러로 운영되며 2002년 가을에 처음으로 학생을 받을 예정이다(이 과정의 홈페이지는 http://naturefilm.montana.edu/이다 ― 옮긴이). 입학할 학생은 과학 분야의 학위와 1년 이상의 연구 경험이 있어야 한다. 새로 생긴 과정이 속한 MSU의 예술·건축대 학장인 제리 밴크로프트는 이 과정에 대해 과학자들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밴크로프트에 따르면 많은 과학자들은 이 과정이 대중의 과학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Illman 2000).

미국 곳곳에 있는 과학 언론 과정들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하나의 메커니즘을 제공해 왔다. 눈에 띄는 예를 하나만 들자면 산타 크루즈 소재 캘리포니아대학(UCSC)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있는데, 이 과정에 입학하려면 물리과학, 생물학, 공학 분야에서 적어도 하나의 학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또 하나의 예는 워싱턴대에 새로 생긴 과정인데, 이곳에서는 학부와 대학원 수준에서 과학 전공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 전공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

콜럼비아대 언론대학원에서는 지구과학과 언론학 복수전공 석사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이 과정은 ‘과학지식과 저널리즘적 능력의 보기드문 융합’을 이룬 졸업생들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이다(Earth and Environmental Science Journalism Program 2000). 보스턴대 과학언론 대학원 과정은 나이트 재단으로부터 11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의료언론센터를 새로 세웠다. 이 센터는 2001년 가을에 문을 열 예정이다(Boston University 2000). 던우디와 그 동료들이 작성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학과와 과정들의 포괄적인 목록은 이제 웹에서 찾아볼 수 있다(Dunwoody 2001).

그레고리와 밀러(Gregory and Miller 1998)에 따르면, 최근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전문적 대중매체 정보 서비스와 ‘전문가 네트워크’의 발전이다. 이들 네트워크들은 과학담당 기자들에게 과학 연구에 관한 논평을 ― 종종 비공식적으로(off-the-record) ― 해줄 수 있는 과학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한다. 전문가 네트워크는 조직 구조 면에서 다양한데, 대부분은 현재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 중 일부는 전화 문의도 받는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 것도 있고, 정부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기자들에 대해서는 무료로 정보를 제공하며, 일부는 다른 유형의 사용자들에 대해 요금을 받는다. 어떤 네트워크는 접근 자체를 기자들과 연구조직의 구성원들로 제한하고 있지만, 다른 네트워크들은 대중 성원들이 네트워크에 질문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하여 시민-활동가 집단에 대해 잠재적으로 유용한 정보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전문가 네트워크와 과학 뉴스포털 및 알림 서비스의 예는 <표 2>에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로카연구소에서는 미국의 지역기반연구를 유럽의

과학상점 모델과 비교해 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과학상점에

대해서는 Gregory and Miller 1998; Irwin 1995에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로카연구소는 성적 형평성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환경보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50개의 지역기반연구센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런 연구센터들은 시민-활동가 모형에서의 시민과학자들을 위한 소중한 정보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클로브 등에 따르면 연구센터들 대다수가 고질적인 자금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이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Sclove, Scrammel, and Holland 1998).

결론

지난 몇 년 동안 시민의 과학자와 시민의 과학이라는 개념들이 상당한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용어 및 이와 연관된 용어들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의 과학자라는 용어는 종종 일반 청중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자신의 지식과 전문성을 공공영역 안으로 끌고들어가는 과학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시민의 과학자는 일반 대중 성원들, 그 중에서도 과학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시민과학자 내지 시민 지원자로서 과학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구분된다. 물론 연구자들간에 이런 명명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시민의 과학이라는 용어는 종종 과학자의 편에서 과학 내용을 사회적 쟁점이라는 맥락에서 분명하게 표현하고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지칭한다. 이와 같은 함축은 과학자들이 사회 전체의 혜택을 위해 수행하는 과학 연구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또한 시민의 과학과 유사한 용어들은 시민들이 제안했거나 직접 수행한 과학 연구 ― 독립적으로 혹은 과학자들과 협력해서 ― 를 표현하기 위한 말로도 쓰여 왔다. 그리고 이 개념은 특정한 사회적 의제를 지지하는 과학자 대변자들이 수행하는 과학 활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는 문헌 조사를 통해 과학자와 대중 성원들간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 주요 양식들, 즉 시민의 과학자/시민의 과학, 시민과학자/시민과학, 오두본/시민 지원자, 시민-활동가, 과학자-활동가 각각을 파악해 그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과학자와 일반 청중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에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상호작용 양식들의 상이한 특성, 목표, 결과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보인 바와 같이, 상호작용의 목표는 수동적인 과학 인식에서부터 상황을 분석하고 행동을 취하는 시민의 능력 제고에 걸치는 연속선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시민의 과학 프로젝트들이 원래 의도된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는 다소의 증거를 밝혀냈지만, 다섯 가지 양식들 각각의 특정한 목표가 그 주창자들이 의도한 영향을 대중의 이해에 실제로 미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민의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새로운 몇 가지 프로그램의 사례들을 제시했다. 이들 중 몇몇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이번 호의 다른 글들에서 자세히 소개될 것이다.

* 출전: Fiona Clark and Deborah L. Illman, ‘Dimensions of Civic Science: Introductory Essay,’ Science Communication, 23:1(September 2001), 5-27.

피오나 클락, 데보라 일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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